독일의 인도 전문가 빌헬름 하우어는 1932년 10월 3일부터 8일까지 취리히의 심리학 클럽에서 요가에 대해, 특히 쿤달리니 요가의 차크라 시스템에 대해 6회에 걸쳐 강연을 했다. 이어 칼 융이 4회에 걸쳐 쿤달리니 요가를 심리학적으로 해석하는 강연을 했다. 융의 이 강연을 정리한 것이 이 책이다. 융은 일찍부터 동양사상에 관심이 깊었다. 1912년에 발표한 책 『리비도의 변형과 상징』을 보면 힌두교 경전 ‘우파니샤드’와 ‘리그베다’의 구절을 해석하는 부분이 많다. 당시의 정신분석 분야에선 정신분석이 고대 인도인들이 이미 잘 알고 있던 것을 재발견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주장이 제기되기도 했다.
융은 그 후에도 동양 사상을 심리학적으로 해석하는 일 등을 통해 동양에 대한 깊은 관심을 결코 놓지 않았다. 이런 경향 때문에 융은 1960년대 서구에서 일어난 뉴 에이지 운동 때엔 구루로 받들어지기도 했다. 오늘날 온갖 형식의 요가가 스포츠와 건강관리 프로그램의 일부로 소개되면서 요가가 고대에 정신적 수양이었다는 사실이 많이 잊히게 되었지만, 요가는 분명 수행의 한 형식이다. 그 목적은 우주적인 존재를 이룸으로써 자신을 구원하는 것이다. 탄트라 요가로도 불리는 쿤달리니 요가는 힌두교 경전 ‘탄트라’가 제시하는 요가 수행법을 따른다.
쿤달리니 요가의 관점은 우주적이며, 이 요가의 차크라 체계는 개인을 초월하는 삶의 발달 단계를 상징한다. 말하자면 차크라는 개인의 심리와 인류의 심리를 시간이나 공간의 제약을 받지 않는 사차원의 관점에서 보는 것과 비슷하다. 칼 융은 이 강연에서 차크라에 관한 것들을 서양의 심리학으로 바꾸고 있다. 그는 각 차크라를 의식이 한 단계씩 높아지는 것으로 해석한다.
Contents
1강 1932년 10월 12일
2강 1932년 10월 19일
3강 1932년 10월 26일
4강 1932년 11월 2일
Author
칼 구스타프 융,정명진
1875년 7월 26일 스위스에서 목사의 아들로 태어났다. 바젤 대학교에서 의학을 전공하고 부르크휠츨리 정신병원의 원장 오이겐 블로일러 밑에서 심리학 연구를 시작했다. 자극어에 대한 단어 연상 실험을 연구하면서 프로이트가 말한 억압을 입증하고 이를 ‘콤플렉스’라 명명했다. 1907년 이후 프로이트와 공동 작업을 하면서 그의 후계자로 여겨졌으나, 융은 프로이트의 리비도를 성적 에너지에 국한하지 않고 일반적 에너지라 하여 갈등을 빚다 결국 결별했다. 1914년에 정신분석학회를 탈퇴하고 사회적으로 고립되었으며 내적으로도 고통의 시간을 보낸다. 이때 독자적으로 무의식 세계를 연구해 분석심리학을 창시했다. 그는 인간의 내면에는 무의식의 층이 있다고 믿고 집단무의식의 존재를 인정했으며 또한 각 개체의 통합을 도모하게 하는 자기원형이 있다고 주장했다. 집단무의식을 이해하기 위해 신화학, 연금술, 문화인류학, 종교학 등을 연구했다. 1961년 85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1875년 7월 26일 스위스에서 목사의 아들로 태어났다. 바젤 대학교에서 의학을 전공하고 부르크휠츨리 정신병원의 원장 오이겐 블로일러 밑에서 심리학 연구를 시작했다. 자극어에 대한 단어 연상 실험을 연구하면서 프로이트가 말한 억압을 입증하고 이를 ‘콤플렉스’라 명명했다. 1907년 이후 프로이트와 공동 작업을 하면서 그의 후계자로 여겨졌으나, 융은 프로이트의 리비도를 성적 에너지에 국한하지 않고 일반적 에너지라 하여 갈등을 빚다 결국 결별했다. 1914년에 정신분석학회를 탈퇴하고 사회적으로 고립되었으며 내적으로도 고통의 시간을 보낸다. 이때 독자적으로 무의식 세계를 연구해 분석심리학을 창시했다. 그는 인간의 내면에는 무의식의 층이 있다고 믿고 집단무의식의 존재를 인정했으며 또한 각 개체의 통합을 도모하게 하는 자기원형이 있다고 주장했다. 집단무의식을 이해하기 위해 신화학, 연금술, 문화인류학, 종교학 등을 연구했다. 1961년 85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