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분석이라는 용어를 처음 도입하고, 무의식에 닿을 수 있는 길을 제시한 인물은 물론 지그문트 프로이트였다. 그러나 정신분석을 현실에 적용시키려 노력하는 등 정신분석의 대중화에 적극적으로 나선 인물은 칼 구스타프 융이었다. 이 책에 실린 글들은 칼 융이 그런 노력의 일환으로 한 강연에서 발표한 글이나 짧은 논문이다. 성격이나 인격에 관한 글이 주를 이루고 있다. 새삼스레 인성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는 시점에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는 내용이다. 정책 당국자는 물론이고, 교육자, 학부형 등 모두가 반드시 읽어야 할 책이다.
‘사람의 성품을 함양시키는 교육’ 정도로 정의되는 인성 교육은 인격을 갖추게 하는 교육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칼 구스타프 융의 견해에 비춰보면, 지금 실시되고 있는 우리의 인성 교육은 좀 거칠게 표현하면 그 자체가 ‘꽝’이다. 무슨 근거로 이렇게 말할까?
정신분석에서는 어린이 환자의 경우에 병의 원인을 아이에게서 찾지 않는다. 부모를 본다. 그 다음에 다른 가족 등 아이의 환경을 본다. 아이를 대상으로 분석해 원인을 찾는다 한들, 주변 환경이 그대로면 아이는 절대로 변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칼 융은 어른에 대한 교육을 강조한다. 윗물이 맑으면 자연히 아랫물은 맑아진다는 뜻이다. 학교만 졸업하면 모두가 성숙한 어른으로 취급받지만, 어른들 중에서 하나의 인격체로 존중받을 자격을 갖춘 사람은 그다지 많지 않다는 것이 칼 융의 입장이다. 아이들의 인성을 가꾸기 위한 교육의 일차적 대상은 어른이 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여기서 우리 현실을 칼 융의 견해에 비춰보자. 깊이 파고들 것도 없다. 학생들과 가장 밀접한 역사 교과서 문제를 둘러싸고 어른들이 벌이는 행태만 봐도 충분하다. 공부에 쫓기는 학생들도 다른 문제는 몰라도 역사 교과서 문제만큼은 관심을 둘 것이다. 교과서 내용은 제쳐두더라도, 그 문제와 관련해 어른들 사이에 오가는 거친 말과 거친 행동을 보고 감수성 예민한 학생들이 과연 뭘 배우겠는가?
오래된 글들이지만, 이 안에 우리의 미래가 있다. 사회를 이끄는 위치에 선 사람들이 인간 정신이 작동하는 방식을 몰라도 너무 모르고 있다. 우리 모두 사회가 지금처럼 피폐해진 탓을 엉뚱한 곳으로 돌릴 게 아니라 자신의 진짜 모습부터 들여다보는 용기를 발휘할 때라고 이 책은 강조한다.
Contents
1장 어린이가 겪는 정신적 갈등
2장 어린이의 발달과 교육
3장 분석 심리학과 교육
4장 영재 아이
5장 개인적 교육에 무의식이 중요한 이유
6장 인격의 발달
7장 심리학적 관계로 본 결혼
[옮긴이의 글]
칼 구스타프 융의 연보
Author
칼 구스타프 융,김세영,정명진
1875년 7월 26일 스위스에서 목사의 아들로 태어났다. 바젤 대학교에서 의학을 전공하고 부르크휠츨리 정신병원의 원장 오이겐 블로일러 밑에서 심리학 연구를 시작했다. 자극어에 대한 단어 연상 실험을 연구하면서 프로이트가 말한 억압을 입증하고 이를 ‘콤플렉스’라 명명했다. 1907년 이후 프로이트와 공동 작업을 하면서 그의 후계자로 여겨졌으나, 융은 프로이트의 리비도를 성적 에너지에 국한하지 않고 일반적 에너지라 하여 갈등을 빚다 결국 결별했다. 1914년에 정신분석학회를 탈퇴하고 사회적으로 고립되었으며 내적으로도 고통의 시간을 보낸다. 이때 독자적으로 무의식 세계를 연구해 분석심리학을 창시했다. 그는 인간의 내면에는 무의식의 층이 있다고 믿고 집단무의식의 존재를 인정했으며 또한 각 개체의 통합을 도모하게 하는 자기원형이 있다고 주장했다. 집단무의식을 이해하기 위해 신화학, 연금술, 문화인류학, 종교학 등을 연구했다. 1961년 85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1875년 7월 26일 스위스에서 목사의 아들로 태어났다. 바젤 대학교에서 의학을 전공하고 부르크휠츨리 정신병원의 원장 오이겐 블로일러 밑에서 심리학 연구를 시작했다. 자극어에 대한 단어 연상 실험을 연구하면서 프로이트가 말한 억압을 입증하고 이를 ‘콤플렉스’라 명명했다. 1907년 이후 프로이트와 공동 작업을 하면서 그의 후계자로 여겨졌으나, 융은 프로이트의 리비도를 성적 에너지에 국한하지 않고 일반적 에너지라 하여 갈등을 빚다 결국 결별했다. 1914년에 정신분석학회를 탈퇴하고 사회적으로 고립되었으며 내적으로도 고통의 시간을 보낸다. 이때 독자적으로 무의식 세계를 연구해 분석심리학을 창시했다. 그는 인간의 내면에는 무의식의 층이 있다고 믿고 집단무의식의 존재를 인정했으며 또한 각 개체의 통합을 도모하게 하는 자기원형이 있다고 주장했다. 집단무의식을 이해하기 위해 신화학, 연금술, 문화인류학, 종교학 등을 연구했다. 1961년 85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