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발견]으로 등단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한 문저온 시인의 서사시집 『치병소요록』이 출간되었다.
몸이 감내하고 있는 여러 고통을 언어로 펼치면서, 동시에 삶의 내막을 두드려 그 신음을 기꺼이 듣고 토해내는 시집, 단편적인 머무름이 아니라 온 몸을 매만지듯 퍼져나가는 독특하고 아름다운 몸의 서사가 시(詩)를 만나 한 권의 서사시집이 되었다. 한의사이기도 한 시인의 경험과 몸에 대한 시적인 사유가 만난 것이다. 지금껏 시단에서 이토록 아름답고 생경하게 몸을 사유한 시가 있었나 싶을 정도로, 『치병소요록』은 우리가 가진 아픔과 상처를 내밀하게 들여다보고 있다.
‘치병소요록(治病逍遙錄)’, 병을 다스리며 보낸 시간들의 기록이다. 때로는 진찰하는 의사와 환자의 만남이었다가, 상처를 보여주는 사람과 상처를 들킨 사람이었다가, 떠나가는 사람과 남겨진 사람의 이야기처럼 그려진다. 이 사실적이고도 환상적인 기록은, 우리가 당도해 있는 ‘몸’의 내밀함을 읽어가는 각주이자 동시에 ‘시’의 외연으로 흐를 수 있는 형식의 가능성이기도 하다. 발표작을 묶어 내는 방식의 작품집이 아닌, 시인 자신이 스스로와 끊임없이 사투하여 치밀하게 얻어낸 어디에도 없는 실험의 현장이다.
해설을 쓴 고봉준 평론가는 “‘한의사’와 ‘시인’, ‘몸’과 ‘말’의 경계를 넘나들면서 인간의 삶과 실존에 대한 사유를 펼쳐 보이는 것, 문저온 시의 힘과 매력은 정확히 여기에 있다.”라고 이야기한다. 그 대목을 자연스럽게 보여주는 것은 시편의 부제로 달려 있는 ‘사전적 정의’와 ‘시적 정의’가 충돌하는 지점이며, 이 시집은 그 충돌을 통해 길을 내어 자신의 정의를 내리기 위해 묵묵히 걸어가는 한 시인의 발자취이기도 하다. 몸이 마음에게 내어주는 것, 마음이 몸에게 내어주는 것, 그리하여 몸과 마음을 따로 설명할 수 없게 된 것이 사람의 일이라면, 『치병소요록』이 한 권으로 일궈 세우는 이 시적인 서사를 통해 우리는 “‘몸’의 존재론을 부각시키고, 질병, 상처, 고통, 죽음 같은 부정적 요소를 경유하여 삶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경험할 수 있게 된다.
Contents
프롤로그
아마 나는, 어쩌면 너는
서혜(鼠蹊) 12
울기(鬱氣) 14
삽(揷) 16
비밀과 거짓말
슬와(膝窩) 20
경련(痙攣) 22
구급(救急) 24
아득해진다
다몽(多夢) 28
요안(腰眼) 32
인설(鱗屑) 34
돌아보다
항강(項强) 38
조갑(爪甲) 40
향(香) 42
뼈와 칼
하악(下顎) 46
부종(浮腫) 48
기도(祈禱) 51
도착해서 죽는 말들
늑간(肋間) 56
난청(難聽) 58
고인(故人) 61
검은, 푸른, 흰
동공(瞳孔) 66
타박(打撲) 68
골(骨) 70
꿈같다는 말, 개 같다는 말
이륜(耳輪) 74
중독(中毒) 76
수장(水葬) 78
적어 넣다
소복(小腹) 84
병명(病名) 86
말기(末期) 88
이 긴 순간
오심(惡心) 92
애도(哀悼) 94
안검(眼瞼) 96
벌어지다
비익(鼻翼) 100
발적(發赤) 102
부음(訃音) 104
긴긴 착륙
견갑(肩胛) 110
장루(腸瘻) 112
임종(臨終) 114
않을 수 없는
대퇴(大腿) 118
열루(熱漏) 120
필사(必死) 122
우리는 개입한다
망진(望診) 126
문진(問診) 128
절진(切診) 130
해설 모든 상처는 내상(內傷)이다 132
고봉준(문학평론가)
Author
문저온
1973년 경남 진주에서 태어났다. 2015년 『발견』으로 등단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1973년 경남 진주에서 태어났다. 2015년 『발견』으로 등단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