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최초로 여성을 위한 대학을 설립한 선교사 룰루 프라이,
그녀가 조선의 소녀들과 함께 보낸 19세기 서울 정동에서의 시간들
1893년 9월 12일, 미국 샌프란시스코를 떠나 일본 요코하마로 향하는 차이나호 선상에는 이제 막 선교사가 된 한 미국인 여성이 타고 있었다. 불과 1년 전 대학을 졸업한 스물다섯 살의 룰루 프라이였다. 조선에 도착한 그녀는 조선 최초의 여학교인 이화학당의 교사로 재직하며 이 척박한 땅에서 살아가는 조선인 그리고 이화의 학생들을 온 마음을 다해 사랑하게 된다. 1907년에 학당장이 된 그녀는 이화의 편제를 초등과 4년, 중등과 4년, 고등과 4년으로 개편했으며, 여성 고등교육에 대한 자신의 비전을 1910년 대학과의 설치로 실현한다. 여성을 위한 대학 설치는 시기상조라는 안팎의 반대를 무릅쓰고 신념을 굽히지 않은 결과였다.
룰루 프라이가 조선에 첫발을 디딘 1893년부터 사망하던 해인 1921년까지 쓴 편지들과 일기를 엮은 이 책은 우리가 몰랐던 그녀의 인간적인 고뇌와 종교적인 고백, 교육 활동과 철학을 엿볼 수 있게 한다. 고국에 두고 온 가족을 향한 그녀의 애틋한 사랑과 걱정, 책임감, 안타까움, 나아가 그녀가 이화학당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며 어떻게 그들과 소통하고 생활했는지, 어떻게 조선 문화에 적응해나갔는지가 이 책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또 하나의 흥미로운 줄거리는 역사적 사건들이다. “조선의 생활에 단조로운 것은 전혀 없다”는 그녀 자신의 묘사처럼, 프라이는 한국 근현대사의 격동기 한복판에서 청일전쟁, 을미사변, 러일전쟁, 을사늑약 등 잇따른 사건들을 덕수궁과 담을 맞댄 정동의 이화학당에서 목격한다. 프라이는 열강의 다툼이 조선의 백성들에게 안긴 고통, 그리고 혹독한 가난과 질병에 시달리는 백성을 구제할 길이 없는 무능한 정부와 양반계급에 대한 솔직한 심경을 기록했다.
3ㆍ1독립만세운동이 있고 채 6개월도 지나지 않은 1919년 8월에 안식년을 맞아 미국으로 돌아간 프라이는 그곳에서 암 진단을 받고, 1920년 8월 수술 후 요양하던 중 1921년 3월 사망한다. 한국 여성을 위한 최초의 대학과를 설치해 여성 고등교육이라는 새로운 장을 개척한 선교사 룰루 프라이. “그녀가 사랑하던 일로부터 그녀 자신을 떼어놓을 수 있는 것은 오직 하나님의 섭리뿐이었다”는 모리스 목사의 추도사처럼 평생을 조선 여성들과 그들의 교육을 위해 헌신한 그녀가 영원한 안식을 맞은 지도 100년이 넘는 시간이 흘렀다. 하지만 이 편지들 속에서 그녀는 19세기 말 조선 정동의 이화학당으로 다시 돌아와 생생하게, 또 진솔하게 오늘의 우리를 만나고 있다. 이 책을 보는 독자들은 140여 통의 편지와 일기들에 담긴 한 여성의 희생과 용기를 통해 익숙하지만 새로운 세계를 접하고, 소박하지만 큰 감동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Contents
프롤로그: 한국 여성 대학교육의 개척자, 룰루 프라이
1893년
1894년
1895년
1896년
1898년
1900년
1901년
1902년
1903년
1904년
1907년
1908년
1909년
1917년
1918년
1919~1921년의 일기
룰루 프라이에게 보낸 이승만의 편지
지네트 월터와 마리 처치, 샬럿 브라운리의 못다 한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