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4년 12월 6일 나주시 왕곡면 장산리에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양산초등학교와 영산포중학교, 광주인성고를 졸업했다. 고려대 신문방송학과 4학년이던 1985년 5월, 5·18의 진상규명과 미국의 공개사과를 요구하는 서울 미문화원 점거농성을 주도하여 징역 3년형을 선고받았다. 수감 중 부친이 타계하시자 ‘아버지가 평생 땀에 절어 사시고 한을 품고 묻히신 이 땅에 뛰어들겠다’고 결심했고, 1987년 출소하자 나주로 내려와 농민운동에 투신했다. 고향의 활동가들과 나주수세폐지 대책위를 조직하고 전국적인 수세거부운동을 일으켜 1년에 1천억 원씩 징수하던 부당한 수세를 완전히 폐지시켰지만, 그 과정에서 아내 주향득과 함께 8개월 동안 투옥되기도 했다.
1990년 9월에는 전국 최대의 나주농민회를 출범시켰고, 농민들의 지지를 기반으로 1995년과 1998년 도의원 선거에 무소속으로 당선되어 호남 정치의 파란을 일으켰다. 2002년과 2006년에도 무소속으로 나주시장에 당선되었다. 2014년 상반기 재보궐선거에서 새정치민주연합 후보로 전라남도 나주시-화순군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이후 당에서 농어업 담당 원내부대표 등을 역임했고, 농어민전국위원회를 만들어 위원장을 맡았다. 20대 총선에서 낙선했고, 2016년 6월 더불어민주당 호남 담당 특별보좌관으로 임명되어, 대선을 치렀다. 2017년 6월 문재인 정부의 초대 청와대 농어업비서관으로 일했고, 2018년 사임해 전남지사 선거에 나섰지만 당내 경선에서 탈락했다. 현재는 국가균형발전위원회 지역정책 공약특별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다.
나주시장 재임시 혁신도시를 유치하기 위한 활동을 총괄했으며, 지난 대선에서는 한전공대 설립공약을 제안해서 문재인 정부의 국정과제로 확정했다. 또, 마을택시, 친환경 농산물 학교급식 등 혁신적인 공약을 만들어 국가 어젠다로 확대했다.
1964년 12월 6일 나주시 왕곡면 장산리에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양산초등학교와 영산포중학교, 광주인성고를 졸업했다. 고려대 신문방송학과 4학년이던 1985년 5월, 5·18의 진상규명과 미국의 공개사과를 요구하는 서울 미문화원 점거농성을 주도하여 징역 3년형을 선고받았다. 수감 중 부친이 타계하시자 ‘아버지가 평생 땀에 절어 사시고 한을 품고 묻히신 이 땅에 뛰어들겠다’고 결심했고, 1987년 출소하자 나주로 내려와 농민운동에 투신했다. 고향의 활동가들과 나주수세폐지 대책위를 조직하고 전국적인 수세거부운동을 일으켜 1년에 1천억 원씩 징수하던 부당한 수세를 완전히 폐지시켰지만, 그 과정에서 아내 주향득과 함께 8개월 동안 투옥되기도 했다.
1990년 9월에는 전국 최대의 나주농민회를 출범시켰고, 농민들의 지지를 기반으로 1995년과 1998년 도의원 선거에 무소속으로 당선되어 호남 정치의 파란을 일으켰다. 2002년과 2006년에도 무소속으로 나주시장에 당선되었다. 2014년 상반기 재보궐선거에서 새정치민주연합 후보로 전라남도 나주시-화순군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이후 당에서 농어업 담당 원내부대표 등을 역임했고, 농어민전국위원회를 만들어 위원장을 맡았다. 20대 총선에서 낙선했고, 2016년 6월 더불어민주당 호남 담당 특별보좌관으로 임명되어, 대선을 치렀다. 2017년 6월 문재인 정부의 초대 청와대 농어업비서관으로 일했고, 2018년 사임해 전남지사 선거에 나섰지만 당내 경선에서 탈락했다. 현재는 국가균형발전위원회 지역정책 공약특별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다.
나주시장 재임시 혁신도시를 유치하기 위한 활동을 총괄했으며, 지난 대선에서는 한전공대 설립공약을 제안해서 문재인 정부의 국정과제로 확정했다. 또, 마을택시, 친환경 농산물 학교급식 등 혁신적인 공약을 만들어 국가 어젠다로 확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