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적 요구로 온갖 적폐를 청산하려는 지금,
적폐의 뿌리인 유신체제와 이에 대한 대규모 저항이자
민주화운동의 기원인 민청학련 항쟁을 재조명하다!
부마민중항쟁, 5·18 광주민주화운동, 6·10 항쟁을 추동한 힘이자
한국 민주화운동의 기원인 민청학련 항쟁의 원인, 전개 과정, 결과, 의의까지
모든 것을 정리한 단 한 권의 책
박근혜 대통령이 촛불시민들의 힘으로 탄핵된 이후, 적폐 청산은 한국 사회의 가장 긴급한 이슈로 떠올랐다. 이어 사회 각 분야에서 이를 위한 움직임이 활발하다. 바로 그 적폐의 뿌리는5·16 군사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후 영구집권까지 노렸던 박정희의 ‘10월 유신’이라고 할 수 있다. 1972년부터 7년 동안 한국 사회를 장악했던 유신체제는 박정희 정권이 민주적 절차를 파괴하고, 장기 집권의 철옹성을 쌓음으로써 스스로 최소한의 역사적 정통성마저 저버리고 극단적인 권위주의체제로 돌입한 민주주의에 대한 폭거였기 때문이다. 7년간 이어진 엄혹한 유신체제에 대한 도전 가운데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은 1979년의 부마민중항쟁이지만, 사실 그 이전에 이미 의미 있는 대규모의 저항이 있었다.
바로 민청학련 항쟁이다. 유신이 선포되기 전부터 박정희 정권의 독재에 저항하는 청년학생과 민주인사들은 산발적인 저항을 해오고 있었다. 그러던 차에 1972년 10월 유신 선포를 기점으로 대학생들은 대대적인 반독재 학생봉기를 계획하였고, 이를 돕는 민주인사들과의 협력을 키워갔다. 이들은 1974년 4월로 예정된 반유신 항쟁을 준비하면서 전국적인 규모의 강력한 민주화투쟁이라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 ‘전국민주청년학생총연맹’, 소위 민청학련이라는 실체로 거듭나게 되었다.
그러나 민청학련 항쟁은 상대적으로 역사의 주목을 받지 못했다. 문재인 정부가 밝힌 개헌안에 부마항쟁, 5·18, 6·10 항쟁의 정신이 명시될 것이라고 알려졌지만 민청학련 항쟁은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사전에 정보가 누출되어 관련자들이 검거됨으로써 미수에 그쳤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민청학련 항쟁은 한국 민주화운동사에서 박정희 정권이 최초로 스스로의 판결을 부정하도록 하는 등 뚜렷한 족적을 남겼으며, 이에 참여했던 청년학생들은 이후 한국 민주화운동의 척추로 기능하게 된다. 간략히 그 의미를 짚어보면 다음과 같다.
민청학련 항쟁은 4·19 이후에 최초로 일어난 대규모 반독재 투쟁이었다. 민청학련 항쟁이 있었기에 그 뒤로도 수많은 반유신 투쟁과 부마민중항쟁이 이어져 박정희 정권을 붕괴시킬 수 있었다. 또한 민청학련 항쟁 참가자들은 그 후 그대로 한국의 민주화운동, 시민운동, 노동운동, 빈민운동 등의 주역이 됨으로써 민주화 및 사회의 허리 역할을 하게 되었다. 즉 이들이 1980년 서울의 봄, 5·18 광주민주화운동, 1987년 6·10 항쟁을 추동한 힘이며, 이 역량이 2017년의 촛불항쟁으로까지 이어진 것이다.
이 책은 이처럼 한국 민주화운동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지만 상대적으로 주목받지 못했던 민청학련 항쟁의 원인, 전개 과정, 결과, 의의까지 모든 것을 정리한 결과물이다. 1972년 유신 선포부터 1975년 박정희 정권이 관련자들을 석방하기까지 850일의 기록이 담겨 있는 르포르타주이며, 민청학련이 한국 민주화운동사에서 갖는 위치를 재조명하고 그에 걸맞은 제 위치를 찾기 위한 시도이다.
Contents
책을 펴내며 17
1부│대통령, 가면을 벗다
수상한 ‘구국의 결단’ 29
탐욕이 낳은 쿠데타 32
계엄군, 대학을 짓밟다 35
신세계백화점 옥상에서 뿌려진 유신 반대 유인물 38
거짓에 저항한 고등학생들 41
대구 고등학생들의 ‘구국장교단’ 유인물 43
《함성》지, 최초로 유신체제에 반기를 들다 46
전남대 ‘민족사회연구회’의 태동 56
강요된 침묵에 맞선 기독교인들 58
유신쿠데타의 핵심은 박정희의 종신집권 62
선거로는 대통령이 될 수 없었던 박정희 75
박정희의 권력 운용 방식 81
위수령, 유신의 전조 83
경북대 ‘한풍회’의 반격 91
1972년, 그 어두웠던 봄 96
여대생, 사회 현실로 눈을 돌리다 102
서울대 문리대 학생회와 동아리의 부활 107
고려대, ‘한국적 민주주의’에 선전포고를 하다 110
“성경과 찬송가로 내란이 가능합니까?” 113
한풍회, 결의를 다지다 123
사회의학연구회의 도전 125
아, 윤한봉! 130
2부│진실은 가둘 수 없다
유신 후 최초의 공개 시위를 준비하다 135
서울대 문리대의 10·2 시위, 유신에 도전장을 내밀다 146
법대와 상대, 시위의 불길을 이어가다 151
침묵하는 언론 162
연세대 사제의 천마산 모의 165
한국기독학생회총연맹의 구속자 대책 활동 167
지식인 15인의 시국선언과 경북대 11·5 시위 169
서강대의 성토대회 180
이화여대, 4천 명이 거리로 나서다 184
유신 반대 불길, 전국으로 번지다 191
신학대학 교수들의 삭발 항의 197
“이제는 보도해야 한다” 200
13년 만에 굴욕을 당한 박정희 204
“복학? 그런 거 해갖고는 되도 안 한디” 207
방학에도 쉬지 않는 학습과 투쟁의 모색 209
새로운 모색의 나날들 212
민주수호국민협의회의 출범 223
박정희의 분노와 협박 227
지성인만의 ‘게토’이기를 거부하다 229
3부│모든 것을 바쳐 조국을 사랑했다
신학대학장의 내란죄 235
문인 61인의 시국선언 238
긴급조치, 20세기의 어명 241
3·3·3원칙 246
두려움을 잊다 251
전남대, 서울과 연결되다 255
연세대, 전국시위 팀과 연결되다 256
이화여대 동참하다 258
윤보선 전 대통령의 마지막 각오 260
장준하와 백기완, 긴급조치의 첫 구속자가 되다 264
“재판장은 왜 국방의 임무를 안 하는가?” 266
“의대생은 이 나라 국민이 아닙니까?” 270
간첩으로 조작된 문인들 274
전국 대학들이 연결을 확대하다 276
2·10 경북대의 강창 모임 279
준비 역량을 보강하다 283
윤한봉의 호남 활동과 대전 회의 290
서울대 문리대, 학생회를 구성하다 293
민청학련 결성일로 둔갑한 3월 7일 모임 296
합숙하며 마지막 점검에 들어가다 302
고교생들의 기습시위 계획 309
윤보선 전 대통령의 학생 지원 313
유신 타도 전국시위 제1호는 경북대 315
무등산 화염병 실험 324
3개의 비밀 인쇄소 325
‘전국민주청년학생총연맹’의 첫 등장 327
서강대, 서울 첫 궐기를 하다 329
그날 수많은 아들딸이 집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333
총궐기, 4월 3일로 결정되다 337
처음으로 여학생이 연행되다 342
서울 5개 대학의 사릉 회의 346
전국 13개 고등학교의 시위 준비 350
목에 칼을 대고 시도한 연세대 시위 353
“이젠 싸우는 길밖에 없어” 357
유신정권, 치밀한 투쟁 준비에 경악하다 361
민청학련의 전국시위 전야 366
4월 3일 전국시위의 날이 밝다 369
의대생들의 흰 가운 시위 376
가장 치열했던 성균관대 381
선언문 못 읽고 끝난 이화여대 387
서울대 상대, ‘준비론’을 뚫다 392
4부│권력, 독을 삼키다
“유신 반대하면 사형” 405
자수기간 끝난 뒤를 노린 전남대 시위 412
시험 거부로 긴급조치에 맞선 한양대 420
“우리는 민족의 아들이다!” 422
잡히면 죽인다는데도 계속되는 투쟁 424
간첩의 7배에 달하는 현상금 429
잇따른 검거와 학생회 곽성문의 배신 436
최대 희생자, 한국기독학생회총연맹 440
정화영이 끝까지 지킨 두 가지 444
광주 보안부대의 구식 전기고문 447
윤혜영, 조사 중에 병원에 입원하다 451
“북한방송 들었다는 자백을 받아내라” 453
만난 적도 없는 이른바 ‘인혁당’ 455
박형규 목사 구속과 데모자금의 출처 462
“운동자금은 내 결혼 축의금입니다” 465
고문을 해외에 알린 ‘월요 모임’ 471
거짓말 퍼레이드, 4·25 중간수사 473
조총련 지령으로 둔갑한 일본 언론 인터뷰 476
너구리, 송종의 검사 485
“민청학련은 반국가단체” 494
실체 없는 인혁당 497
자백만이 유일한 증거인 재판이 시작되다 502
“[날아가는 까마귀야]는 북한 혁명가가 아니라 항일독립군가” 504
변호인도 법정 모독으로 구속해버리는 초유의 사태 509
“부끄럽습니다” 512
32명의 총 선고 형량, 1천 년에 달해 514
천주교 주교까지 내란했다고 구속 521
“나라 지키라고 별을 달아줬더니” 527
《워싱턴 포스트》의 비밀 인터뷰 530
“한국에서 정부를 비판하는 것은 죽음을 의미합니다” 532
“내 아들, 내 남편 내놓아라” 537
교도소의 학생들 541
긴급조치 1, 4호가 해제되다 548
의미 없는 2심 재판 550
쌀쌀맞은 박근혜 551
공판조서까지 조작하는 독재의 하수인들 553
5부│국민, 마침내 권력을 이기다
진실의 거센 파도 559
정의구현사제단의 탄생 572
《동아일보》 기자들의 자유언론운동 579
자유실천문인협의회의 탄생 586
‘헌법적 독재체제’의 청산운동이 시작되다 590
민주세력 총결집한 민주회복국민회의 등장 592
세계 언론 사상 가장 치졸한 광고 탄압 596
자유언론을 지키려는 이름 없는 국민들의 궐기 600
사면초가의 박정희, 국민 앞에 굴복하다 604
패배를 국민투표로 위장하다 608
국민 승리가 이룬 구속자 석방 611
35년 만의 ‘무죄’ 선고 615
부록
해설- 민청학련 항쟁의 전개와 역사적 의의 619
민청학련 관련자 인명록 630
민청학련·인혁당 사건 조작 및 가해자 명단 690
유신정권 및 민청학련 관련 주요 사건 일지 696
민청학련운동 참여 통계 702
참고문헌 706
Author
민청학련계승사업회
1974년 유신독재에 정면으로 맞선 민청학련 항쟁 참가자들은 1980년대 중반부터 민주주의·인권·통일 등 민청학련의 정신을 계승 ·기념하는 활동을 펼쳤다. 1994년 민청학련운동계승사업회를 공식 발족하였으며, 2013년 민청학련계승사업회로 그 명칭을 바꾸었다.
민청학련계승사업회는 그동안 민청학련 정신에 부합하는 국내외 개인 및 단체에 대한 지원과 연대사업, 출판·연구 등의 기념사업, 민청학련 사건 관련자의 명예 회복 및 배상 청구를 위한 재심 추진사업 등을 진행해왔다. 이를 통해 회원들은 사회 각계각층에서 민주주의의 가치를 지키며 인권과 평화를 위한 활동에 힘쓰고 있다. 또한 기나긴 법정 투쟁 끝에 2009년 9월부터 순차적으로 이뤄진 재심에서 관련자 전원의 무죄판결을 이끌어내기도 했다.
특히 민청학련 기념사업의 일환으로 지난 2003년 《1974년 4월: 실록 민청학련》 (전4권, 학민사) 시리즈를 발간하기도 했다. 이 시리즈는 민청학련에 참여했던 인물들이 각자의 입장에서 술회하여 생생한 목소리를 담아냈으나, 민청학련 항쟁의 전모를 보여주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따라서 새 시대의 시민들에게 박정희 정권의 폭거에 저항한 민청학련 항쟁을 종합적으로 정리하여 널리 알릴 필요가 있었다. 이를 위해 2014년부터 200여 명과 인터뷰하고 80여 가지의 자료를 종합하여 사건을 재구성하는 작업에 착수했다. 이 책은 회원들의 이러한 고민과 노력을 집대성하여 만든 4년 만의 결과물이다.
현재 민청학련계승사업회는 좀 더 많은 시민들에게 민청학련의 정신을 알리고 , 청년 세대에게 그 정신을 잇고 고양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 앞으로도 민청학련의 정신이 잊히지 않도록 시민을 대상으로 한 역사기행 및 시민 교육활동 등을 모색하고 있다.
1974년 유신독재에 정면으로 맞선 민청학련 항쟁 참가자들은 1980년대 중반부터 민주주의·인권·통일 등 민청학련의 정신을 계승 ·기념하는 활동을 펼쳤다. 1994년 민청학련운동계승사업회를 공식 발족하였으며, 2013년 민청학련계승사업회로 그 명칭을 바꾸었다.
민청학련계승사업회는 그동안 민청학련 정신에 부합하는 국내외 개인 및 단체에 대한 지원과 연대사업, 출판·연구 등의 기념사업, 민청학련 사건 관련자의 명예 회복 및 배상 청구를 위한 재심 추진사업 등을 진행해왔다. 이를 통해 회원들은 사회 각계각층에서 민주주의의 가치를 지키며 인권과 평화를 위한 활동에 힘쓰고 있다. 또한 기나긴 법정 투쟁 끝에 2009년 9월부터 순차적으로 이뤄진 재심에서 관련자 전원의 무죄판결을 이끌어내기도 했다.
특히 민청학련 기념사업의 일환으로 지난 2003년 《1974년 4월: 실록 민청학련》 (전4권, 학민사) 시리즈를 발간하기도 했다. 이 시리즈는 민청학련에 참여했던 인물들이 각자의 입장에서 술회하여 생생한 목소리를 담아냈으나, 민청학련 항쟁의 전모를 보여주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따라서 새 시대의 시민들에게 박정희 정권의 폭거에 저항한 민청학련 항쟁을 종합적으로 정리하여 널리 알릴 필요가 있었다. 이를 위해 2014년부터 200여 명과 인터뷰하고 80여 가지의 자료를 종합하여 사건을 재구성하는 작업에 착수했다. 이 책은 회원들의 이러한 고민과 노력을 집대성하여 만든 4년 만의 결과물이다.
현재 민청학련계승사업회는 좀 더 많은 시민들에게 민청학련의 정신을 알리고 , 청년 세대에게 그 정신을 잇고 고양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 앞으로도 민청학련의 정신이 잊히지 않도록 시민을 대상으로 한 역사기행 및 시민 교육활동 등을 모색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