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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신과의 동행

1597년 8월의 14박 1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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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blication Date 2014/09/23
Pages/Weight/Size 153*224*22mm
ISBN 9791156120193
Description
경남 원계→전남 군학 700리에 놓인 ‘이순신 길’

《이순신과의 동행―1597년 8월의 14박 16일》은 이순신이 백의종군 중 삼도수군통제사 재임명장을 받은 경남 진주시 수곡면 원계마을에서 전남 보성군 회천면 군학마을까지 14박 16일 동안(1597년 정유년 8월 3일~8월 18일. 3일은 무박) 갔던 700리 노정을 따라 걸은 역사기행서다. 길은, 저자가 걸은 길로 경남 지역 50킬로미터, 전남 동부 지역 221킬로미터에 걸쳐 놓여 있다.

‘이순신 길’은 그동안 많은 학자, 이순신 추적자들이 지나갔지만, 가능한 한 옛길을 찾아 전 노정을 직접 걸어서 답사한 것은 저자가 처음이다. 저자 이훈은 40여 년 기자 생활을 한 언론인으로, ‘이순신 길’을 직접 걸으며 기자 특유의 감각과 역동적인 필체로 당시 상황을 생동감 있게 그린다. 특히 ‘이순신 길’ 여정에서 신격화된 ‘성웅 이순신’이 아닌 ‘인간 이순신’에 주목함으로써 ‘이순신의 길’, 다시 말해 ‘이순신이 가고자 했던 길’을 되짚는다.
Contents
서설_정유년(1597) 그해 8월, ‘이순신 길’로 떠나며



1부 전쟁

임진-정유 ‘7년 왜란’, 그 처절한 기억



조선 아침 바다 덮친 ‘7년 전쟁’


수평선 뒤덮고 몰려오는 왜적선|침공하자마자 무너진 부산진·동래성|사흘 동안 군졸 300 명도 못 모은 병조兵曹|전라좌수영 5관 5포에 비상령|경상도 바다로의 출동 놓고 격론|‘이순신의 전쟁’첫 희생자 황옥천|임금 도망치자 궁궐 불태워버린 ‘쌍놈’들|궁궐, 귀중 서적, 역대 실록 모두 잿더미로|내동댕이쳐진 임금님 수라상|한강 방어 장수 무기 내던지고 줄행랑|백성 머리 잘라 “왜적 머리다” 군공 다툼|원균도 백성 머리 베 군공 노려|굶주린 백성들 사람 잡아먹고 뼈 고아먹고|박광전 “백성 기름, 피 짜내는 것이 나라냐” 호통|벼랑 끝에 몰린 백성들은 도적떼로|도적 8명을 못 당한 군사 400명|이순신, ‘장수들 쥐새끼처럼 숨어버렸다’|정유왜란은 전라도 침략전쟁





2부 동행

이순신, 바다 찾아 떠나다



그대만 믿느니, 바다로 달려가 나라 구하라


백의白衣 벗다|‘이순신 복 있는 얼굴 아니다’|칠천량에서 궤멸된 조선 수군|배도 군사도 없는 빈손의 통제사|진주 원계→보성 군학, 남도 700리|경상도 연해안 도륙하며 밀려오는 왜적|군량에 말먹이, 요강까지 짊어진 병사들|‘달래나보지’ 전설 얽힌 매더기재|‘행보역’은 하동군 횡천면 대덕에 있었다



칠흑 세상으로 놓인 칠흑의 길

두치강이 위태롭다|어머니 장례날인데 몸은 천 리 타향에|선조 “이순신, 글은 아느냐?”|정유년《난중일기》는 왜 두 벌인가|의문의 지명‘두치豆恥’와‘강정江亭’|두치진은 하동읍 만지 배밭에 있었다|박대남이 잘못 간‘강정’은 섬진교 근처?|하동포구에 부는 피바람|의병장 김덕령의 동생‘덕린’에 대한 의문|김덕령 외아들 아버지 죽자‘용안 김씨’ 창본創本|김덕령 직계손 남한에 500명, 광주에 4명|정탐군사 모두 도망쳐 왜적 침공 모른 남원부|외롭게 석주관 지키는 구례현감 이원춘|인적 끊긴 구례읍성엔 음산한 정적만



왜적 선봉 두치에 오르다

“순천부 정탐하라” 송대립 급파|사천·곤양에서 대학살 자행하며 진격하는 왜적|전국에서 도적떼 창궐|운봉 군사 반은 도적 앞잡이|지리산‘임걸령’은 도적 두목의 이름|전라·경상도 잇는 교통 근거지 구례|이순신 발 벗고 건넌 섬진강‘나발목’|원효대사가 시끄러운 물소리 가둬버린‘잔수’|섬진강 따라 흐르는 수려한 강둑길|목재 집산지로 북적대던 교통 요지 압록|병사들 오갔던 길에 레일바이크 행렬|임금은 전라도 포기하고 왕실 피란 걱정만



전국 떠도는 전라도 피란민 …… “경기에 정착촌을”

도요토미 히데요시, ‘전라도 모조리 한 번에 죽여라’|삼기면 괴소-월경리 길에 순천·낙안 피란민 가득|남원 인구 반이 경상도 피란민|고을 쑥대밭 되니 수령들 부임 기피|세월을 지키며 세월을 증거하는 고목들|곤장치려 하자 허겁지겁 나타난 옥과현감|왜적 소문에 옥과현 관리들 창고 털어 도망



백성들 일어서다 …… 전국 곳곳 의병 봉기

이순신은 왜 옥과에 갔을까|유팽로, 왜침 듣고 순창에서 창의|순창 대동산 아래 세운 의병 기치|담양 추성관서 전라도연합의병 출범|6,000 전라도 의병 금산성에 집결|“왕비 피란은 나라 멸망 자초하는 일”|명성 자자하던‘석곡 돼지고기’|이순신이 잔‘석곡강정’은‘능파정’



왜교성전투 후방기지 ‘창촌’, 전초기지 ‘불모퉁이’

옛길 찾아 세 번 걸은 석곡→창촌 길|‘적 막아달라’ 울며 이원익에게 매달린 임금|옛 흔적 사라지고 잊힌 부유창 옛터 창촌|개구리 즐겨 먹는 명 장수 …… 백성들 잡아 대느라 곤욕|부녀자 빼앗아 살림 차린 명군 수만 명|왜교성전투 전초기지‘불우’는 순천시 해룡면‘불모퉁이’|‘구치’는 순천시 서면 ‘비들치’|무기 버려둔 채 텅 빈 순천읍성



가자, 회령포로! 재기의 선단 꾸리리라

수군은 죽지 않고는 못 돌아오는‘귀신굴’|왜장에게 딸 바치고 권세 부린 박사유|전장에서 죽고 괴질에 죽고 굶어 죽고|원나라 일본 원정군 병선 건조한 회령포|순천-낙안 잇던 중세의 대로, 당고개 길|응령 매바위 옮기자 아랫마을에 재앙|불탄 낙안읍성엔 그을음 냄새만 가득|동헌 마당에서 치도곤 당하는 백성|낙안 병사들 훈련장‘뻔덕지’|길가에 늘어서서 술 권하는 노인들|군량 가득 찬 채 봉인된 조양창



성벽은 새마을사업으로 헐리고 건물은 팔려 뜯기고

옛 유적 많은 고내마을|위장병·신허증에 시달린 이순신|백성들 떠난 들판엔 오곡만 홀로 익고|천 리 밖 왜적 기세에 조정이 먼저 붕괴|섬마다 육지 피란민들로 인산인해|명량대첩 때 큰 공 세운 피란민 | 바다 휘덮은 불길한 정적



위기의 남원성 …… 전국에 총동원령

남원성안 병력 분산 배치 침공 대비|양산항 집 창고에 양식 가득|‘이순신 장군이 우리 집에서 사흘 잤답디다’|양산항 집은‘경춘씨 집터’에 있었다|뜻밖에 나타난 옛 부하 송희립·최대성



도망친 경상우수영 선단 행방 ‘비로소 알았다’

느닷없는 군대 행진에 놀란 남원성 왜적들|왕실 피란에‘임금 도륙 당할 일’ 신하들 반발|‘백성 못살게 구는 임금은 원수’|‘이제 바다로 나갈 때가 되었다’ 선상 식량 준비|도망친 배설의 선단 벽파진에 숨었다|한 끼에 쌀 한 말 먹은 원균|칠천량에서 도망친 배 8척인가 12척인가|곤장 맞다가 즉사한 보성군수



왜적, 남원성 덮치다

보성에 한꺼번에 들이닥친 어사와 선전관|사천왕 이용한 심리전에 기겁한 남원성안|기록에만 남은 채 사라진 보성읍성|어사 임몽정이 전하는 경상도 참상|장인 때 시작된 보성과의 인연|무인의 길, 시련의 길



‘수군 혁파’ 왕명에‘ 배 12척 있다’ 반발

마을에 연기 끊긴 추석 대명절|남원성, 적장과의 마지막 담판 무산|‘수군 없앤다. 뭍에 올라 싸워라’|비록 왕명을 거부한 죄를 짓더라도|이순신의 절대적 후원자 유성룡|유성룡, ‘의리’에 발목 잡혀 벼랑 끝에|이순신 전사한 날 유성룡 파직|폭우 속에 무너지는 남원성



남원성 함락되다

군수만 남겨두고 보성 관리들 모두 도망|관리들 숨은‘ 굴암’은 오봉산‘ 칼바위 동굴’?|‘보성인 박사명·사형’은 누구인가|‘절친’ 선거이, 이억기와 통제사 물망에|자폭으로 사라진 1만 목숨‘ 만인의총’에|생사당에 모셔진‘ 남원 패장’ 양원|쇠사슬에 묶여 노예로 끌려가는 백성들|인적 끊긴 전주성엔 시체 썩는 냄새만|도망친 관리들 잡아다 수군에 징발



배설이 배를 보내지 않았다 괘씸하다

마지막 노정, 군영구미 가는 길|봇재 저 아래 안개에 잠긴‘ 내 바다’|주검의 정적만 쌓인 유령의 성곽 남원성|산골짜기에 펼쳐지는 옛 회령포|백사정은 정경달 별장|배설이 배 안 보내 늦춰진 회령포행



이순신, 배에 오르다

파란만장한 장수의 삶, 운명인가|왜란 소문 급박하자 미치광이가 된 백성들|사방 천지에 아비 모르는 아이들|호남이 없다면 나라도 없을 것|밤늦게 조정에 날아든 남원성 함락 비보|왔구나! 우람한 몸체 드러낸 판옥선





3부 항진航進

승전의 해협‘ 명량’, 죽음의 바다‘ 노량’으로



승선 한 달 만에 명량대첩, 노량- 광양바다 마지막 대격전


어란에서 왜적선과 첫 조우, 배설은 겁먹고 우수영에서 도망|명량 뒤덮은 검붉은 전운, 시시각각 늘어나는 왜적선|꿈에 나타난 신인이 일러준 ‘승전비책’, 전라좌수영 바다에 나타나 병서 전한 자운선사|13척으로 133척 격퇴, 31척 수장, 중계하듯 생생히 전하는 명량대첩 ‘현장’|대첩 후 서해 순항하며 전력 보강, 섬마다 피란선 모여 북적 …… 통행첩 팔아 군비 조달|왜적들 전라우수영 불태워 분풀이, 순천왜교성에 집결, 일본으로의 탈출로 모색|의문의 섬‘안편도’는 신안‘장산도’, ‘나주와 영암 월출산까지 훤히 트였다’|막내아들 전사 소식에 장산도 염막에 숨어 통곡, 몸부림치다가 되 남짓 코피 쏟기도|명량대첩 포상 은 20냥, 비단 1필, 선조는 “몸보신하라” 고기 반찬 보내|‘지형지세가 한산도보다 배나 좋다’ 고금도 이진, 군사·백성 동원 농사짓고 군비 강화|명나라 수군 1만 3,000명 고금도 합세, 이순신 소식 듣고 구름처럼 모여든 백성들|포연에 묻힌 순천왜교성, 9월 20일 기해 조·명연합수·육군 총공세|합동작전 중 도망친 명나라 제독 유정, 왜적 이순신에게 뇌물 보내며 “퇴로 열어달라”|큰 별, 죽음의 바다 노량에 지다, ‘반드시 적을 섬멸하게 해 주소서’ 마지막 축원|이순신 시신 60일간 고금도 안치, 지신地神도 애석해해 풀 자라지 않는 월송대



후기_새로운 여행을 위한 에필로그

부록_정유년 두 벌《 난중일기》 비교표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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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thor
이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