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이트는 그 당시 의사들을 어렵게 했던 ‘히스테리(Hysteria)’를 치료하는 과정에서 신체 증상 너머에 있는 무의식의 심리세계와 그 영향들을 발견하게 된다. 그리고 지속성 있는 치료 효과를 낳을 수 있는 효율적인 치료법을 고안하려고 애썼다. 이러한 과정에서 프로이트는 여러 가지 시행착오를 겪어야 했고, 치료적 난제들을 통해서 자신이 세웠던 전제들을 수정하면서 그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었다. 초기 프로이트학파 사람들은 치료 안에서 일어나는 다양하고 예측하기 어려운 상황들을 정신분석적으로 대처하는 것이 어떤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그들은 계속해서 프로이트에게 기법에 대한 글을 써달라고 요청했고 프로이트는 1911년에 [정신분석에서 꿈 해석]을 시작으로 1914년까지 기법에 관한 6편의 소논문을 쓰게 된다. 이 6편의 글들과 1910년에 출판된 흥미로운 [‘Wild’ Psychoanalysis]를 함께 엮은 것이 『프로이트에게 배우는 정신분석 치료기법』이다.
한국의 많은 치료사들도 100년 전 프로이트라는 치료사가 그랬던 것처럼 어려운 과제들과 씨름하면서 여러 가지 시행착오를 경험해 보았을 거라고 생각한다. 앞서 이 길을 걸어갔던 프로이트에 대한 비판이 무성하고 그에 대한 단편적 지식은 가지고 있지만, 정작 프로이트가 무엇을 하려고 했는지 사람들이 잘 알고 있지 못하다는 인상을 받는다. 우리 안에 있는 편견을 조용히 내려놓고 이 책에 실린 글들을 읽어보면 치료사로서 프로이트가 얼마나 많은 경우의 수를 고려하면서 가장 효율적인 치료 방법을 모색하려고 애썼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을 번역하면서의 바람은 우리가 프로이트에게 배워서 프로이트를 넘어 그 다음 단계로 나아가는 것이다.
Contents
옮긴이의 머리말
‘제멋대로’의 정신분석 (첫 번째:1910)
정신분석에서 꿈 해석 (두 번째:1911)
전이의 역동 (세 번째:1912)
정신분석을 시행하는 치료사들에게 주는 권고 (네 번째:1912)
치료의 시작에 대해서 (다섯 번째:1912)
기억하기, 반복하기, 그리고 작업해내기 (여섯 번째:1914)
전이-사랑에 대한 관찰 (일곱 번째:1915)
Author
지그문트 프로이트,한동석
1896년 '정신분석'이라는 말을 처음으로 소개함으로 정신분석학 발전의 계기를 마련한 인간 정신의 탐구자이다. 그는 현대 사상에 코페르니쿠스적인 대전환을 가져온 위대한 사상가로서 무의식 세계를 개척하여 아인슈타인과 더불어 20세기의 양대 산맥으로 불리고 있다.
1856년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모라비아 프라이베르크에서 태어난 프로이트는 신경 해부학, 신경 생리학 분야에서 놀라운 업적을 쌓으면서 그의 연구 활동을 시작하였다. 1873년 빈 의과대학에서 생리학을 전공했던 그의 삶은 1885년 프랑스 파리로 유학을 떠나면서 전환점을 맞이한다. 프로이트는 그곳에서 히스테리 환자들을 치료하며 심리와 신체 관계의 문제를 파고들기 시작했고, 이를 토대로 1896년에 ‘정신분석’이라는 이론을 정립한다. 처음에는 단순하게 신경증 환자들의 정신을 탐구하면서 그들을 치료하는 것으로 시작되었지만 곧 정신분석학은 건강하건 병들었건 관계없이 정신 전반에 관한 지식을 탐구하는 매개 학문으로 자리하게 되었다. 프로이트는 어린 시절의 정상적인 성적 발달 단계를 설명하고, 주로 꿈의 해석에 근거를 두어 인간의 일상적인 생각과 행위에 영향을 미치는 무의식적인 힘들을 발견해 냈다. 그는 인간의 정신을 분석하기 위한 과학적이고 체계적인 도구를 최초로 찾아낸 사람이다. 1938년 나치의 탄압을 피해 런던으로 망명했던 그는 1923년에 얻은 구강암이 재발하여, 건강을 회복하지 못하고 1989년 9월 23일 생을 마감했다.
1896년 '정신분석'이라는 말을 처음으로 소개함으로 정신분석학 발전의 계기를 마련한 인간 정신의 탐구자이다. 그는 현대 사상에 코페르니쿠스적인 대전환을 가져온 위대한 사상가로서 무의식 세계를 개척하여 아인슈타인과 더불어 20세기의 양대 산맥으로 불리고 있다.
1856년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모라비아 프라이베르크에서 태어난 프로이트는 신경 해부학, 신경 생리학 분야에서 놀라운 업적을 쌓으면서 그의 연구 활동을 시작하였다. 1873년 빈 의과대학에서 생리학을 전공했던 그의 삶은 1885년 프랑스 파리로 유학을 떠나면서 전환점을 맞이한다. 프로이트는 그곳에서 히스테리 환자들을 치료하며 심리와 신체 관계의 문제를 파고들기 시작했고, 이를 토대로 1896년에 ‘정신분석’이라는 이론을 정립한다. 처음에는 단순하게 신경증 환자들의 정신을 탐구하면서 그들을 치료하는 것으로 시작되었지만 곧 정신분석학은 건강하건 병들었건 관계없이 정신 전반에 관한 지식을 탐구하는 매개 학문으로 자리하게 되었다. 프로이트는 어린 시절의 정상적인 성적 발달 단계를 설명하고, 주로 꿈의 해석에 근거를 두어 인간의 일상적인 생각과 행위에 영향을 미치는 무의식적인 힘들을 발견해 냈다. 그는 인간의 정신을 분석하기 위한 과학적이고 체계적인 도구를 최초로 찾아낸 사람이다. 1938년 나치의 탄압을 피해 런던으로 망명했던 그는 1923년에 얻은 구강암이 재발하여, 건강을 회복하지 못하고 1989년 9월 23일 생을 마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