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는 자신과 자신을 둘러싼 존재에 대한 철학적 반성 없이는 깊은 수행으로 들어갈 수 없다고 한다. 이러한 가르침을 불교사상사에서 가장 잘 구현한 불교가 바로 아비달마불교이다. 아비달마불교가 추구한 것은 존재에 대한 이해, 즉 존재의 실상을 이해하는 데 있었다. 그래서 아비달마를 대표하는 설일체유부(유부)는 지금 우리가 인식하고 있는 현실, 즉 경험세계에 대한 탐구를 수행의 선행조건으로 삼았던 것이다. 유부는 ‘식유필경(識有必境)’에 근거해서 시간과 존재의 문제를 분석 및 정리했다. 이 책의 저자인 사사키 겐쥰은 불교의 시간과 존재에 대한 종합적 이해를 탁월한 식견으로 논하고 있다.
제1편 시간론은 시간에 관한 동.서양의 다양한 시간론을 제시하면서 불교적 시간론의 특질이 무엇인가를 밝힌다. 나아가 불교 시간론에 있어서도 남전과 북전 아비달마불교 시간론의 차이를 밝힐 뿐만 아니라, 남북전 아비달마불교의 시간론이 대승불교에 어떻게 전승되고 이해되었는가를 또는 어떻게 비판되었는가를 논구하고 있다. 제2편 존재론에서는 제1편 시간론을 바탕으로 하여, 유부의 존재체계를 밝히고 있다. 특히 제2편에서는 세친이 『구사론』을 통해 유부의 사상을 비판한 것에 대해, 정통 유부논사인 중현의 『순정리론』을 통해 재반박한 내용을 담고 있다. 일반적으로 유부의 사상을 말함에 있어, 대부분 세친의 『구사론』을 거론하고 그 바탕에 근거해 이해한다. 그러나 『구사론』은 유부의 사상을 온전히 전했다고 볼 수 없다. 유부철학의 온전한 이해는 중현의 『순정리론』에 대한 이해에 근거해야 한다. 이에 저자는 제2편 존재론을 통해, 유부의 삼세실유.법체항유가 불교의 근본사상인 연기론과 무상론에 위배되지 않음을 탁월한 식견으로 논하고 있다.
시간과 존재란 모든 철학사상사에서 가장 중요한 주제이자 쟁점이다. 불교 역시 아비달마불교를 기점으로 하여, 대승불교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논쟁을 벌여 왔다. 이 책은 그 논쟁의 핵심을 중심으로 그 발단과 전개과정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그러므로 불교철학이나 그 핵심개념에 대한 이해를 도모하고자 하는 분들에게는 좋은 길라잡이가 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