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인은 법대 지망이었다가 고2 말에 공과 지망으로 바꾸었는데, 이공계 직업은 순전히 밥벌이의 도구였으며 글을 쓰는 것에 모든 것을 바치며 지난 50년 이상을 살았습니다. 글 쓰는 것 외에는 나를 진정으로 행복하게 만들고 나의 심장을 뛰게 하는 일은 거의 없었습니다.
35년 간 미국에 거주하면서 수천 개의 칼럼들을 조선일보 (1974-75), 미국판 동아일보 (1977-81), 미국판 주간현대 (1989 ? 2004)에 게재하였고, 환갑이 지난 후 귀국하여 국내 주간현대 인터넷 신문 브레이크뉴스 (2005 ? 2016)에 500개 이상의 칼럼 등 수십년 간 수천 개의 칼럼을 발표하였습니다.
본인은 오로지 분석하고 예측하기 위하여 이 세상에 태어난 사람입니다.
본인의 인생에서 나머지는 소수점 이하입니다.
박정희 대통령님과 박근혜 퍼스트레이디 대행은 1994-95년 당시 본인의 글들에 대하여 매우 긍적정이셨으며, 큰영애님은 국회의원이 되신 직후 본인에게 아버지의 역사적 대변인 역할을 당부하였으며, 2016년에 본인을 후계자로 지정하시었습니다.
다만, 본인은 2013년까지도 정치를 하겠다는 마음은 전혀 없었고, 칼럼을 통하여 그럴 일은 결코 없을 것이라고 지속적으로 밝혔었습니다. 그러나 큰영애님이 여성이라는 점 때문에 정치적으로 몰매를 당하고 매장되는 광경을 목격하고 정치를 하겠다고 마음을 굳게 먹게 되었습니다.
반만년 가난 속에서 우리가 겪은 고통은 수천 년 인간들이 세계방방곡곡에서 모두가 겪은 일인바, 그 핵심에는 3가지 문제점들이 있습니다:
1. 무조건 내 자식은 위로 올리고 싶다.
2. 통하기만 하며 거짓말하고 훔치는 것이 가장 성과가 크고 빠르다.
3. 여러 명이 떼를 지어 묻지마 충성으로써 뭉치는 것이 인생에서 승리의 첩경이다.
이 문제들을 개선 내지 해결하는 것이 본인의 소망이며 인생의 목표입니다.
본인은 법대 지망이었다가 고2 말에 공과 지망으로 바꾸었는데, 이공계 직업은 순전히 밥벌이의 도구였으며 글을 쓰는 것에 모든 것을 바치며 지난 50년 이상을 살았습니다. 글 쓰는 것 외에는 나를 진정으로 행복하게 만들고 나의 심장을 뛰게 하는 일은 거의 없었습니다.
35년 간 미국에 거주하면서 수천 개의 칼럼들을 조선일보 (1974-75), 미국판 동아일보 (1977-81), 미국판 주간현대 (1989 ? 2004)에 게재하였고, 환갑이 지난 후 귀국하여 국내 주간현대 인터넷 신문 브레이크뉴스 (2005 ? 2016)에 500개 이상의 칼럼 등 수십년 간 수천 개의 칼럼을 발표하였습니다.
본인은 오로지 분석하고 예측하기 위하여 이 세상에 태어난 사람입니다.
본인의 인생에서 나머지는 소수점 이하입니다.
박정희 대통령님과 박근혜 퍼스트레이디 대행은 1994-95년 당시 본인의 글들에 대하여 매우 긍적정이셨으며, 큰영애님은 국회의원이 되신 직후 본인에게 아버지의 역사적 대변인 역할을 당부하였으며, 2016년에 본인을 후계자로 지정하시었습니다.
다만, 본인은 2013년까지도 정치를 하겠다는 마음은 전혀 없었고, 칼럼을 통하여 그럴 일은 결코 없을 것이라고 지속적으로 밝혔었습니다. 그러나 큰영애님이 여성이라는 점 때문에 정치적으로 몰매를 당하고 매장되는 광경을 목격하고 정치를 하겠다고 마음을 굳게 먹게 되었습니다.
반만년 가난 속에서 우리가 겪은 고통은 수천 년 인간들이 세계방방곡곡에서 모두가 겪은 일인바, 그 핵심에는 3가지 문제점들이 있습니다:
1. 무조건 내 자식은 위로 올리고 싶다.
2. 통하기만 하며 거짓말하고 훔치는 것이 가장 성과가 크고 빠르다.
3. 여러 명이 떼를 지어 묻지마 충성으로써 뭉치는 것이 인생에서 승리의 첩경이다.
이 문제들을 개선 내지 해결하는 것이 본인의 소망이며 인생의 목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