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복

$37.72
SKU
9791128893186
+ Wish
[Free shipping over $100]

Standard Shipping estimated by Fri 01/3 - Thu 01/9 (주문일로부 10-14 영업일)

Express Shipping estimated by Tue 12/31 - Thu 01/2 (주문일로부 7-9 영업일)

* 안내되는 배송 완료 예상일은 유통사/배송사의 상황에 따라 예고 없이 변동될 수 있습니다.
Publication Date 2024/07/12
Pages/Weight/Size 128*188*36mm
ISBN 9791128893186
Categories 소설/시/희곡 > 고전문학
Description
적극적으로 사회를 비판하며 참여문학적 입장을 견지했던 독일 작가 하인리히 만의 대표작이다. 빌헬름 2세 치하 독일제국에서 황제의 충복을 자처하며 정치권력과 이익을 얻는 데 몰두하는 시민 계급 디데리히 헤슬링과 그 주변 인물을 통해 당시 시대상을 통렬하게 풍자한다.
Contents
제1장
제2장
제3장
제4장
제5장
제6장

해설
지은이에 대해
옮긴이에 대해
Author
하인리히 만,남기철
1871년 3월 북부 독일의 뤼베크시에서, 곡물 회사를 운영하며 시 의회 의원을 지낸 부친과 남미 출신 모친의 다섯 자녀 가운데 장남으로 태어났다. 노벨상 수상 작가 토마스 만이 그의 동생이다.

뤼베크의 김나지움 중퇴 후 드레스덴의 서점에서 견습 사원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했으며, 1890년부터 1892년까지 베를린 대학에서 공부했다. 1892년부터 자유주의 성향의 잡지 《현재》에 비평과 에세이를 발표하며 글을 쓰기 시작했다. 1891년 부친의 사망 이후 경제적 어려움 없이 작품 활동에 전념했으며, 어머니의 적극적인 도움으로 1894년 첫 소설 《어떤 가족에서》가 출간되었다. 1895년부터 이듬해까지 월간지 《20세기》에서 편집인으로 일하고, 1896년부터 1898년까지 이탈리아와 프랑스에 머물면서 작품 구상을 한다. 이 시기에 작가는 두 나라의 사상과 문학에 많은 영향을 받는다. 그의 두 번째 소설 《게으름뱅이의 천국》이 이 시기에 완성되었으며 《여신들》도 구상했다. 1899년부터 1914년까지 뮌헨, 베를린, 이탈리아에 살면서 《작은 도시》, 《애정 추적》, 《운라트 선생 또는 어느 폭군의 종말》 등을 발표했다. 1919년에 작가의 첫 수필집 《권력과 인간》이 출간되었다. “독일공화국에 바침”이라는 헌사가 붙은, 독일의 역사와 철학 그리고 프랑스 혁명에 대한 작가의 견해가 담긴 수필집이다. 작가는 여기서 독일 제국과 당시 유행처럼 번지던 민족주의 사상이 독일 사회의 발전을 저해했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제1차 세계대전 이후 바이마르공화국 사회의 시대상을 그린 《어머니 마리》, 《유제니》, 《대사건》을 집필했다. 1928년, 당시 유럽 예술의 수도 격이었던 베를린으로 이주하였으며 1930년 프로이센 예술원 문예 부문 총재를 맡았다. 그의 소설 《운라트 선생 또는 어느 폭군의 종말》을 원작으로 한 영화가 1930년에 ‘푸른 천사’라는 제목으로 제작되어 미국과 독일에서 상영되었다.

히틀러가 독일 수상에 임명되기 전, 그를 비판하는 선언문에 서명했던 하인리히 만은 1933년 히틀러가 수상 자리에 오르면서 예술원 회원 자격을 박탈당한다. 곧이어 국적마저 박탈당한 하인리히 만은 독일을 떠나 프랑스와 미국에서 망명 생활을 했다. 프랑스 망명 시절에 쓴 대표 작품으로 장편 역사 소설 《앙리 4세의 청년기》와 《앙리 4세의 완성기》가 있다. 제2차 세계대전 종전으로 동독 예술원 총재로 선임되었으나 귀국 직전, 당시 망명 중이던 미국 캘리포니아주 산타모니카에서 사망했다.
1871년 3월 북부 독일의 뤼베크시에서, 곡물 회사를 운영하며 시 의회 의원을 지낸 부친과 남미 출신 모친의 다섯 자녀 가운데 장남으로 태어났다. 노벨상 수상 작가 토마스 만이 그의 동생이다.

뤼베크의 김나지움 중퇴 후 드레스덴의 서점에서 견습 사원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했으며, 1890년부터 1892년까지 베를린 대학에서 공부했다. 1892년부터 자유주의 성향의 잡지 《현재》에 비평과 에세이를 발표하며 글을 쓰기 시작했다. 1891년 부친의 사망 이후 경제적 어려움 없이 작품 활동에 전념했으며, 어머니의 적극적인 도움으로 1894년 첫 소설 《어떤 가족에서》가 출간되었다. 1895년부터 이듬해까지 월간지 《20세기》에서 편집인으로 일하고, 1896년부터 1898년까지 이탈리아와 프랑스에 머물면서 작품 구상을 한다. 이 시기에 작가는 두 나라의 사상과 문학에 많은 영향을 받는다. 그의 두 번째 소설 《게으름뱅이의 천국》이 이 시기에 완성되었으며 《여신들》도 구상했다. 1899년부터 1914년까지 뮌헨, 베를린, 이탈리아에 살면서 《작은 도시》, 《애정 추적》, 《운라트 선생 또는 어느 폭군의 종말》 등을 발표했다. 1919년에 작가의 첫 수필집 《권력과 인간》이 출간되었다. “독일공화국에 바침”이라는 헌사가 붙은, 독일의 역사와 철학 그리고 프랑스 혁명에 대한 작가의 견해가 담긴 수필집이다. 작가는 여기서 독일 제국과 당시 유행처럼 번지던 민족주의 사상이 독일 사회의 발전을 저해했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제1차 세계대전 이후 바이마르공화국 사회의 시대상을 그린 《어머니 마리》, 《유제니》, 《대사건》을 집필했다. 1928년, 당시 유럽 예술의 수도 격이었던 베를린으로 이주하였으며 1930년 프로이센 예술원 문예 부문 총재를 맡았다. 그의 소설 《운라트 선생 또는 어느 폭군의 종말》을 원작으로 한 영화가 1930년에 ‘푸른 천사’라는 제목으로 제작되어 미국과 독일에서 상영되었다.

히틀러가 독일 수상에 임명되기 전, 그를 비판하는 선언문에 서명했던 하인리히 만은 1933년 히틀러가 수상 자리에 오르면서 예술원 회원 자격을 박탈당한다. 곧이어 국적마저 박탈당한 하인리히 만은 독일을 떠나 프랑스와 미국에서 망명 생활을 했다. 프랑스 망명 시절에 쓴 대표 작품으로 장편 역사 소설 《앙리 4세의 청년기》와 《앙리 4세의 완성기》가 있다. 제2차 세계대전 종전으로 동독 예술원 총재로 선임되었으나 귀국 직전, 당시 망명 중이던 미국 캘리포니아주 산타모니카에서 사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