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산 시문선집 큰글자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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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blication Date 2022/08/28
Pages/Weight/Size 128*188*30mm
ISBN 9791128865954
Categories 소설/시/희곡 > 시/희곡
Description
근대 한문학자 후산 정재화의 문집 ≪후산졸언≫에서 시 108제 170수를 완역하고 문 세 편을 뽑아 옮겼다. 일제 강점기부터 광복과 6·25 전쟁, 유신 등 격변의 시대를 살면서 근대화를 거부하고 전통을 지켜 나간 올곧은 유학자의 고뇌를 살펴볼 수 있다.

수많은 만사에서는 함께 일제에 항거하고 유학의 전통을 이어 나가던 동지들의 죽음에 대한 안타까움이 깊이 스며 있으며, 학문을 주제로 삼은 시에서는 마음을 갈고닦아 성리학의 도를 되살리려는 마음공부의 길을 밝힌다. 노년기의 시에서는 자연 속에서 우주적 화해를 깨달은 초탈한 정신을 엿볼 수 있다.

개화기 이후 단절된 근대 한문학의 맥이 어떻게 이어지는지, 퇴계학파, 남명학파, 성호학파를 잇는 영남 지역의 학통과 각 학자들의 교유 관계를 살필 수 있다.
Contents
시(詩)

1. 삼종숙의 만취정 시운에 차운함
2. 죽음으로 편안한 어른의 덕 - 이덕후 만사
3. 북망가 속의 한 3수 - 노상직 만사
4. 안으로 온축한 옥빛 3수 - 김형모 만사
5. 다음에 만나자 하시더니 2수 - 김영학 만사
6. 이수정 시에 차운함
7. 내 슬픔 타인보다 특별해 - 허채 만사
8. 한결같은 마음이여 3수 - 허채 만사
9. 문장은 행실의 나머지 - 허채 만사
10. 세의는 산처럼 무겁고 - 최성형 만사
11. 가난했지만 3수 - 박창진 만사
12. 천지가 긴 밤 속으로 - 이병희 만사
13. 세상살이 어려운 길 3수 - 최우동 만사
14. 소매 속에 넣어 둔 경륜 3수 - 장상학 만사
15. 해운정 낙성에 차운함
16. 말세에도 중도 지킨 이 - 송준필 만사
17. 숲속에 남긴 자취 3수 - 송홍눌 만사
18. 도덕과 문장으로 뛰어난 이 4수 - 이정기 만사
19. 동남 제일의 큰 문장 3수 - 이기형 만사
20. 일생 동안 남긴 성효 - 여상문 만사
21. 짐짓 예봉을 감추고 3수 - 정묵용 만사
22. 한결같은 참된 마음 - 정재봉 만사
23. 이 부자의 사손 3수 - 이충호 만사
24. 나의 곡을 공은 아시는가 - 이규형 만사
25. 책상 위에 남은 옛 편지 2수 - 장하석 만사
26. 백당 박 공의 운엽정에 차운함
27. 왕희지 필법에 두보 시 - 송홍래 만사
28. 상매 문중에서 추중한 선비 3수 - 이상기 만사
29. 오와 족장 정경호를 축수함
30. 비어 있는 한 자리 3수 - 김수응 만사
31. 순수한 마음 가진 이 2수 - 우규상 만사
32. 회연에서 오암으로 2수 - 최성욱 만사
33. 허열수의 시에 차운함
34. 실천은 가법의 근본 3수 - 이주후 만사
35. 도석구의 효행에 차운함
36. 저승이 어찌 그리 멀다던고 2수 - 최영철 만사
37. 오래된 집안의 후손 2수 - 최승동 만사
38. 예송의 은미한 말씀 - 허 참봉 만사
39. 세속에서 빼어난 의표 - 이돈영 만사
40. 문채 될 바탕이 있었지만 - 이수인 만사
41. 웃으며 하시던 정담 2수 - 이성훈 만사
42. 만년에는 자취마저 감추어 2수 - 이영석 만사
43. 영남에서 맺은 인연 - 최봉곤 만사
44. 어진 집 객이 되어 2수 - 이영우 만사
45. 부질없이 배운 옛 학문 2수 - 장진영 만사
46. 김정태가 왔다가 돌아가서 시를 보내와 화답시를 청하거늘 이에 시 한 수를 지어 보내 줌
47. 정묘한 필법 - 정원호 만사
48. 우연히 읊음
49. 비 온 후 밤에 홀로
50. 벽초 정사에 차운함
51. 전쟁 통에 아들마저 잃고 2수 - 이경석 만사
52. 회연의 송단 모임
53. 부지런히 학문하던 때 2수 - 김종식 만사
54. 여름날 즉흥시
55. 처서 다음 날
56. 강직하고 방정한 성품 2수 - 이원태 만사
57. 마음 곧바로 통하던 이 2수 - 정주화 만사
58. 공손한 위의에 진실한 말씀 2수 - 여주연 만사
59. 발자취를 숨기고 4수 - 노근용 만사
60. 일생 동안 지닌 자강의 마음 3수 - 정지린 만사
61. 단표누항을 즐기며 - 이휘기 만사
62. 매화 아래 함께한 자리 2수 - 이만환 만사
63. 문 앞의 거리
64. 옥산 서원의 문원공 사당을 배알하고
65. 매화
66. 솔잎 먹고 산 반평생 2수 - 김인식 만사
67. 섬돌 가에 핀 꽃을 노래함
68. 기계에서 여러 벗들과 함께 짓다
69. 기계에서 이별한 후 앞의 운에 따라 이훈수에게 주다
70. 봄날 우연히 읊음
71. 봄 시름 깨우고자 지팡이 짚고 야외로 나오다
72. 스스로 경계함
73. 꽃을 감상하며
74. 우연히 읊음
75. 박영수 선조의 효행에 대해 차운함
76. 어짊으로 쌓은 복 - 최준 만사
77. 서로 믿으며 한 공부 - 이경환 만사
78. 복과 선은 하늘의 뜻 - 이장여 만사
79. 새로운 인연 맺고자 했더니 - 장인섭 만사
80. 순수한 마음 적은 말수 2수 - 이규순 만사
81. 서씨의 경남재 시운에 차운함
82. 예호기의 회혼을 축하함
83. 편액에 새긴 굳센 글씨 2수 - 이기윤 만사
84. 장인섭의 유거에 차운함
85. 불어난 물을 보며
86. 강양 제일의 품행 - 윤우여 만사
87. 곧은 글씨와 정결한 모습 - 곽동건 만사
88. 밭 갈며 책 읽으며 - 송주선 만사
89. 모명재에 차운함
90. 부모 두고 떠난 사람 2수 - 김태석 만사
91. 동도[경주]에서의 가을 회포
92. 함께 글 읽던 그 겨울 - 정순화 만사
93. 유거
94. 후산당
95. 젊은 날은 얼마던가
96. 분수 밖의 한가로움
97. 수륜동을 지나며 대나무와 잣나무가 푸르른 것을 보고 판윤 박 공의 굳은 절개를 생각하며
98. 망년의 정으로 사귄 친구 2수 - 장문여 만사
99. 침몰하는 영남의 운수 3수 - 이원각 만사
100. 둘이 나눈 정성 어린 편지 - 신억 추만
101. 응천 제일의 문장 2수 - 허섭 만사
102. 기국헌에 차운함
103. 요강
104. 문방사우
105. 마을에는 모두 전기를 쓰지만 나는 홀로 기름 등불이라네
106. 봄날 시냇가에서 읊조림
107. 여자정이 은후의 시를 차운해 나에게 줘서 내가 그 운을 사용해 화답하다

문(文)

1. 사종형 성재 공 묘도비명(四從兄省齋公墓道碑銘)
2. 뇌헌공 행장(磊軒公行狀)
3. 후산기(厚山記)

부록

발후산기(跋厚山記)
정후산 자실 행장(鄭厚山子實行狀)

해설
옮긴이에 대해
Author
정재화,정우락
정재화(鄭在華, 1905∼1978)는 자가 자실(子實), 호는 후산(厚山)으로 정복용(鄭福容)과 서흥 김씨(瑞興金氏) 사이에서 1남 1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어릴 때부터 영민할 뿐만 아니라 뜻이 견고했다고 한다. 족형 정재기의 문하에 나아가 ≪한사(漢史)≫를 읽었으며, 이후 정종호의 문하에서 가르침을 받아 가학 및 근기학적 전통을 이었다. 일제의 단발령에 따라 경찰이 그의 상투를 자르려 하자 일경(日警)을 벼루로 타격하고, 두 차례나 만주로 피신해 자정(自靖)의 장소로 삼고자 했다. 정종호의 문하에서 함께 공부한 여기동(呂箕東)은 이러한 사실을 전하며, 세속를 초극한 자질과 꺾을 수 없는 기절을 들어 그의 인품을 ‘강개(剛介)’와 ‘인영(人英)’으로 요약하기도 했다. 만년에는 독서와 양성(養性)으로 소일했으며 1978년 음력 1월 18일 세상을 떠났다.
정재화(鄭在華, 1905∼1978)는 자가 자실(子實), 호는 후산(厚山)으로 정복용(鄭福容)과 서흥 김씨(瑞興金氏) 사이에서 1남 1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어릴 때부터 영민할 뿐만 아니라 뜻이 견고했다고 한다. 족형 정재기의 문하에 나아가 ≪한사(漢史)≫를 읽었으며, 이후 정종호의 문하에서 가르침을 받아 가학 및 근기학적 전통을 이었다. 일제의 단발령에 따라 경찰이 그의 상투를 자르려 하자 일경(日警)을 벼루로 타격하고, 두 차례나 만주로 피신해 자정(自靖)의 장소로 삼고자 했다. 정종호의 문하에서 함께 공부한 여기동(呂箕東)은 이러한 사실을 전하며, 세속를 초극한 자질과 꺾을 수 없는 기절을 들어 그의 인품을 ‘강개(剛介)’와 ‘인영(人英)’으로 요약하기도 했다. 만년에는 독서와 양성(養性)으로 소일했으며 1978년 음력 1월 18일 세상을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