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에 있는 한 누구나 자신의 자리를 찾아야 한다. 그것이 사회의 법칙이다. 자신의 자리를 찾으면 계속 나아가야 한다. 계속 순응해야 한다. 모든 자리가 그렇다. 모든 직업이 그렇다. 다만 머리를 밀고 가사를 수한 승려의 삶이란 조금 다를지도 모르겠다. 선종을 표방하는 조계종의 수도승들은 한 해의 절반을 선원에서 보낸다. 8시간 이상의 좌선. 채식. 개인의 공간과 개인의 시간은 주어지지 않는다.
모종의 연유로 머리를 밀고, 먹물 옷을 입고, 가사를 수하고 하루의 절반에 가까운 시간을 좌복 위에 가만히 앉아서 보내는 라이프스타일이란 참으로 기묘한 것이다. 이 기묘한 라이프스타일 덕분에 수도승들은 삶과 사회로부터 집행유예를 받는다. 좌복 위에 앉아있을 때 이들은 완벽하다. 더 이상 보탤 것도 더 이상 덜어낼 것도 없다.
안거철이 돌아오고, 좌복 위에 앉아있을 때면 나는 모든 것을 유예받은 채 자유로운 망상에 잠긴다. 몸통을 좌복 위에 얹은 채 하릴 없이 있노라면 나는 속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세상이 존재한다.‘
인간은 내려치는 천둥에 더 놀라는 법을 배워야 한다고 말한 사람이 인류의 마지막 철학자라고 할 수 있는 비트겐슈타인이다. 나는 좌복 위에 앉아 내려치는 천둥에 더 놀라는 법을 배우고 있다. 삶과 사회의 모든 의무로부터 유예받은 채, 나는 세상이 존재한다는 이 쓸모없는 경이로움에 넋을 놓는다. 이것은 하루의 절반 이상을 좌복 위에서 하릴 없이 앉아있을 수 있는 사람들에게만 허용된 아주 신비롭고 낯선 사치이다.
Contents
머리말
독자에게 드리는 글
참선일기
2017년 8월 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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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8월 18일
꼬리말
글을 마치며
Author
설지
스무살, 친구가 죽었고 나는 죽음을 두려워했다. 죽음에 대한 몸부림이 나를 절로 가게 만들었다. 머리를 밀고, 먹물옷을 입고, 선원에서 좌선을 하며 때론 글을 쓰기도 한다. 저서로는 『인생의 허무함에 관한 논고』, 『참선일기』, 『묵조선을 위한 변명』, 『나는 어째서 중이 되었나』가 있다.
스무살, 친구가 죽었고 나는 죽음을 두려워했다. 죽음에 대한 몸부림이 나를 절로 가게 만들었다. 머리를 밀고, 먹물옷을 입고, 선원에서 좌선을 하며 때론 글을 쓰기도 한다. 저서로는 『인생의 허무함에 관한 논고』, 『참선일기』, 『묵조선을 위한 변명』, 『나는 어째서 중이 되었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