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기방회 스님은 속성이 냉(冷)씨이고, 강서성 선춘현 출신이다. 20세에 구봉산으로 출가하여 도오산에서 머리를 깎고 스님이 되었다. 출가 초기 스님은 남원사에서 감사(監寺선원서무를총괄소임)를 맡고 있었다. 그러나 궁극적인 지혜에 대한 의문을 지울 길이 없었다. 그래서 하루는 스승인 석상초원(石霜楚圓) 선사에게 물었다.
“불법이란 어떤 것입니까.” 하니 스승의 대답은 엉뚱했다.
“선원의 일이 이처럼 많은데 쓸데없는 소리 말고 네가 맡은 창고 일이나 부지런히 하거라.”
스님은 그 후에도 여러 번 반복하여 불법에 대하여 선사에게 물었지만 그때마다 스승은 제대로 대답해주지 않았다.
그래서 기회를 엿보다가, 어느 날 스승이 출타를 했다가 비에 흠뻑 젖어서 돌아오는 것을 보고는 스승의 멱살을 움켜쥐며 말했다. “이 늙은이야, 오늘 나에게 불법에 대해서 일러주지 않으면 방망이로 요절을 낼 테다.” 하니 이에 스승이 말했다.
“자네도 원래 이 일을 알고 있지 않나,” 하였다.
스님은 스승의 이 말을 듣자마자 그 자리에서 확연히 깨닫게 된다. 그래서 고마움을 이기지 못하여 진흙탕에 엎드려 스승께 절을 올렸다.
스님께서 12년 남짓 두 법석에 계시면서 강령을 제창하고 납자들을 맞아 지도하는 동안 많은 말씀을 남기셨으나 기록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그런데 형양의 수단(守端)스님이 말없이 여러 편을 기억하여 한 축(軸)의 책을 엮어 내었다.
양기파의 개조인 양기방회(楊岐方會)스님은 석상초원스님이 담주 광화사(光化寺)로 옮김에 하직하고서 구봉사로 돌아갔다. 그 후 승속의 청에 의해 원주 양기산 보통선원에 계시다가 담주 운개산 해회사(海會寺)로 옮겼다. 그곳에서 법석을 펴다가 얼마 후 입적하셨으니 속세 나이 54세에 운개산에서 돌아가셨으며, 그곳에 탑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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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각
무각(無覺)법사스님은 입산하여 20년간을 끊임없이 마음 깨닫는 수행에 정진하면서 보고 듣는 일이 많아진 현대인의 갈등과 방황을 치료하기 위하여 오직 명상서적만을 집필하였다. 우리는 우리가 누구이며 무엇으로 손과 발을 움직이는 주체를 알지 못한 채 세상을 무의미하게 넘길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것저것 손대 보아도 우리가 자신을 알지 못하면 수박겉핥기처럼 방황과 갈등에 혼란 당할 수밖에 없다. 잠든 나를 일깨우기 위한 무각스님의 외침은 계속 연재되고 있으며, 마음에 관한 비밀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다양하고 폭넓게 설하면서 지성으로 번뜩이는 정신적인 처방으로 현대인을 위한 이정표를 세우다.
무각(無覺)법사스님은 입산하여 20년간을 끊임없이 마음 깨닫는 수행에 정진하면서 보고 듣는 일이 많아진 현대인의 갈등과 방황을 치료하기 위하여 오직 명상서적만을 집필하였다. 우리는 우리가 누구이며 무엇으로 손과 발을 움직이는 주체를 알지 못한 채 세상을 무의미하게 넘길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것저것 손대 보아도 우리가 자신을 알지 못하면 수박겉핥기처럼 방황과 갈등에 혼란 당할 수밖에 없다. 잠든 나를 일깨우기 위한 무각스님의 외침은 계속 연재되고 있으며, 마음에 관한 비밀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다양하고 폭넓게 설하면서 지성으로 번뜩이는 정신적인 처방으로 현대인을 위한 이정표를 세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