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는 ‘미생물의 도시’,
로스 미크로비오스Los Microbios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마이코스피어(myco-sphere)’는 곰팡이 세상이다. 식탁 위 먹다 남은 빵 조각에서 지구 밖 우주정거장의 쇠파이프에까지, 그들은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곳 어디에나 있다. 북반구 침엽수림의 탄소량 중 절반 이상이 곰팡이에서 왔고, 토양 1제곱미터에는 지구 둘레의 절반을 휘감을 수 있는 곰팡이가 존재한다. 우리 몸에도 수많은 곰팡이가 살아간다. 다만 너무나도 오랜 시간 우리와 함께 하다보니 분명하게 선을 긋고 경계를 넘지 않아 그 존재를 인지하지 못할 뿐이다. 곰팡이는 산과 들에 있는 수많은 식물의 뿌리에, 논과 밭에서 자라는 농작물의 잎과 열매에, 막걸리와 맥주, 버섯에, 그리고 우리 몸속 구석구석에 우리가 눈치 채지 못하게 조용히 자리 잡고 있다.
그런데 은밀하게 숨어 있어 눈에 띄지 않던 곰팡이가 최근 도드라지기 시작했다. 가만히 세상을 움직이던 곰팡이의 보물을 끄집어내 의약품과 식품 제조에 쓰는 사람이 하나둘 나타났고, 있는지도 모르게 세 들어 살던 곰팡이가 면역력이 약해진 우리 몸에 무서운 일탈을 감행하고 있다. 곰팡이로 처리한 나무로 바이올린을 만들고, 버섯을 모아 포장재와 가구를 넘어 집까지 짓고 있다. 눈에 보이지 않아 잊고 있던 곰팡이의 거대한 세상이 점점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곰팡이의 사생활과 그들이 다른 존재와 얽혀 사는 세상, 우리는 그 세계를 '마이코스피어'라고 부른다.
Contents
프롤로그 우연한 만남
해부학 수업의 추억 / 동물을 만지기 싫어서요 / 맨 땅에 헤딩하던 기억 / ‘여성 과학자’라는 꼬리표 / 누구도 섬이 아니다
1. 곰팡이의 첫인상
곰팡이라 쓰고 진균이라 읽는다 / 음지에서 일하고 양지를 바라보는 삶 / 곰팡이의 세 얼굴 / 삶과 죽음의 중재자
[책갈피] 이름을 불러 주세요
2. 곰팡이의 역사를 찾아서
곰팡이는 진핵생물 / 기적의 탄생 - 더불어 살기 / 뿌리 찾기 - 진핵생물의 조상은 누구인가 / 상자 바깥을 생각하라
[책갈피]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곰팡이
3. 곰팡이는 우리와 정말 많이 닮았다
생명의 나무 / 닮은 점 찾기 / 뒤쪽에 꼬리가 달린 생물 / 닮아서 좋은 점, 닮아서 나쁜 점 / 노벨상과 효모의 인연
4. 당신을 사랑합니다
무성생식과 유성생식, 뭣이 중헌디 / 곰팡이의 사랑 이야기 / 사랑에 빠진 효모 / 사랑에도 조건이 있다 / 사랑의 생물학적 고찰
5. 나는 탐험한다, 고로 존재한다
요정의 고리 / 탐험의 이유 / 잠자는 숲속의 포자 / 건축의 기술 / 발은 누울 자리를 보고 뻗을 것 / 엉킨 솜뭉치의 비밀
[책갈피] 세심한 관찰은 위대한 발견의 출발점
6. 먹고 사는 이야기 - 발효와 호흡
‘먹는다’의 생물학적 의미 / 그들의 일용할 양식 / 미생물 연구자는 ‘미생물 급식 노동자’ / 곰팡이 포자가 내려앉은 딸기의 운명 / 두 갈래의 길 / 세상에서 가장 작은 발전소 / 효율과 속도의 딜레마 / 발효왕 효모
[책갈피] 스트라디바리우스의 비밀
7. 슬기로운 소비 생활
곰팡이는 죽어서 효소를 남긴다 / 살아 있는 효소 공장 / 노멀과 뉴노멀 / 곰팡이 메리와 멜론 / 곰팡이가 세균과 싸우는 무기 / 순환하지 않는 삶은 지속되지 못한다
8. 너의 목소리가 들려
여인의 향기 / 버섯이 보내는 신호 / 세포의 언어 / 똑똑, 거기 누구 없어요 / 곰팡이의 수다 / 소통과 공감의 생물학적 의미
[책갈피] 미생물의 도시, 로스 미크로비오스
9. 황야의 개척자들
산불 뒤에 찾아오는 첫 손님 / 둘 보다는 셋이 좋아 / 조류가 곰팡이를 만났을 때 / 넌 어느 별에서 왔니 / 지의류, 인간, 그리고 지구
10. 숲의 초고속 네트워크
더불어 숲 / 곰팡이의 땅 / 지구를 푸르게, 더 푸르게 / 작은 나무야, 작은 나무야 / 초고속 통신 네트워크 / 숲의 앵벌이 / 바다에도 숲이 있다 / 보이지 않는 숲의 네트워크
11. 농부에게 곰팡이는 양날의 칼
곰팡이와의 전쟁, 시작! / 침입 혹은 동거 / 아일랜드 대기근 / 그때는 몰랐지만 지금은 아는 것들 / 커피와 바나나 / 다양성의 힘 / 〈인터스텔라〉의 교훈
12. 위험한 동거
바닷가의 작은 마을 / 그 많던 개구리는 다 어디로 갔을까 / 항아리곰팡이의 기원 / 당신이 잠든 사이에 / 추울수록 힘이 나는 곰팡이
13. 나의 위기는 곧 누군가의 기회
보이지 않아도 늘 그곳에 있었다 / 조용한 이웃의 일탈 / 유칼립투스 나무의 곰팡이 형제 / 코로나바이러스와 털곰팡이 / 병원균은 없다
에필로그 그들과 함께 사는 세상
보이지 않는 가장 가까운 이웃 / 개와 고양이에 관한 불편한 진실 / 생명을 보는 새로운 눈 / ‘-gene’에서 ‘-ome’으로 / 자연에 혼자는 없다
참고 문헌
그림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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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thor
박현숙
어릴 적 과학잡지에 소개된 글을 읽고, 유전공학자가 되고 싶다는 부푼 꿈을 안고 이화여대 생물과학과에 들어갔다. 대학 4년 동안 동물과 식물을 배웠고, 졸업할 무렵 효모라는 귀여운 곰팡이를 알게 되었다. 얼결에 진학한 박사 과정에서 효모 유전학에 재미를 붙여 공부하다 보니 곰팡이 박사가 되었다.
곰팡이를 더 연구하고 싶다는 단순한 생각으로 미국에 건너갔다. UCLA 병원 연구소에서 일용직, 아니 박사후연구원으로 사람에게 병을 일으키는 곰팡이를 연구했다. 선택의 갈림길에서 단순한, 하지만 남들이 잘 가지 않는 길을 걷다 보니 운 좋게 캘리포니아 주립대학(California State University, Los Angeles)의 외국인 교수가 되어 십오 년째 '미생물 너드(nerd)'로 열강을 하고 있다.
낯선 곳에서 낯선 사람과 이십여 년을 살아서일까, 아니면 누군가와 늘 함께 하는 곰팡이 연구를 오래 한 까닭일까, 나의 강의는 어떤 주제로 시작하든 '모든 생명은 서로 소통하고 공존한다'는 이야기로 수렴한다. 강의실에서, 혹은 논문과 교재로 이야기하던 아직은 낯선 곰팡이의 사생활과 그들이 어울려 사는 세상, '마이코스피어(mycosphere)'를 더 많은 사람들과 함께 하고 싶어 이 책을 썼다.
어릴 적 과학잡지에 소개된 글을 읽고, 유전공학자가 되고 싶다는 부푼 꿈을 안고 이화여대 생물과학과에 들어갔다. 대학 4년 동안 동물과 식물을 배웠고, 졸업할 무렵 효모라는 귀여운 곰팡이를 알게 되었다. 얼결에 진학한 박사 과정에서 효모 유전학에 재미를 붙여 공부하다 보니 곰팡이 박사가 되었다.
곰팡이를 더 연구하고 싶다는 단순한 생각으로 미국에 건너갔다. UCLA 병원 연구소에서 일용직, 아니 박사후연구원으로 사람에게 병을 일으키는 곰팡이를 연구했다. 선택의 갈림길에서 단순한, 하지만 남들이 잘 가지 않는 길을 걷다 보니 운 좋게 캘리포니아 주립대학(California State University, Los Angeles)의 외국인 교수가 되어 십오 년째 '미생물 너드(nerd)'로 열강을 하고 있다.
낯선 곳에서 낯선 사람과 이십여 년을 살아서일까, 아니면 누군가와 늘 함께 하는 곰팡이 연구를 오래 한 까닭일까, 나의 강의는 어떤 주제로 시작하든 '모든 생명은 서로 소통하고 공존한다'는 이야기로 수렴한다. 강의실에서, 혹은 논문과 교재로 이야기하던 아직은 낯선 곰팡이의 사생활과 그들이 어울려 사는 세상, '마이코스피어(mycosphere)'를 더 많은 사람들과 함께 하고 싶어 이 책을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