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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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blication Date 2013/05/10
Pages/Weight/Size 130*210*20mm
ISBN 9788998047399
Categories 소설/시/희곡 > 시/희곡
Description
오래도록 우리의 가슴에 남는 명시를 만나다!
오랜 역사와 더불어 꽃피워온 얼ㆍ말ㆍ글의 아름다움을 만나볼 수 있도록 구성된 「한국대표 명시선 100」 이상화 시인의 시집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1926년 《개벽》을 통해 발표한 항일 저항시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를 비롯하여 ‘말세의 희탄’, ‘가을의 풍경’, ‘선구자의 노래’, ‘동경에서’, ‘농촌의 집’ 등의 시편들이 수록되어 있다. 저자의 시세계를 엿볼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전해준다.
Contents
시인의 말

1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나의 침실로 -가장 아름답고 오랜 것은 오직 꿈속에만 있어라
말세의 희탄
단조單調
가을의 풍경
가장 비통한 기욕祈慾 -간도 이민을 보고
이중二重의 사망 -가서 못 오는 박태원의 애틋한 영혼에게 바침
빈촌의 밤
역천逆天
달밤 -도회都會
조소

2
초혼招魂
통곡
시인에게
선구자의 노래
바다의 노래 -나의 넋, 물결과 어우러져 동해의 마음을 가져온 노래
비 갠 아침
파-란 비
저무는 놀 안에서 -노인勞人의 수고를 읊조림
비를 다고 -농민의 정서를 읊조림
동경에서
어머니의 웃음

3
겨울 마음
지반池畔 정경 -파계사把溪寺 용소龍消에서
방문 거절
비음緋音 -'비음'의 서사
이별을 하는니
구루마꾼
엿장수
거러지
대구大邱 행진곡
무제無題
청년

4
반딧불 -단념은 미덕이다(루낭)
농촌의 집
예지
병적 계절
곡자사哭子詞
달아
오늘의 노래
지구 흑점의 노래
마음의 꽃 -청춘에 상뇌傷惱 되신 동무를 위하여
허무교도의 찬송가
그날이 그립다

5
독백
폭풍우를 기다리는 마음
조선병
본능의 노래
금강송가 -중향성 향나무를 더우잡고
극단
원시적 읍울 -어촌 애경
이해를 보내는 노래
기미년
만주벌
나는 해를 먹네
눈이 오시네

이상화 연보
Author
이상화
현실을 외면하지 않으면서도 역사를 바로 꿰뚫어보는 가운데 치열한 시대 정신과 따뜻한 휴머니즘 정신을 아름다운 예술 혼으로 승화시킨 민족 시인이자 저항 시인.

1901년 4월 5일(음력) 대구시 중구 서문로 2가 11번지에서 출생하였다. 1915년 한문 수학 후 상경하여 중앙학교에 입학, 1918년 3월 25일에 수료하고, 그 해 7월 서문로 집을 나서 강원도 일대를 방랑하다 1919년 대구에서 3·1운동 거사 모임에 참석했으나 사전에 발각되어 서울 냉동 박태원의 하숙으로 피신하였다. 1922년 현진건의 소개로 월탄 박종화와 만나 [백조(白潮)] 동인으로 문단에 참여하기 시작, 창간호에 시「말세의 희탄」, 「단조」, 「가을의 풍경」 등을 발표하였다. 이후 도일하여 아테네 프랑세에 입학, 1923년 3월 아테네 프랑세를 수료하였으나, 9월에 일어난 관동대지진에서 본 일본인의 조선인 학살에 분노하여 귀국했다. 가회동 이른바 취운정(翠雲亭)에 머물면서 시 「나의 침실로」를 [백조] 3호에 발표, 1925년엔 〈카프(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가동맹)〉 발기인으로 참여했다.

다음해인 1926년, [개벽] 70호에 그의 대표작인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를 발표했지만 이 시의 게재로 [개벽]지는 판매 금치 처분을 당했다. 작품활동 초기에는 탐미적 경향의 시를 썼으나 이 시기를 고비로 식민치하의 민족 현실을 바탕으로 한 저항 정신과 향토적 세계를 노래하였다. 이후 심한 고초를 겪으면서도 창작의 끈을 놓지 않다가, 1943년 4월 25일 오전 8시 45분, 계산동 2가 84번지 고택에서 부인과 세 아이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숙환으로 운명하였다. 그리고 그가 세상을 떠난지 5년째 되는 1948년에, 해방 후 최초의 시비가 달성공원에 건립되었다.
현실을 외면하지 않으면서도 역사를 바로 꿰뚫어보는 가운데 치열한 시대 정신과 따뜻한 휴머니즘 정신을 아름다운 예술 혼으로 승화시킨 민족 시인이자 저항 시인.

1901년 4월 5일(음력) 대구시 중구 서문로 2가 11번지에서 출생하였다. 1915년 한문 수학 후 상경하여 중앙학교에 입학, 1918년 3월 25일에 수료하고, 그 해 7월 서문로 집을 나서 강원도 일대를 방랑하다 1919년 대구에서 3·1운동 거사 모임에 참석했으나 사전에 발각되어 서울 냉동 박태원의 하숙으로 피신하였다. 1922년 현진건의 소개로 월탄 박종화와 만나 [백조(白潮)] 동인으로 문단에 참여하기 시작, 창간호에 시「말세의 희탄」, 「단조」, 「가을의 풍경」 등을 발표하였다. 이후 도일하여 아테네 프랑세에 입학, 1923년 3월 아테네 프랑세를 수료하였으나, 9월에 일어난 관동대지진에서 본 일본인의 조선인 학살에 분노하여 귀국했다. 가회동 이른바 취운정(翠雲亭)에 머물면서 시 「나의 침실로」를 [백조] 3호에 발표, 1925년엔 〈카프(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가동맹)〉 발기인으로 참여했다.

다음해인 1926년, [개벽] 70호에 그의 대표작인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를 발표했지만 이 시의 게재로 [개벽]지는 판매 금치 처분을 당했다. 작품활동 초기에는 탐미적 경향의 시를 썼으나 이 시기를 고비로 식민치하의 민족 현실을 바탕으로 한 저항 정신과 향토적 세계를 노래하였다. 이후 심한 고초를 겪으면서도 창작의 끈을 놓지 않다가, 1943년 4월 25일 오전 8시 45분, 계산동 2가 84번지 고택에서 부인과 세 아이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숙환으로 운명하였다. 그리고 그가 세상을 떠난지 5년째 되는 1948년에, 해방 후 최초의 시비가 달성공원에 건립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