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혹의 문장들

마음이 어지러울 때 읽는, 2500년 동양 사상의 정수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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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blication Date 2013/04/25
Pages/Weight/Size 188*254*30mm
ISBN 9788997779253
Categories 자기계발
Description
마흔, 남성적 아포리즘의 절창을 토해내기 시작하다
일본 리더들이 선택한 최고의 『처세의 명저』, 『불멸의 리더학』


일본 유학의 태두이자 거물로 꼽히는 사토 잇사이(佐藤一齊)의 『불혹의 문장들』은 저자가 불혹 무렵부터 82세 때까지 무려 40년 동안 기록한 말[言]과 뜻[志]들이다. 일본에서 200년 동안 누구나 책상머리에 꽂아두고 좌우명으로 사는 초장기 스테디셀러인 이 책(원제:『언지록』)은 마흔 이후 인생을 완성하려는 이를 위한 최강의 자기경영 수신서가 되었다. 특히 『불혹의 문장들』은 이렇게 피와 땀으로 쓴 잠언들 1133조 중에서 233조만을 뽑아 주제별로 엮어냈다.

『불혹의 문장들』의 요점을 간단히 정리하면 네 가지로 간추릴 수가 있다. 첫째 인간의 가치는 ‘남을 위해 어느 정도 사는가!’에 달려 있다. 둘째 지위와 명예 그리고 외관상의 성공에 휘둘려서는 안 된다. 셋째 남을 따스하게 대해주는 정(情)과 배려하는 서(恕) 그리고 ‘가진 자의 사회적 의무’가 우주만물을 하나로 만드는 ‘사회 통합의 주춧돌’이다. 넷째 그 무슨 일이든지 사람을 상대로 하지 말고, 하늘을 상대로 하라. 인간은 환경에 의해 변화를 하기도 하지만 그 환경을 좋은 쪽으로 바꾸기도 한다. 그것은 뜻(志)을 지닌 인간이기에 가능하다. 뜻이 있는 사람은 스스로의 운명을 개척하고, 훌륭한 스승과 친구를 찾아 은혜를 입고, 그리고 공부하며 한 번밖에 없는 인생을 의식적으로 창조할 줄 안다. 인생을 좋게 하는 것도 나쁘게 하는 것도 모두 이 ‘뜻’ 나름이라는 것을 『불혹의 문장들』은 충분히 가르쳐주고 있다.
Contents
서문: 불혹부터 40년 동안 한 땀 한 땀 새긴 잠언

1장 뜻은 스승에게도 양보하지 말라: 뜻과 말에 관하여
2장 인생의 곱셈과 나눗셈: 순경과 역경에 관하여
3장 참된 나는 영원불멸하다: 마음의 본성에 관하여
4장 구사삼성: 마음 닦음에 관하여
5장 배움은 평생 지고 가야 할 짐이다: 학문에 관하여
6장 원수는 물에 새기고, 은혜는 돌에 새겨라: 치기와 치인
7장 쓸모없음의 쓸모: 봄바람과 가을서리의 처세술
8장 마흔이 지나서야 세월의 아까움을 안다: 삶과 죽음, 늙음에 관하여

해제: 2500년 동양의 지혜를 아포리즘화한 좌우명의 절창
Author
사토 잇사이,노만수
일본 유학의 대성자로 일컬어지는 ‘백세(百世)의 홍유(鴻儒)’ 사토 잇사이는 에도 시대 최고 학문 기관인 쇼헤이코의 최고 책임자였다. 그는 어린 시절, 밤에 유흥가로 나가 취객을 때리고 도망치거나 한 제법 난폭한 사무라이였다고 한다. 하지만 어른이 될 무렵 분연히 뜻을 세우고 수양에 전념하여 이른 장년기에 학문이 원만한 군자로 불리게 되었다. 나이 70세였던 1841년 11월 쇼헤이코의 주칸이 되었고, 그의 학덕은 날로 높아져 세상의 태산북두로 불리며 경앙하지 않은 이가 없었다. 이 무렵 쇼군 도쿠가와 이에요시(德川家慶)에게 「역경」을 강의하였다. 또한 그에게 강설을 청하는 다이묘들이 수십 명에 달했다. 막부의 요청으로 시무책을 올리기도 하였고, 1854년 미일화친조약이 체결될 때에는 하야시 후쿠사이를 보좌해 외교문서를 작성하기도 하였다. 저서로는 그가 살아 있을 적에 출판되어 대중들이 접할 수 있었던 「언지록」과 문집 「애일루문시」를 비롯해 90여 권이 있다. 1859년 여름 무렵 병에 걸려 9월 23일 밤에 쇼헤이코 관사에서 향년 88세의 나이로 숨을 거두었다.
일본 유학의 대성자로 일컬어지는 ‘백세(百世)의 홍유(鴻儒)’ 사토 잇사이는 에도 시대 최고 학문 기관인 쇼헤이코의 최고 책임자였다. 그는 어린 시절, 밤에 유흥가로 나가 취객을 때리고 도망치거나 한 제법 난폭한 사무라이였다고 한다. 하지만 어른이 될 무렵 분연히 뜻을 세우고 수양에 전념하여 이른 장년기에 학문이 원만한 군자로 불리게 되었다. 나이 70세였던 1841년 11월 쇼헤이코의 주칸이 되었고, 그의 학덕은 날로 높아져 세상의 태산북두로 불리며 경앙하지 않은 이가 없었다. 이 무렵 쇼군 도쿠가와 이에요시(德川家慶)에게 「역경」을 강의하였다. 또한 그에게 강설을 청하는 다이묘들이 수십 명에 달했다. 막부의 요청으로 시무책을 올리기도 하였고, 1854년 미일화친조약이 체결될 때에는 하야시 후쿠사이를 보좌해 외교문서를 작성하기도 하였다. 저서로는 그가 살아 있을 적에 출판되어 대중들이 접할 수 있었던 「언지록」과 문집 「애일루문시」를 비롯해 90여 권이 있다. 1859년 여름 무렵 병에 걸려 9월 23일 밤에 쇼헤이코 관사에서 향년 88세의 나이로 숨을 거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