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불(念佛)처럼 서러워서

김성동 역사 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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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blication Date 2014/09/22
Pages/Weight/Size 148*210*22mm
ISBN 9788997581597
Categories 역사
Description
이른바 역사라는 것은 ‘승자의 기록’이라고 한다. 승자들이 꾸려 가는 역사가 바로 오늘 이 현실인 것이라면, 역사의 패자들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 패자의 남겨진 자식들은 말이다. 잘못된 역 사를 탄식만 하고 있을 것인가? 마침내는 그리하여 ‘비단할아버지에 거적자손’이 되고 말 것인가? 아니다. 그렇지 않다. 우리는 적어도 역사에서 밀려난 우리 할아버지들이 이루고자 하였던 세상이 어떤 세상이었던지는 알아야 한다. 그 아름다운 세상을 이루고자 어떻게 움직이다가 어떻게 그리고 왜 쓰러지게 되었는가 하는 역사의 진실만큼은 알아야 하지 않겠는가. 그것이 자손된 도리가 아니겠는가. --- 머리말 중에서
Contents
머리말 │ 역사를 생각하며

할아버지, 할아버지, 저희들은 어떻게 살아가야 되나요?
화교가 되어 버린 대륙백제 사람들
마하 궁예보살 마하살
마하 요청보살 마하살
마하 신돈보살 마하살
대금제국 황제 이징옥 장군
문허진 성터에서
망나니, 철갈구리, 금송아지, 그리고 농투산이
개남아, 개남아, 김개남아! - 짚신과 워커
용문산 총댕이 김백선 장군
미륵당취 일해보살 마하살
밥통이 오그라붙어 열반한 최서해
남로당을 위한 변명
범 무서운 줄 모르는 하릅강아지
Author
김성동
1947년 충남 보령에서 태어났다. 내림줄기 있는 유가에서 어렸을 때부터 유학자인 할아버지한테 한학 가르침을 받으며 자랐다. 해방 바로 뒤 뒤죽박죽과 한국전쟁 소용돌이 속에 ‘아버지’와 ‘집’을 빼앗긴 채 유소년기를 줄곧 난리와 이데올로기가 남긴 깊은 흉터 속에서 헤매다가, 1965년 고등학교 3학년 때 스스로 그만두고 입산하여 지효(智曉) 대선사 상좌(上佐)가 되었다. 1975년 <주간종교> 종교소설 현상 공모에 단편 <목탁조(木鐸鳥)>가 당선되었으나, ‘불교계를 악의적으로 비방하고 전체 승려들을 모독했다는 이유’로 만들지도 않았던 조계종 승적을 빼앗겼다. 1976년 늦가을에 하산하여 1978년 <한국문학신인상>에 중편 《만다라》가 당선되었고, 이듬해 고쳐 펴내어 문단과 독서계에 커다란 메아리를 불러일으켰다. 이후 빈틈없고 느긋한 독장치는 ‘조선 문체’로 한국 근현대사 생채기와 구도(求道) 나그넷길에서 있어야 할 까닭을 더듬어 찾는 문제작들을 널리 알려왔다. 1988년 <시와 함께>에 <중생> 밖 열 닢을 널리 알리며 시작(詩作) 활동도 하고 있다.

1983년 해방전후사를 밑그림으로 하는 장편소설 《풍적(風笛)》을 <문예중앙>에, 1960~1970년대 학생운동사를 다룬 장편소설 《그들의 벌판》을 <중앙일보>에 이어싣다가 좌익 움직임을 다룬 속뜻과 반미적 속뜻이 문제되어 2회와 53회 만에 중동무이되었다. 중편 《황야에서》로 ‘소설문학작품상’을 받게 되었으나 문학 작품을 상업적으로 써먹으려는 주관사측 속셈에 맞서 수상을 뿌리쳤다. 창작집으로 《피안의 새》 《오막살이 집 한 채》 《붉은 단추》 《민들레 꽃반지》 《눈물의 골짜기》, 장편소설 《만다라》 《길》 《집》 《국수(國手)》 《꿈》, 우의(愚意) 소설 《염소》, 산문집 《염불처럼 서러워서》 《꽃다발도 무덤도 없는 혁명가들》 《생명기행》 등이 있다. 단편 〈민들레 꽃반지〉로 ‘리태준 문학상’과 ‘요산 김정한 문학상’을 받았다.

한국 근현대사의 이데올로기적 상처와 불교적 구도를 자신의 문학적 원척으로 삼았던 김성동 작가는 2022년 향년 75세로 별세하였다.
1947년 충남 보령에서 태어났다. 내림줄기 있는 유가에서 어렸을 때부터 유학자인 할아버지한테 한학 가르침을 받으며 자랐다. 해방 바로 뒤 뒤죽박죽과 한국전쟁 소용돌이 속에 ‘아버지’와 ‘집’을 빼앗긴 채 유소년기를 줄곧 난리와 이데올로기가 남긴 깊은 흉터 속에서 헤매다가, 1965년 고등학교 3학년 때 스스로 그만두고 입산하여 지효(智曉) 대선사 상좌(上佐)가 되었다. 1975년 <주간종교> 종교소설 현상 공모에 단편 <목탁조(木鐸鳥)>가 당선되었으나, ‘불교계를 악의적으로 비방하고 전체 승려들을 모독했다는 이유’로 만들지도 않았던 조계종 승적을 빼앗겼다. 1976년 늦가을에 하산하여 1978년 <한국문학신인상>에 중편 《만다라》가 당선되었고, 이듬해 고쳐 펴내어 문단과 독서계에 커다란 메아리를 불러일으켰다. 이후 빈틈없고 느긋한 독장치는 ‘조선 문체’로 한국 근현대사 생채기와 구도(求道) 나그넷길에서 있어야 할 까닭을 더듬어 찾는 문제작들을 널리 알려왔다. 1988년 <시와 함께>에 <중생> 밖 열 닢을 널리 알리며 시작(詩作) 활동도 하고 있다.

1983년 해방전후사를 밑그림으로 하는 장편소설 《풍적(風笛)》을 <문예중앙>에, 1960~1970년대 학생운동사를 다룬 장편소설 《그들의 벌판》을 <중앙일보>에 이어싣다가 좌익 움직임을 다룬 속뜻과 반미적 속뜻이 문제되어 2회와 53회 만에 중동무이되었다. 중편 《황야에서》로 ‘소설문학작품상’을 받게 되었으나 문학 작품을 상업적으로 써먹으려는 주관사측 속셈에 맞서 수상을 뿌리쳤다. 창작집으로 《피안의 새》 《오막살이 집 한 채》 《붉은 단추》 《민들레 꽃반지》 《눈물의 골짜기》, 장편소설 《만다라》 《길》 《집》 《국수(國手)》 《꿈》, 우의(愚意) 소설 《염소》, 산문집 《염불처럼 서러워서》 《꽃다발도 무덤도 없는 혁명가들》 《생명기행》 등이 있다. 단편 〈민들레 꽃반지〉로 ‘리태준 문학상’과 ‘요산 김정한 문학상’을 받았다.

한국 근현대사의 이데올로기적 상처와 불교적 구도를 자신의 문학적 원척으로 삼았던 김성동 작가는 2022년 향년 75세로 별세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