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영광에 가면 조운 시인(1900-1948월북)의 생가가 있다. 그의 생가 입구에 가면 그의 대표시가 조그만 비석에 새겨진 채 주인 떠난 빈집을 잘린 석류나무가 이름 모를 잡초들과 함께 지키고 있다. 새들도 떠난 빈집을 지키고 있는 시인이 있다. 그가 바로 장진기 시인이다.
시조시인으로 우리 민족의 서정과 정감이 잘 배어 있는 작품들을 발표하여 현대시조의 교과서라고 평가받았던 시인. 그러나 1948년 월북 이후 잊혀졌다가 1988년 월북문인 해금조치 이후에 재조명되었으나 고향에서 그는 여전히 달갑지 않은 존재이다. 백석이나 정지용 등이 해금 이후 재조명되었을 뿐만 아니라 교과서 등을 통해 독자들에게 널리 알려져 있고 그의 고향에서 하나의 관광상품(?)으로 대접받고 있는 현실과는 자못 대조적인 현상이다. 거기다가 얼마 전에는 조운 시인의 생가를 이백 년째 지키고 있는 석류나무가 잘리어 나간 사건도 있었다. 그 잘려 나간 석류나무를 부여잡고 잡초만 무성한 생가를 수 년째 지키고 있는 장진기 시인. 그가 환갑을 바라보는 나이에 첫 시집을 내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