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형복 시인은 로스쿨에서 법을 가르치는 법학자이다. 경직된 법학을 전공한 사람이 긴장의 이완을 위한 여기(餘技)나 문화적 취향쯤으로 시를 쓰는 게 아닐까 하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으나, 그에게 시는 그런 수준에 머물지 않는다. 정치철학자 ‘마사 누스바움’이 『시적 정의』(Poetic Justice)라는 책에서 “시인과 판사가 하나 되는 세상이라야 공적 영역에서 정의가 세워진다”고 한 역설을 마음속 깊이 새기고 사는 채형복 시인의 여섯 번째 시집 『바람이 시의 목을 베고』는 우리에게 서늘한 기운을 느끼게 한다.
그러나 채형복의 시에 물기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그의 시에도 자연이 있고 계절의 오고 감이 있으며 가족과 추억이 있다. 또한 현재 자신을 둘러싼 일상이 있다. 때로는 간결하면서도 조촐하게 시에 수분을 주입하기도 한다. 그리고 삶의 서성거림 속에서 세상의 아픔과 깊음을 읽는 그의 맑은 눈이 보인다. 그가 체험한 생의 본질과 살아가는 삶의 방식이 “가을”의 “묵직한 중력”을 통해 사유된다.
채형복 교수는 권위주의에 맞서 싸우는 따뜻한 감성의 법학자이며 시인이다. 이 시집에는 다양한 스펙트럼을 통해 시대의 정신을 이끌어가는 영향력 있는 한 법학자의 노력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