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파주에서 태어나 1978년 서울대 역사교육과에 들어갔다. 대학 시절『전태일 평전』등을 읽으며 학생운동에 뛰어들었다. 노동자 야학 등을 통해 당시 전혀 존중받지 못하던 노동자들의 모습을 발견하고, 대학을 그만두고 노동 현장으로 들어갔다. 1985년 하루에 열 시간 넘게 일해야 했던 어린 여성 노동자들과 함께 한국전쟁 이후 최초의 노동자동맹파업인 ‘구로동맹파업’을 주도한다. 이 일로 지명수배를 당하게 된다.
장기 수배 기간 중에도 경찰의 눈을 피해 서울노동운동연합(서노련), 전국노동조합협의회(전노협)을 만들며 노동운동을 이어나갔다. 1990년 연행되어 3년 뒤 만삭의 몸으로 출석한 법정에서 징역 1년, 집행유예 2년을 선고 받았다. 이후 그는 전노협 쟁의국장, 금속노조 사무처장으로 활동하며, 당시 노동자들의 연대 투쟁을 위해 앞장섰다. 단호하고 거침없는 모습에 ‘철의 여인’이라 불리기도 했다.
2004년 민주노동당 비례대표로 17대 국회의원이 되면서 정치를 시작했다. 우리 사회의 일하는 사람, 가난한 사람, 약한 사람들 편이 되는 데 주저하지 않았던 그는 놀라운 의정 활동과 열정적인 모습으로 국민들의 지지를 받았다.
2007년 민주노동당 대선후보 경선 출마 후 탈락, 2008년 민주노동당 탈당, 진보신당 창당, 18대 총선 낙선 등의 좌절을 겪는다. 하지만 전국에서 ‘지못미(지켜주지 못해 미안해)’ 후원이 쏟아지는 등 정의와 상식을 위해 앞장섰던 그에게 많은 이들이 응원을 보내주었다.
이후 2012년, 2016년 총선에서는 연이어 경기 고양갑 지역구 국회의원 당선에 성공하며 진보 정당 최초의 3선 의원이 되었다. 무상 급식, 반값등록금, 카드수수료 인하, 대형마트 규제 등 약자를 위한 법안을 발의해나가며 많은 박수를 받았다.
통합진보당을 거쳐 정의당을 창당하고 당대표를 역임했다. 2016년 민주주의를 뒤흔들었던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사태에서는 가장 먼저 대통령 하야를 주장하며 시민들과 함께 처음부터 끝까지 광장을 지켰다.
2017년 5월 대통령 탄핵이라는 헌정사상 초유의 사태로 조기에 치러진 19대 대선에 유일한 진보 정당(정의당) 후보로 출마했다. 주변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바람을 일으키며 끝까지 선거를 치렀다. 득표는 주요 다섯 후보 중 꼴찌였지만 출구조사 결과가 나오자마자 국민들의 엄청난 후원금이 쏟아지고, 여러 중?고등학교에서 모의 대선 당선증을 보내주는 등 박수와 격려가 끊이질 않았다. 대한민국 정치에서 낙선자에게 이와 같은 응원을 보낸 일은 이제까지 없었다.
이십 대 대학생으로 공단에 들어가 노동운동, 진보 정치를 거쳐 오늘에 오기까지 그는 ‘우리 사회의 일하는 모든 이들이 당당해지는 나라’를 꿈꾸었다. 앞으로도 그 꿈을 위해 우리 사회 가장 아래에 있는 다수의 ‘편’에, 새로운 세대의 ‘편’에 서려고 한다.
경기도 파주에서 태어나 1978년 서울대 역사교육과에 들어갔다. 대학 시절『전태일 평전』등을 읽으며 학생운동에 뛰어들었다. 노동자 야학 등을 통해 당시 전혀 존중받지 못하던 노동자들의 모습을 발견하고, 대학을 그만두고 노동 현장으로 들어갔다. 1985년 하루에 열 시간 넘게 일해야 했던 어린 여성 노동자들과 함께 한국전쟁 이후 최초의 노동자동맹파업인 ‘구로동맹파업’을 주도한다. 이 일로 지명수배를 당하게 된다.
장기 수배 기간 중에도 경찰의 눈을 피해 서울노동운동연합(서노련), 전국노동조합협의회(전노협)을 만들며 노동운동을 이어나갔다. 1990년 연행되어 3년 뒤 만삭의 몸으로 출석한 법정에서 징역 1년, 집행유예 2년을 선고 받았다. 이후 그는 전노협 쟁의국장, 금속노조 사무처장으로 활동하며, 당시 노동자들의 연대 투쟁을 위해 앞장섰다. 단호하고 거침없는 모습에 ‘철의 여인’이라 불리기도 했다.
2004년 민주노동당 비례대표로 17대 국회의원이 되면서 정치를 시작했다. 우리 사회의 일하는 사람, 가난한 사람, 약한 사람들 편이 되는 데 주저하지 않았던 그는 놀라운 의정 활동과 열정적인 모습으로 국민들의 지지를 받았다.
2007년 민주노동당 대선후보 경선 출마 후 탈락, 2008년 민주노동당 탈당, 진보신당 창당, 18대 총선 낙선 등의 좌절을 겪는다. 하지만 전국에서 ‘지못미(지켜주지 못해 미안해)’ 후원이 쏟아지는 등 정의와 상식을 위해 앞장섰던 그에게 많은 이들이 응원을 보내주었다.
이후 2012년, 2016년 총선에서는 연이어 경기 고양갑 지역구 국회의원 당선에 성공하며 진보 정당 최초의 3선 의원이 되었다. 무상 급식, 반값등록금, 카드수수료 인하, 대형마트 규제 등 약자를 위한 법안을 발의해나가며 많은 박수를 받았다.
통합진보당을 거쳐 정의당을 창당하고 당대표를 역임했다. 2016년 민주주의를 뒤흔들었던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사태에서는 가장 먼저 대통령 하야를 주장하며 시민들과 함께 처음부터 끝까지 광장을 지켰다.
2017년 5월 대통령 탄핵이라는 헌정사상 초유의 사태로 조기에 치러진 19대 대선에 유일한 진보 정당(정의당) 후보로 출마했다. 주변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바람을 일으키며 끝까지 선거를 치렀다. 득표는 주요 다섯 후보 중 꼴찌였지만 출구조사 결과가 나오자마자 국민들의 엄청난 후원금이 쏟아지고, 여러 중?고등학교에서 모의 대선 당선증을 보내주는 등 박수와 격려가 끊이질 않았다. 대한민국 정치에서 낙선자에게 이와 같은 응원을 보낸 일은 이제까지 없었다.
이십 대 대학생으로 공단에 들어가 노동운동, 진보 정치를 거쳐 오늘에 오기까지 그는 ‘우리 사회의 일하는 모든 이들이 당당해지는 나라’를 꿈꾸었다. 앞으로도 그 꿈을 위해 우리 사회 가장 아래에 있는 다수의 ‘편’에, 새로운 세대의 ‘편’에 서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