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리아 전쟁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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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blication Date 2005/07/12
Pages/Weight/Size 153*224*30mm
ISBN 9788995671306
Categories 역사
Description
카이사르는 로마 공화정을 무너뜨리고, 제정의 초석을 마련한 인물로 그의 정치적인 행보에 대해서는 다소 상반된 평가가 존재한다. 하지만 그가 군인으로서 그리고 문장가로서 이루어낸 업적에 대해 역사가들은 한결같이 극찬을 아끼지 않는다.

『갈리아 전쟁기』는 카이사르가 기원전 58년부터 8년 동안 지금의 서유럽에 해당하는 갈리아 지역에서 전쟁을 치르면서 기록한 역사서이다. 책 속에는 카이사르 자신이 펼친 군사적 전술과 전투 상황을 생생히 전해줄 뿐만 아니라 적군인 갈리아인, 게르마인, 브리타니아인들의 풍습과 민족성, 지리적 환경, 생활과 문화 등에 대해 자세히 기록하고 있다. 자연스레 『갈리아 전쟁기』는 기원전 1세기 서유럽 역사에 대한 문화사적 사료로서 중대한 가치를 가지기도 한다.

카이사르는 이 책을 쓰면서 자신을 3인칭으로 표현하면서 객관적 서술을 유지하고 있다. 화려하지 않지만 간결하고 힘이 있는 그의 문체는 어떤 경우에도 흔들리지 않는 냉철한 관찰력과 생사의 고비에서도 잃지 않는 그의 성격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이 책은 고대 로마의 역사와 『로마인 이야기』의 저자 시오노 나나미가 극찬하는 인간 카이사르에 대해 좀더 알고 싶어 하는 독자들에게 훌륭한 선물이 될 것이다.
Contents
서문

문사 카이사르
전쟁터에서... 글을 쓰다

무사 카이사르
군인의 윤리를 알다, 리더의 윤리를 알다

카이사르, 그의 삶과 죽음

제1권 기원전 58년
카이사르 42세, 갈리아 전쟁 1년째
침입자 헬베티족과의 전쟁
아리오비스투스와의 전쟁

제2권 기원전 57년
카이사르 43세, 갈리아 전쟁 2년째
벨가이 정복

제3권 기원전 56년
카이사르 44세, 갈리아 전쟁 3년째
알프스 산악 부족과의 전투
바다에서의 불리한 전투
부하 장교들의 승전보
모리니족 답사

제4권 기원전 55년
카이사르 45세, 갈리아 전쟁 4년째
게르만인과의 살육전
최초의 라인강 도하
브리타니아 상륙 작전

제5권 기원전 54년
카이사르 46세, 갈리아 전쟁 5년째
제2차 브리타니아 원정
로마군 최대의 참사
네르비족의 총공격
갈리아인들의 음모

제6권 기원전 53년
카이사르 47세, 갈리아 전쟁 6년째
트레베리족의 반란
제2차 라인 강 도하
갈리아의 풍습과 제도
게르마니아의 풍습과 제도
암비오릭스 추격

제7권 기원전 52년
카이사르 48세, 갈리아 전쟁 7년째
갈리아 대반란의 조짐
아바리쿰 점령
게르고비아에서의 패배
갈리아 총반란, 하이두이족 변절
알레시아 공방전

제8권 기원전 51년
카이사르 49세, 갈리아 전쟁 8년째
아울루스 히르티우스 서문
갈리아 평정을 위한 전투
갈리아 최후의 전투
임박한 내전

옮긴이의 글
카이사르 연표
Author
카이사르,김한영
고대 로마 공화정 말기의 군인·정치가. BC 100년 7월 13일에 태어났다. 7월을 가리키는 영어의 July는 카이사르의 이름에서 유래되었다. 민중파인 마리우스와 인척 관계로 원로원파인 술라가 권력을 잡고 있을 때는 민중파인 아내와의 이혼 명령을 거부하고 여러 곳을 떠돌며 숨어 지냈다. BC 78년 술라가 죽은 뒤 로마로 귀환, 정치생활을 시작하였으며 BC 69년에는 재무관, BC 65년 안찰관(按察官)을 거쳐 BC 63년 종교상 최고직인 종신 대신관이 되었다. BC 60년에는 폼페이우스 및 크라수스와 동맹을 맺고 제1차 삼두정치를 시작하였다. BC 58년∼BC 50년, 속주 갈리아의 장관으로서 갈리아 전쟁을 수행, 브리튼과 게르만 족의 영지까지 아우르는 광대한 영토를 대부분 평정하였다.

BC 53년 삼두체제의 한 중심인 크라수스가 동방원정에서 전사함으로써 원로원 보수파와 갈등을 빚기 시작했으며 BC 51년 원로원이 카이사르의 로마 소환과 군대해산을 결의하자, BC 49년 1월에 “주사위는 던져졌다.”는 유명한 말과 함께 갈리아와 이탈리아 국경인 루비콘 강을 건너 로마로 진격함으로써 내전을 시작하였다. BC 45년 3월에는 폼페이우스의 아들까지 진압함으로써 마침내 5년간의 내전을 종결시켰다. BC 46년에 10년 임기의 독재관이 되었고, 곧이어 BC 44년에는 종신 독재관이 되었다. 율리우스력을 제정하고 노예에게 관직을 허용함으로써 로마 시민권을 대폭 확대하는 한편 대규모 토목사업을 벌여 로마를 정비하는 등 개혁정책을 펼쳤다. 그러나 지나친 권력의 집중을 견제하고자 했던 원로원 공화파와 공화정 지지자들에 의해 BC 44년 원로원에서 암살되었다. 그의 나이 56세 때였다.
고대 로마 공화정 말기의 군인·정치가. BC 100년 7월 13일에 태어났다. 7월을 가리키는 영어의 July는 카이사르의 이름에서 유래되었다. 민중파인 마리우스와 인척 관계로 원로원파인 술라가 권력을 잡고 있을 때는 민중파인 아내와의 이혼 명령을 거부하고 여러 곳을 떠돌며 숨어 지냈다. BC 78년 술라가 죽은 뒤 로마로 귀환, 정치생활을 시작하였으며 BC 69년에는 재무관, BC 65년 안찰관(按察官)을 거쳐 BC 63년 종교상 최고직인 종신 대신관이 되었다. BC 60년에는 폼페이우스 및 크라수스와 동맹을 맺고 제1차 삼두정치를 시작하였다. BC 58년∼BC 50년, 속주 갈리아의 장관으로서 갈리아 전쟁을 수행, 브리튼과 게르만 족의 영지까지 아우르는 광대한 영토를 대부분 평정하였다.

BC 53년 삼두체제의 한 중심인 크라수스가 동방원정에서 전사함으로써 원로원 보수파와 갈등을 빚기 시작했으며 BC 51년 원로원이 카이사르의 로마 소환과 군대해산을 결의하자, BC 49년 1월에 “주사위는 던져졌다.”는 유명한 말과 함께 갈리아와 이탈리아 국경인 루비콘 강을 건너 로마로 진격함으로써 내전을 시작하였다. BC 45년 3월에는 폼페이우스의 아들까지 진압함으로써 마침내 5년간의 내전을 종결시켰다. BC 46년에 10년 임기의 독재관이 되었고, 곧이어 BC 44년에는 종신 독재관이 되었다. 율리우스력을 제정하고 노예에게 관직을 허용함으로써 로마 시민권을 대폭 확대하는 한편 대규모 토목사업을 벌여 로마를 정비하는 등 개혁정책을 펼쳤다. 그러나 지나친 권력의 집중을 견제하고자 했던 원로원 공화파와 공화정 지지자들에 의해 BC 44년 원로원에서 암살되었다. 그의 나이 56세 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