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하는 세상에 맞선 유학자

사교재 김영익(1886-1962)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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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blication Date 2019/11/22
Pages/Weight/Size 153*224*35mm
ISBN 9788994606569
Categories 인문 > 인문/교양
Description
전환기의 유학자,
세변(世變, 세상의 변고)에 맞서다

이 책은 한국사회 대전환기를 살았던 유학자이자 교육자, 사교재 김영익이 남긴 자료를 하영휘 교수(성균관대 동아시아학술원)가 편역한 사교재 김영익 문집이다. 사교재 김영익(1886~1962)이 살았던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중반에 이르는 기간은 한국이 전근대에서 근대로 이행되는 대전환기였다. 열강의 침입, 동학농민전쟁, 갑오경장, 일제의 강점, 분단, 6·25전쟁, 4·19혁명 등 변혁의 소용돌이가 연이어 일었다. 이에 따라 기독교와 신학문 유행, 신분 해체, 자유와 평등, 민주주의 제도 등 각종 새로운 사회적 변화가 나타났는데, 대부분 유교적 질서와 유학사상을 거스르는 것이었다. 사교재 김영익은 그것을 통틀어 ‘세변(世變, 세상의 변고)’이라고 하고, 거기에 맞서 유교적 가치를 지키기 위하여 평생 노력했다.

전환점에 선 유학자 사교재가 기존의 질서를 지키며 변화를 거부한 것은 숙명적인 일이었다. 사교재 김영익 문집,『변하는 세상에 맞선 유학자』에는 그가 새로 나타나는 각종 근대적 현상을 어떻게 보고 기록했는지, 그리고 거기에 대항할 수 있는 논리를 유교정전과 선유(先儒)의 사상에서 찾아내 정립하고, 그것을 학생들을 비롯한 주위 사람들에게 가르치고 전파했던 일생의 사업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하영휘는 7년간 자료의 선별과 편집, 그리고 번역의 힘든 작업에도 이 문집이 “한국 전근대와 근대 전환기의 사회사이자 유학사상사다. 이 책은 이 두 내용을 겸비하고 있다. 요컨대, 유학자가 근대를 어떻게 보았고, 그 대응 논리로 어떤 사고를 했는가? 이것이 이 책의 주제다.”며 의미를 둔다. 전환기의 유학자가 한국의 근대에 맞선 기록인 것이다.
Contents
머리말

가사 歌辭

송곡농사 해방기념 가사_1945년 7월

편지 便紙

신식학교의 학생군사교육 → 이인서李仁瑞와 임석영林奭榮에게 줌_1908년
공부하는 학동들에 관한 보고 → 노백老柏 선생께 올리는 편지_1915년 11월
뫼시며 배우고 싶은 마음 → 간재艮齋 선생께 올리는 편지_1916년 6월 25일
일제의 앞잡이 토이土夷 → 조재원趙載元 도형道亨에게 줌_1917년 윤2월 16일
변하는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 노백 선생 전상서_1919년 4월
민성民性의 순화는 도道가 높은 학자의 임무 → 노백 선생께 올림_1919년 7월
강학講學을 그만두고 돌아와서 → 박계朴?에게 줌_1919년 10월 6일
노백 선생의 제의를 받고 → 노백 선생께 답함_1920년 1월 24일
스승 노백이 제자 사교재를 선생으로 초빙하는 편지_1920년 1월 23일
섬에 들어가지 않고 다시 강학講學으로 → 노백 선생의 편지에 답함_1920년 1월 28일
노백, ‘적극적으로 대처하지 않으면 안 되는 시대 상황’_1920년 2월 1일
친구는 섬으로 들어가고 → 전완全浣에게 답함_1920년 3월 25일
강상綱常을 부지하는 선생, 간재艮齋 → 간재艮齋 선생께 올림_1920년 7월 9일
최모 문제 → 이형렬李亨烈에게 답함_1922년 5월
석전강사石田講舍에서 최모에게 절교를 알리는 글_1922년 윤5월 9일
함경도의 동문에게 보낸 편지 → 허순영許順泳 경천景天에게 답함_1923년 6월
섬으로 들어간 은자隱者에게 → 김이청金夷淸 병로柄老에게 답함_1923년 8월 6일
공公과 사私 → 김이청金夷淸에게 줌_1924년 4월
간재艮齋 사후 그 문인들의 난맥상 → 석농石農 선생께 올림_1924년 8월
철원에서 돌아와 광교산에 은거함 → 김경하金景河 씨에게 보내다_1933년 7월 보름
일제강점기에 세운 정려각 → 안재하安在夏에게 주다_1948년 5월
구도의 길 → 허담許潭에게 줌_1948년 8월
친구의 손자를 가르치며 → 야당野塘 유득로柳得老에게 답함_1949년 12월
순환과 혁구 → 본암本庵 국범식鞫範植 사문斯文에게 줌_1954년 정월
견비통 → 이언경李彦卿에게 답함_1954년 오추梧秋 20일
전쟁 중 실종된 아들을 찾은 친구에게 → 이재환李載晥에게 줌_1954년 8월 22일
강상이 무너지고 자유와 평등을 외치는 시대 → 소당小棠 이용구李龍求 씨께 답함_1954년 10월망건 수리 → 안지산安芝山에게 줌_1955년 4월 25일
강유위와 양계초 → 이용구李龍求에게 답하다_1955년 6월 8일
안양재실이 잿더미가 되다 → 사문斯文 김정金鋌에게 답하다_1955년 12월
학천의 스승 문집 간행을 돕는 문제 → 학천學泉 김하규金夏圭에게 답함_1955년 섣달
31년 만에 전하는 소식 → 정현모鄭賢模에게 줌_1955년 12월 일
위토位土와 파보派譜 → 족인 재연在璉 씨에게 답함_1955년 12월 27일
돈만 받고 완성된 족보를 주지 않음 → 갑수甲洙, 용우容宇 두 종인께 답함_1956년
위토를 마련할 곡식을 보내며 → 연산連山 단향소壇享所에 보내는 편지_1956년 10월 1일
눈이 머는 아픔喪明之痛(아들의 죽음) → 족숙 직현 씨께 올림_1958년 정월
행장行狀을 써주며 → 조재구趙載九에게 줌_1958년 6월 그믐 하루 전
아들의 요절/담배 선물 → 전용구田溶九 씨에게 답함_1958년 10월 14일
후사後嗣를 세우는 문제 → 조장호 씨에게 답함_1958년 12월 8일
족인 김용식의 명절선물을 받고 → 족인族人 용식容植에게 답하다_1959년 설날
병마와 씨름하다, 족인族人 영달에게 답함_1959년 3월 26일
경서經書 팔기 → 이재설李載說 언경彦卿에게 보내다_1959년 10월
양재 권순명에게 아들을 보내며 → 양재陽齋 권순명權純命에게 답함_1960년 2월
몸을 깨끗이 하여 돌아감歸潔 → 지산芝山 안경익安景益에게 답함_1960년 8월 3일
유학자의 현대정치론 → 이병용李丙鎔에게 부침_1960년 8월
나라는 어지러워도 산중 세월은 한가하네 → 종씨 어른 재연 씨에게 답함_1961년 9월 25일
어떻게 올바른 사람에게 투표합니까? → 모씨에게 줌

잡저雜著, 서序, 기記, 제발題跋, 계화도일기繼華島日記

석전강사石田講舍 보인계輔仁契 설립문設立文_1917년
담배는 요물이다 → 탄연설歎烟說을 수궤재 제현에게 보여주다_1920년 3월 13일
고질이 된 흡연 → 흡연, 쓸데없는 습관_1947년
생일날 두 배 비통한 이유 → 생일날 아침에 우연히 쓰다_1947년 7월 27일
측은한 독립
‘모교母校’라는 말의 그름_1947년
자신의 과거를 부정하는 신문화 → 평화신문을 읽고
석장石丈 찬贊_1956년 12월
포은과 목은의 위차 → 숙모전肅慕殿 재중齋中에 답함_1959년 7월
삼은각三隱閣의 재유齋儒에게 답함_1960년 5월
목은 이색과 조선의 개국 → 상촌 신흠申欽의 「휘언彙言」 과 『승국유사勝國遺事』 를 읽고
유학자의 예수교 비판 → 서교변西敎辨-화지안花之安이 지은 『자서조동自西?東』의 구절을 잘라내어 비판함_1961년 6월
제국주의의 멸인종
일본 오랑캐의 간악한 술수
강대국의 술수
자유의 맹렬함
성현과 범인의 차이는 용심用心에 달렸다
조선 유교의 평가 → 황의돈黃義敦의 말 뒤에 씀
국가 속의 개인 윤리 → 이 나라에 사는 의미
양명학 비판
『경서언해經書諺解』의 오류와 오해
간사한 친일 무리의 변신
목민牧民의 도는 무농務農이고, 무농의 근본은 축우畜牛다 → 축우계서畜牛契序_1914년 12월
가난과 곤궁 → 유학동柳鶴東 명구鳴九를 송별하는 서序_1923년 9월 2일
『해제준적孩提準的』 서序_1949년 1월
판결사공파보서判決事公派報序_1958년 6월
학사당기學士堂記_1914년 3월
심心은 형이상인가, 형이하인가? → 성재가 화서의 심설을 보충한 글 뒤에 쓰다
노백 선생
계화도일기_1922년 6월

전기傳記

학생한공행장學生韓公行狀_1957년
청천당안공행장聽天堂安公行狀_1958년 12월
절부이씨전節婦李氏傳_1950년 3월
현원방씨전賢媛方氏傳
현원김씨전賢媛金氏傳

한담수록 閒談隨錄

『한담수록』 _1920년 2월
서재書齋(글방) 선생
실망
부모를 이기는 자식
신분과 충효
연호年號와 중화中華
유학儒學의 공사公私 개념
유자儒者의 처세

봉래산고 蓬萊散稿

『봉래산고』 → 봉래음사蓬萊吟社 간판刊板 서_1929년 2월
대추와 앵무새 → 몽양재蒙養齋의 여러 학생에게 써서 보여주다_1930년 1월 12일
학문은 확고한 마음이 서야 한다 → 학문에 다섯 장애가 있다_1930년 2월 5일
양성재養性齋 학계學契 서序_1930년 2월 13일
몽양재蒙養齋 일과표日課表 서序
학學의 의미 → 천덕재天德齋 제생의 질문에 답함
유학자와 은자 → 사명산四明山으로 가는 옥담거사玉潭居士를 송별하는 서序_1930년 3월 12일

어록 語錄

체용體用에 국한됨이 없다는 설
본연성설本然性說
본연심설本然心說
기질본연설氣質本然說
당초에 기질을 타고났다는 설
오서오경 독서일과표
유학의 기본개념 → 김용택, 김용덕, 이명용 세 동자에게 답함
자신의 심신에서 실천해야
유학무용론에 대하여
유학교육
네 가지 근본
네 가지 금지
옛 덕을 먹다
의리와 이익
도는 행하기 위하여 배운다 → 도를 배우는 것이 쓸데가 없고 쓸데가 있는 것
필부도 사회에 책임이 있다
사람과 동물은 체가 같고 용이 다르다
성인의 도
대일통大一統
강상
예의는 다스림이 나오는 근본이다

교훈 敎訓

글과 더불어 사람도 배워라 → 동몽童蒙 김종만金鍾萬에게 줌_1914년 9월 12일
내 안에 있는 천리와 인욕 → 안재하에게 줌_1919년 10월 17일
성인聖人을 배워라 → 수정재守貞齋 제군에게 보여줌_1946년
스스로 너그러워져라 → 집 아이 각수恪洙에게_1946년
안양사安陽祠 → 수정재守貞齋 제군에게 말함_1946년 9월 9일
인의仁義야말로 부강하게 되는 길이다 → 서사書社의 제군에게 말함_1946년
선생으로서 가르치는 어려움 → 제생諸生[여러 학생]에게 말함_1946년
성인이 바로 천리다 → 수정서사守貞書社의 제군에게 보여주다_1946년
학자의 가난 → 족인 상수常洙에게 줌_1946년 10월
뜻이 굳센 사람 → 족인 화수和洙에게 줌_1947년
가르침에 대하여 → 수정재守貞齋 제군에게 사과함_1947년 2월
스스로 처신하고 변화하기 → 집 아이 각수恪洙에게 말함_1947년 2월
면강勉强의 도道 → 각수恪洙에게 줌_1947년 7월
도가 없는 시대의 사士 → 헌수憲洙, 태수台洙, 화수和洙에게 훈시함_1948년
곧음을 지켜라 → 수정재守貞齋 제군에게 보여주다_1948년
성리학의 기본 개념 → 조규하曺圭夏에게 주다_1948년
이기理氣 → 희수喜洙에게 줌
자신의 욕심을 극복하라 → 각수恪洙에게 주는 말_1948년 5월
이 마음을 보존하여 천리를 지킴 → 서당 학생들에게 훈시함_1948년 8월
곤궁한 시대에 수신修身이 중요하다 → 수정사 제군에게 보여주다_1949년 설날
배움이 무엇인가 → 유원호柳元鎬에게 주다_1949년 3월 10일
마음공부가 중요하다 → 유원호에게 줌_1949년 12월
예禮 → 김영학에게 줌_1950년 5월
예禮를 따르라 → 안성순安誠淳에게 훈시함_1953년 3월
일기는 정직하게 써라 → 안성순安成淳의 일기습장日記習帳을 위하여 쓰다_1953년 3월
『소학』의 「경신敬身」 편 → 조광현曹光鉉에게 주는 글_1955년 섣달
자유의 비판 → 김영두金永斗에게 줌_1957년 5월
상도常道를 지켜라 → 큰아들 각수恪洙에게 주는 말_1960년 3월 20일
안양사安陽祠의 복식과 머리 모양 → 수궤재守軌齋 벽에 붙이다_1960년 9월
가난과 고난의 의미 → 윤희천尹羲天에게 써주다_1960년 12월 20일
육식의 절제 → 검덕첩儉德帖_1962년 정월
자기 마음에 비추어 남의 처지를 헤아림 → 아무개에게 주려고 쓴 글
인심과 도심, 속안과 도안 → 안상우安相佑, 정원영鄭元永, 손인장孫仁長, 손한성孫漢成 등 여러 어린이에게 주다
속이지 마라 → 집 아이 각수恪洙에게 훈시함
『소학』의 실천 → 외손자 재곤在坤에게
유가가 불가와 다른 점 → 같은 사社의 제군에게 써서 보이다
나로써 사물을 보라 → 관동으로 가는 족인 화수和洙에게 주는 말
중화中華와 이적夷狄 → 유兪 공의 묘표와 노盧 공의 묘지명 뒤에 씀
논어의 의미, 하학상달下學上達 → 조규하, 이병용, 이명용에게 말하다
재난과 시련 속의 성취 → 서사書社의 학생들에게 보여줌
집중하여 사색하고 음미하라 → 주자朱子 편지 중의 독서법
훌륭한 사람과 사귀어라 → 손자에게 주는 글

종중宗中

족보 편찬의 규례規例 → 보소譜所에 답함_1956년 정월 18일
파보와 대동보 → 보소譜所[족보 편찬소]에 답함_1956년 정월
문중과 가문의 의미 → 보소에 답함_1956년 2월
족보 편찬의 준칙 → 보소에 답함_1956년 2월 22일
6·25전쟁에 파괴된 사당 → 양평 종중에 답하는 편지_1956년 9월 20일
족보 단금單金 → 보소에 답함_1956년
9권 1질 족보 대금 1만 환 → 김갑수에게 답함_1956년 9월 28일
수포로 돌아간 족보 편찬 사업 → 종인 갑수甲洙에게 답함_1956년
족보 편찬 범례 → 종인 갑수에게 줌_1956년 10월 20일
종손宗孫의 개념 → 종인宗人 원중元中에게 줌_1956년 12월
북촌공의 종손으로 자처하는 봉수 → 종인宗人 봉수鳳洙에게 줌_1956년 12월
족보의 서문을 써 보내며 → 족숙族叔 철현徹鉉 씨에게 답하는 편지_1958년 6월
할아버지 항렬 밑으로 양자 가는 문제 → 족형族兄 택수澤洙에게 줌_1959년 10월
봉수의 소종래所從來를 모른다 → 종간宗簡_1960년
봉수의 출계出系에 관한 의문점
봉수의 결단

답문答問

친정부모에 대한 여자의 호칭과 동자의 상례 → 김영두에게 답함
공자와 주자를 존경하고 사모하는 이유 → 어떤 사람과의 문답_1946년 9월 10일
성리학 → 족인 태수台洙에게 답함_1947년
강상과 국가 → 수정사의 제군에게 답하다_1949년
학문의 목적은 하나의 이理에서 비롯된 본연성의 회복 → 유원호柳元鎬에게 답함_1950년 2월
옥헌玉軒 유해주柳海珠의 효도 → 문의문묘文義文廟의 제유諸儒에게 답함_1960년
생일날 두 배 슬퍼해야 한다 → 조규하曺圭夏 군에게 답하다_1960년 1월
유락가流落家의 족보
가르침의 쇠퇴와 반란세력의 발호 → 어떤 사람에게 답함
적서嫡庶 차별에 대하여 → 제생의 물음에 답함

산록散錄

가르치고 배울 때의 구차함
임금과 부모를 위한 복수
말세의 비겁자
마음과 육체
벗을 사귀는 도
붕우 간의 공경恭敬
마음의 뜻
마음의 힘
자정自靖
화이華夷의 구분
시비와 음양, 유가의 이분법
성학聖學과 이학夷學
유복儒服과 이복夷服
지知의 개념
양지와 천리
이기理氣
심心
심의 체용體用
보원報怨[원수 갚기]
마음공부
사 士의 책임
부모 공양
이理와 기氣
시속時俗을 따르는 것
상복喪服과 경찰
예와 풍속
국민과 국가
운運, 세勢, 속俗
사 士[학자]
중화와 이적
성리학과 국가
강상과 예의
학자는 우주의 원기
지자智者와 인자仁者
천리와 인욕, 중화와 이적
심心의 체용
재앙의 기틀
마음의 두 갈래
하늘과 사람
인물성동이론
다스림의 요점

원문 原文
Author
김영익,하영휘
충남 태안 출신. 일명 영보永輔. 본은 광산, 자는 우삼友三, 호는 사교재四矯齋다. 노백老柏 최명희(崔命喜, 1851~1921)와 간재艮齋 전우(田愚, 1841~1922)의 문하에서 공부했다. 한국이 근대로 이행한 대전환기의 변화에 맞서 유교적 가치를 지키기 위해 평생 노력했다. 학사당, 수궤재, 몽양재, 수정재 등 전국 각처에서 유학자를 기른 유학자이자 교육자다.
충남 태안 출신. 일명 영보永輔. 본은 광산, 자는 우삼友三, 호는 사교재四矯齋다. 노백老柏 최명희(崔命喜, 1851~1921)와 간재艮齋 전우(田愚, 1841~1922)의 문하에서 공부했다. 한국이 근대로 이행한 대전환기의 변화에 맞서 유교적 가치를 지키기 위해 평생 노력했다. 학사당, 수궤재, 몽양재, 수정재 등 전국 각처에서 유학자를 기른 유학자이자 교육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