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인 백봉거사는 56세까지 불교와는 거리가 먼 삶을 살다가 57세에 화두를 잡은 이래로 1년도 되지 않아 깨달음을 얻게 된다. 그는 『금강경』을 접했음에도 불구하고 법열에 넘쳐 하룻밤 사이에 『금강경』 각 분(分)마다 게송을 달아 읊었다고 전해진다. 이 책에서도 전통적인 해설보다는 철저히 자신의 살림살이를 토대로 종횡으로 막힘 없이 설법을 한다.
『허공법문』은 종래의 소극적이고 수동적인 이해에 머물던 공리(空理)의 방편을 보다 적극적이고 창조적으로 개진해서 '허공으로서의 나'를 모든 상대성을 넘어선 절대적이고 주체적인 근원으로 제시하고 있으며, 이 '허공으로서의 나'가 근본적인 바탕이기 때문에 태어나고 죽는 것도 우리의 권리로서 주체적으로 하는 것이라고 설한다. 또한 '허공으로서의 나'를 근간으로 삼는 전통적인 화두의 방편을 제시한다.
Contents
1장. 누리의 주인공
누리의 주인공
신업(身業), 구업(口業), 의업
허공으로서의 나
듯
무엇이 나고 죽는가?
자기를 보는 것이 부처를 보는 것이다
번뇌 망상
겁밖의 사람
마음에 점을 찍을 자리가 없다
법은 본래 생겨나지 않는다
시공간
타협하지 말라
삼매--비명비암(非明非暗)
공적체(空寂體)란 무엇인가?
슬기눈
참과 거짓
유위법과 무위법
선지식은 어떻게 만나는가?
예불과 경전 독송으로 수행하는 것은 어떠한가?
2장. 새말귀
인과-빚 갚기
공성 중에는 생사와 열반이 붙지 않는다
공(空), 무상(無相), 무작(無作)
삼계를 노리개 거리로 삼아라
업을 녹이려면 (1)
업을 녹이려면 (2)
여러분의 몸은 여러분의 몸이 아니다--흐리멍덩
부처를 해방시킵시다
부처님의 사업장
중생불
언구(言句; 말마디)
삼매정중
화두에 대해
자성로(自性路)
허공문답
방편은 무정법
3장. 공겁인(空劫人)
선문염송 머리말
공겁인(空劫人)(1)
공겁인 (2)
동그랑 땡
진주에서 무가 나느니라
뜰 앞의 잣나무
착함도 생각지 않고 악함도 생각지 않을 때 너의 본래면목은?
신통
지덕(智德)--십자송과 십물계
깨달아도 깨달은 바가 없다
기미
죄의 성품
원각(圓覺)
백봉거사의 성명은 김기추(金基秋)이며 1908년 음력 2월 2일 부산에서 태어났다. 젊은 시절 항일 민족운동을 벌이다 부산형무소에서 1년을 복역하고, 이후 만주 땅에서까지 ‘불령조선인(不逞朝鮮人)’으로 끊임없는 감시를 받다가 해방을 맞는다. 광복 후에는 교육 사업을 하다가 오십이 넘는 늦은 나이에 불법을 만나서 무(無)자 화두를 갖고 정진하다가 1964년 1월에 확철대오하였다. 이후 속가에 머물면서 거사풍(居士風) 불교를 크게 일으켜 수많은 사람들에게 최상승의 법문을 설하였다. 1985년 7월 27일 지리산 기슭의 보림선원에서 마지막 하계수련대회를 주재하실 때 제자들을 시켜 ‘여하시최초구(如何是最初句; 무엇이 최초의 구절인가?)’를 걸게 하고는 8월 2일 마지막 설법을 하고 나서 78세를 일기로 그 모습놀이를 거두었다.
저서로는 『금강경강송』, 『유마경대강론』, 『선문염송요론』(15권), 『절대성과 상대성』, 『백봉선시집』이 있다.
백봉거사의 성명은 김기추(金基秋)이며 1908년 음력 2월 2일 부산에서 태어났다. 젊은 시절 항일 민족운동을 벌이다 부산형무소에서 1년을 복역하고, 이후 만주 땅에서까지 ‘불령조선인(不逞朝鮮人)’으로 끊임없는 감시를 받다가 해방을 맞는다. 광복 후에는 교육 사업을 하다가 오십이 넘는 늦은 나이에 불법을 만나서 무(無)자 화두를 갖고 정진하다가 1964년 1월에 확철대오하였다. 이후 속가에 머물면서 거사풍(居士風) 불교를 크게 일으켜 수많은 사람들에게 최상승의 법문을 설하였다. 1985년 7월 27일 지리산 기슭의 보림선원에서 마지막 하계수련대회를 주재하실 때 제자들을 시켜 ‘여하시최초구(如何是最初句; 무엇이 최초의 구절인가?)’를 걸게 하고는 8월 2일 마지막 설법을 하고 나서 78세를 일기로 그 모습놀이를 거두었다.
저서로는 『금강경강송』, 『유마경대강론』, 『선문염송요론』(15권), 『절대성과 상대성』, 『백봉선시집』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