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는 대학에서 정치사상을 전공하였다. 아마 고전강독에 대한 매력에 이끌렸기 때문일 것이다. 은사의 영향으로 현상학에 대한 학습을 중점적으로 하게 되었고 그것은 방법론과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관심을 제고시켰다. 현상학의 주요 개념과 이론들은 사회과학 방법론의 인식론과 직결된다. 또한 현상학적 마르크스주의는 서구마르크스주의의 주요한 이론적 전통이기도 하다. 불문학을 좋아했던 저자는 특히 20세기 프랑스 지성사에 관심을 가졌는데 메를로-퐁티, 사르트르, 까뮈 등이 활약했던 1940년대와 50년대는 감정이입이 가능한 박진감 있는 시기였다. 그들은 헤겔과 마르크스를 이론적 무기로 삼아 레지스탕스와 부역자 재판, 스탈린체제 등에 대해 지적인 성찰을 감행하였다. 그들이 전개한 치열한 논쟁은 철학이 정치의 세계에 어떤 방식으로 개입을 하며 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를 여실히 보여주었다. 그들을 바라보며 정립된 일련의 시각은 저자의 학문적 세계관의 모체가 되었고 본서 제1부 및 2부의 주제와 관련이 있다.
1968년 프랑스 5월 혁명은 후기산업사회의 등장을 증명한 문명사적 사건이었으며 이후 서구의 지성사는 탈근대적인 의식세계를 보여주었다. 생태주의, 미시정치학, 노마디즘, 애고니즘, 역사의 종언, 전자민주주의 등 새로운 패러다임들이 등장하였다. 이 시기의 새로운 양상은 이전의 그것과 비교할 때 거대담론을 거부하며 이념적인 치열성보다는 현실적합성을 강조하는 특징이 있다. 저자는 모더니즘보다는 포스트모더니즘의 관점에서 이 시기를 이해하려 하였고 제3부와 제4부는 주로 이러한 맥락의 새로운 정치이론들을 다루고 있다. 다만 한나 아렌트의 경우는 탈근대의 흐름과 무관하지만 20세기의 대학살에 대한 철학적 성찰을 시도했다는 점에서 주제의 무게를 감안하여 여기에 포함시켰다.
미국의 자유주의적 전통은 미국의 건국정신에 대한 공화주의적 해석가능성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예외주의라는 표현이 말해주듯이 유럽의 그것과는 사뭇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제5부에서는 미국식 자유주의의 본질과 전개과정을 살펴본 후, 미국식 자유주의가 미국의 헌법과 정치제도에 어떻게 투영되고 있는지, 그리고 그것의 저력과 문제점은 무엇인지를 검토하였다. 제6부에서는 싱가포르의 정치체제를 모델로 삼아 부드러운 권위주의의 통치원리를 살펴본 후 그것의 민주화 가능성을 예측해 보았고, 아시아적 가치 논쟁과 관련해서는 아시아적 민주주의의 잠재력에 대해서 호의적으로 해석해 보았다. 이는 미국식 자유주의가 최고선일 수는 없다는 소박한 판단에 기인하였다.
이 책은 그동안 발표했던 여러 편의 논문들을 편집한 것인데 하나의 주제를 심층적으로 다루고 있지 못하다. 그것은 고도의 전문성을 본질로 하는 장인정신의 추구보다 다양한 관심사에 대한 지적 호기심의 충족을 선호하는 저자의 딜레탕트적 성벽을 반영하고 있을 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