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1일 민족문제연구소는 한국인 BC급 전범 이학래의 회고록 『전범이 된 조선청년』을 발간했다. 이 책은 일본제국주의의 침략전쟁에 강제동원 되어 타이에서 포로감시원으로 복무하다 전쟁 종료 후 BC급 전범으로 체포되어 사형선고를 받고 감형되어 수년 간 감옥 생활을 했던 한국인 BC급 전범 이학래의 파란만장한 인생을 담고 있다.
『전범이 된 조선청년』은 일본에서 출판된 『한국인 전 BC급 전범의 호소』를 번역한 책이다. 저자는 이 책에서 일본군의 최말단에 속했던 한국인 포로감시원들이 일상적으로 포로를 대면했다는 이유로 부당하게 일제의 포로 정책의 책임을 떠안고 BC급 전범으로 처벌되었던 아픈 과거를 회고한다.
특히 한국인 BC급 전범 문제는 일제가 자행한 여러 유형의 강제동원 가운데서도 일반인들에게는 낯선 분야라 할 수 있다. 민족문제연구소는 2013년 서울역사박물관에서 ‘전범이 된 조선청년들-한국인 포로감시원의 기록’이라는 특별전을 개최하여 한국 사회에 이 문제를 환기한 바 있다. 이학래 선생의 회고록 『전범이 된 조선청년』의 출판으로 다시 한 번 한국 사회에 한국인 BC급 전범 문제가 재조명되기를 기대한다.
Contents
책을 펴내며
한국 독자 여러분께
‘죽음의 철로’ 포로 감시원
포로 감시원이 되기까지
패전, 역전되는 입장
사형 판결과 ‘죽음을 각오한’ 여덟 달
스가모 프리즌Sugamo Prison이라는 곳
택시 회사 설립과 유골 송환 운동
조리條理를 요구하는 재판 투쟁
일본 정부의 대응을 요구하는 입법 운동으로
한국어판 후기
끝나지 않은 질문, 누구를 위해, 무엇을 위해 - 우쓰미 아이코
오늘 하루, 이학래가 되어 보자 - 이상의
역자후기
특정 연합국 재판 피구금자 등에 대한 특별급부금 지급에 관한 법률안
이학래 연보
참고 문헌
이 책의 이해를 돕는 키워드
Author
이학래,김종익
1925년 전라남도 보성군에서 태어났다. 열일곱 살 때 일본군의 포로 감시원 모집에 응모하여, 1942년 9월부터 1945년 8월까지 일본군 군무원으로 타이·미얀마 철도 건설에 동원된 연합국 포로 감시 업무에 종사했다. 1947년 3월 20일 전범으로 체포되어 오스트레일리아 관할 재판에서 사형 판결을 받았다. 같은 해 11월 7일 20년으로 감형되었다.
‘일본인’으로 취급되어 중형을 살았지만, 일본 정부는 ‘외국인’으로 구분해 원호와 보상에서 완전히 배제했다. 1955년 처지가 같은 한국·조선인 전 BC급 전범자와 함께 ‘동진회’를 결성하고 일본 정부의 사죄와 보상을 요구하며 현재까지 지속적인 투쟁을 전개하고 있다. 현재 ‘동진회’의 회장을 맡고 있다.
1925년 전라남도 보성군에서 태어났다. 열일곱 살 때 일본군의 포로 감시원 모집에 응모하여, 1942년 9월부터 1945년 8월까지 일본군 군무원으로 타이·미얀마 철도 건설에 동원된 연합국 포로 감시 업무에 종사했다. 1947년 3월 20일 전범으로 체포되어 오스트레일리아 관할 재판에서 사형 판결을 받았다. 같은 해 11월 7일 20년으로 감형되었다.
‘일본인’으로 취급되어 중형을 살았지만, 일본 정부는 ‘외국인’으로 구분해 원호와 보상에서 완전히 배제했다. 1955년 처지가 같은 한국·조선인 전 BC급 전범자와 함께 ‘동진회’를 결성하고 일본 정부의 사죄와 보상을 요구하며 현재까지 지속적인 투쟁을 전개하고 있다. 현재 ‘동진회’의 회장을 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