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사회 속의 종교

대륙을 움직인 숨겨진 얼굴
$40.25
SKU
9788993587074
+ Wish
[Free shipping over $100]

Standard Shipping estimated by Fri 12/6 - Thu 12/12 (주문일로부 10-14 영업일)

Express Shipping estimated by Tue 12/3 - Thu 12/5 (주문일로부 7-9 영업일)

* 안내되는 배송 완료 예상일은 유통사/배송사의 상황에 따라 예고 없이 변동될 수 있습니다.
Publication Date 2011/03/15
Pages/Weight/Size 153*224*35mm
ISBN 9788993587074
Categories 종교 > 종교 일반
Description
『중국사회 속의 종교』는 중국 출신 미국 사회학자인 양경곤 교수가 중국 종교를 사회사적 시각으로 새롭게 접근한 연구서이다. 우리는 흔히 중국인들의 종교라고 하면 '대승불교' 혹은 '도교'를 떠올린다. 과연 그럴까? 이 책은 중국사회에 있어 '종교와 신앙'의 사회적 실상을 추적하며, 우리가 일반적으로 떠올리는 모습과는 다른, 중국 사회 속의 신앙을 면면히 들여다본다. 기존의 시각과는 다른 '새로운 해석의 틀'을 통해 중국 종교의 현실을 실체화시킨 이 책은 출간한지 40여년이 지났지만 '중국 종교 연구의 바이블'이라는 상찬까지 얻고 있다.

제1장에서 4장까지는 중국사회에 있어서 종교의 위상과 사회적 기능에 관해 서술하였다. 우선 중국기층사회에 얼마나 많은 민간신앙의 거점이 존재하는지 지방지에 대한 세밀한 분석을 통해 구체적인 수량과 기능별 유형을 제시했다. 다음으로는 가정과의 긴밀한 결합, 사회와 경제단체 그리고 지역사회에 있어서 민간신앙의 역할에 대해 설명하였다. 지역사회의 행사에 있어서 민간종교는 사회경제적인 차이를 초월하여 공동체 속에 다수의 군중을 일체화할 수 있는 집단적인 상징을 제공해왔다.

제5장에서 제11장까지는 국가권력과 종교 신앙과의 관계를 다루고 있다. 먼저 중국 역대 왕조에 있어서 불교·도교·민간종교의 정치적 역할과 국가권력과의 관계를 시대별로 개관하고, 황권과 천명의 관계, 정치적 윤리를 확산하고 유지하는 데 있어서 신앙의 역할에 대해서 상술하였다. 다음으로는 민간의 종교 신앙에 대한 국가의 통제와 종교 반란에 대해서 밝히고 있다. 마지막으로 양경곤은 전통 중국사회 속에서 ‘제도종교’와 ‘분산형 종교’의 상대적 지위를 재평가하고, 현대 중국사회의 발전 과정에서 종교의 새로운 기능에 대해 설명하며 결론을 맺는다.
Contents
역자 서문 : 한국어판을 내면서(중국명저독회中國名著讀會)

중국어판 서문(1) : 중국 종교 연구의 사회학적 모델-양경곤 시선 속의 중국사화와 종교 (김요기 범려주)
중국어판 서문(2) : (다니엘 오버마이어Daniel L. Overmyer)
지은이 自序

제1장 서론
제2장 가족의 결속 측면에서 본 종교
제3장 사회와 경제단체 속의 종교
제4장 민간신앙의 사회적 이해
제5장 역사적인 관점에서 본 중국 종교의 정치적 역할
제6장 천명(天命)의 작용
제7장 도덕정치적 신앙: “신의 도로써 교의를 세우다”
제8장 국가의 종교 통제
제9장 종교와 정치적 반란
제10장 유학의 이론과 실제 속의 종교적 측면
제11장 종교와 전통 도덕질서
제12장 중국사회의 제도종교와 분산형 종교
제13장 1949년 이전 중국사회 속의 종교 역할의 변화
제14장 새로운 신앙, 공산주의

중국어판 후기
참고문헌
Author
양경곤,중국명저독회
중국 광동성 남해현에서 출생했다. 어려서 잠시 전통적인 유교교육을 받기도 했으며 베이징의 연경대학(燕京大學)에 입학하여 서구 학문을 접하게 된다. 개방적인 학풍을 가지고 있던 연경대학에서 사회학자인 로버트 에즈라 파크(Robert Ezra Park)를 만난다. 파크는 종교사회학의 거장인 막스 베버와 함께 당대 세계 사회학계를 이끌었던 심멜(Georg Simmel)의 제자로서 향후 그의 미국 유학과 학문 역정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게 된다. 1932년 연경대학 사회학과를 졸업하고, 2년 후에는 같은 대학에서 파크의 지도하에 석사학위를 받는다. 그는 이곳에서 평생의 친구이자 학문적 동지인 훼이샤오통도 만나게 된다. 졸업 후 파크의 권유로 미국 유학을 떠나 1939년에는 미시간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학위 후 뉴욕의 중국인 신문인 Chinese Journal에서 편집인으로 활동하는데 그가 일시적으로 저널리스트를 선택한 것도 졸업 후 11년간 리포터로 사회 경험을 쌓은 뒤 학계로 복귀했던 지도교수의 영향 때문이었다. 1944년 시애틀의 워싱턴 대학 사회학과에서 조교수로 첫 교편생활을 시작한다. 1948년에는 귀국하여 광주 영남대학 사회학과의 주임이자 부교수로 취임하였다. 공산혁명이 한창이던 이 시기에 그는 광주 근교의 노강촌 일대에서 현지답사를 강행했는데, 이곳에서 향후 저술하게 되는 중요한 저작들의 자료를 모으게 된다. 이 시기에 그는 파크 교수의 양자이자 저명한 인류학자인 로버트 레드필드(Robert Redfield)를 만나게 된다. 레드필드의 종교와 농촌 사회문화에 대한 연구는 그의 학술 생애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치게 된다.

1950년 공산중국에서의 사회학 연구가 여의치 않자, 그는 다시 미국으로 돌아갔다. 잠시 MIT와 하버드에서 연구원으로 일하다가, 53년부터는 피츠버그 대학에서 다시 교편을 잡게 된다. 이 시기부터 60년대까지 그는 평생의 대작들을 연이어 출판하는데,『초기 공산혁명 과도기에 있어서 중국 촌락A Chinese Village in Early Communist Transition』, 『공산혁명 속에서의 중국 가족The Chinese Family in the Communist Revolution』, 『중국 공산사회: 가족과 촌락Chinese Communist Society: The Family and the Village』 그리고 이 글에서 다루고 있는『중국사회와 종교』가 바로 그것이다. 그 후 그는 하와이 대학 사회연구센터(Social Research Center)의 지원으로 피츠버그 대학과 일본·타이완·홍콩 등지를 연계하는 학술네트워크를 결성하여 국제협력연구를 주도하였고, 70년대에는 홍콩 중문대학의 사회학과를 창설하였다. 1971년에는 첫 번째로 초청된 미국 사회과학자의 일원으로 중국을 방문하였고, 79년에는 북경대 교수인 훼이샤오통의 초청으로 미국 사회학자들 가운데 처음으로 북경대학에서 강연을 하기도 한다. 1981년 피츠버그 대학을 은퇴한 뒤 명예교수로 활동하다가 1999년 세상을 떠났다.
중국 광동성 남해현에서 출생했다. 어려서 잠시 전통적인 유교교육을 받기도 했으며 베이징의 연경대학(燕京大學)에 입학하여 서구 학문을 접하게 된다. 개방적인 학풍을 가지고 있던 연경대학에서 사회학자인 로버트 에즈라 파크(Robert Ezra Park)를 만난다. 파크는 종교사회학의 거장인 막스 베버와 함께 당대 세계 사회학계를 이끌었던 심멜(Georg Simmel)의 제자로서 향후 그의 미국 유학과 학문 역정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게 된다. 1932년 연경대학 사회학과를 졸업하고, 2년 후에는 같은 대학에서 파크의 지도하에 석사학위를 받는다. 그는 이곳에서 평생의 친구이자 학문적 동지인 훼이샤오통도 만나게 된다. 졸업 후 파크의 권유로 미국 유학을 떠나 1939년에는 미시간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학위 후 뉴욕의 중국인 신문인 Chinese Journal에서 편집인으로 활동하는데 그가 일시적으로 저널리스트를 선택한 것도 졸업 후 11년간 리포터로 사회 경험을 쌓은 뒤 학계로 복귀했던 지도교수의 영향 때문이었다. 1944년 시애틀의 워싱턴 대학 사회학과에서 조교수로 첫 교편생활을 시작한다. 1948년에는 귀국하여 광주 영남대학 사회학과의 주임이자 부교수로 취임하였다. 공산혁명이 한창이던 이 시기에 그는 광주 근교의 노강촌 일대에서 현지답사를 강행했는데, 이곳에서 향후 저술하게 되는 중요한 저작들의 자료를 모으게 된다. 이 시기에 그는 파크 교수의 양자이자 저명한 인류학자인 로버트 레드필드(Robert Redfield)를 만나게 된다. 레드필드의 종교와 농촌 사회문화에 대한 연구는 그의 학술 생애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치게 된다.

1950년 공산중국에서의 사회학 연구가 여의치 않자, 그는 다시 미국으로 돌아갔다. 잠시 MIT와 하버드에서 연구원으로 일하다가, 53년부터는 피츠버그 대학에서 다시 교편을 잡게 된다. 이 시기부터 60년대까지 그는 평생의 대작들을 연이어 출판하는데,『초기 공산혁명 과도기에 있어서 중국 촌락A Chinese Village in Early Communist Transition』, 『공산혁명 속에서의 중국 가족The Chinese Family in the Communist Revolution』, 『중국 공산사회: 가족과 촌락Chinese Communist Society: The Family and the Village』 그리고 이 글에서 다루고 있는『중국사회와 종교』가 바로 그것이다. 그 후 그는 하와이 대학 사회연구센터(Social Research Center)의 지원으로 피츠버그 대학과 일본·타이완·홍콩 등지를 연계하는 학술네트워크를 결성하여 국제협력연구를 주도하였고, 70년대에는 홍콩 중문대학의 사회학과를 창설하였다. 1971년에는 첫 번째로 초청된 미국 사회과학자의 일원으로 중국을 방문하였고, 79년에는 북경대 교수인 훼이샤오통의 초청으로 미국 사회학자들 가운데 처음으로 북경대학에서 강연을 하기도 한다. 1981년 피츠버그 대학을 은퇴한 뒤 명예교수로 활동하다가 1999년 세상을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