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에서 공부가 필요한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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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blication Date 2015/10/30
Pages/Weight/Size 140*200*15mm
ISBN 9788992378833
Categories 에세이
Description
삶은 언제나 기대처럼 살아지지만은 않기에
살아가는 동안 공부가 필요하다.
그러면 어느 순간, 가장 빛나는 날이 시작될 것이다.

평소에 아끼고 사랑했던 글귀들을 통해 얻은
톨스토이의 마지막 깨달음

우리는 살면서 수많은 문제에 직면하게 된다. 아니, 어찌 보면 인생은 고난의 연속이라고도 할 수 있는데, 이때마다 하나씩 하나씩 풀어나가지 않으면 안 된다. 세계적인 대문호 톨스토이Lev Nikolayevich Tolstoy 또한 죽기 직전까지 수많은 고민에 시달렸음을 “이 세상에서는 레프 톨스토이뿐만 아니라 수많은 사람들이 번민하고 있다”라는 그의 마지막 말을 통해 알 수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톨스토이가 선택한 것은 바로 ‘좋은 글귀’였다. 수많은 현인들의 글을 통해 살아갈 힘을 얻었을 뿐 아니라, 훌륭한 작품들의 토대 또한 마련했던 것이다. 톨스토이는 이 책 『인생에서 공부가 필요한 순간』에서 평소에 아끼고 사랑했던 글귀들과, 이를 통해 얻은 인생의 깨달음을 전하고 있다.

“인간의 행복과 불행은 각자의 마음속에 있다.
자기 스스로가 운명을 만드는 것이지,
운명이 나를 만드는 게 아니다.”

Contents
오늘을
살아가기
위해

사람도 강물과 같다
사랑은 곧 신이다
힘들이지 않는다면 기쁨도 없다
저는 모르겠습니다
마음이 급할 때는 아무것도 하지 말라
후회를 지혜롭게 이용하라
착각에서 벗어나라
지금 이 순간보다 더 좋은 때는 없다
우리가 서로 사랑한다면
귀 기울여 들어라
겸손이 오만을 이긴다
누구에게나 영혼은 있다
살면서 가장 중요한 일은…
자신이 원하는 일을 남에게도 똑같이 하라
행복의 방향을 바로잡아라
지금 사랑하라
먼저 베풀라, 많은 것을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인내를 아는 사람
마음이 있는 곳에 보물이 있다
땀 흘려 일하는 사람을 존경하라
행복한 가족은 서로 닮은 데가 많다
삶을 위한 열 가지 교훈
악한 사람들의 칭찬은 거절하라
인사는 넘치게
당신이 바로 그 못난 사람
진정한 노력이란
너 자신을 알라
작은 열매가 크게 자란다
인간은 그런 것이 아니다
우리는 왜 세상에 왔을까?
꼭 필요한 것만 가져라
어린아이의 말에 담긴 진리
혼자서 삶을 바라볼 시간을 내라
죽음을 준비할 시간
햇살에는 그림자가 따른다
영혼을 씻는 일
확실하게 행복해지고 싶은가?
이제 당신을 믿을 수 없게 되었다
아이들에게 선함과 단순함을 가르쳐라
그는 눈 먼 자여서…
힘이 있을 때 뉘우쳐라
사람들을 하나로 묶는 법
유혹이라는 동반자
평범한
날들을
위해

무엇을 해도 두렵지 않다
내 모습이 부끄럽다
삶의 목표는 기쁨이다
내가 해야 하는 일은 내 능력 안에 있다
과거를 잊는 기술
사랑이 삶이다
행복의 비밀
고독하게 두지 말라
참된 선행
천성에 따라 일을 맡겨라
악한 생각을 멀리하라
사랑받고자 애쓰지 말라
인생에 희망이라는 돛을 달아라
사람은 다 다르다는 평등
노력 외에는 길이 없다
빗물은 하늘에서 떨어진다
사랑하는 자는 죽지 않는다
정의의 씨앗
결혼의 참다운 의미
‘용서합니다’라는 말로는 부족하다
깊은 강물은 요동치지 않는다
해롭지 않은 거짓말은 없다
이 세상에 악은 없다
자신이 한 거짓말부터 시인하라
음식이 독이 될 때
선한 사랑
공통점 찾기
영혼이 인도하는 길
진정한 삶은 현재에 있다
그저 사랑만 하면 된다
내가 먼저 변화되어야
길 잃은 사람을 불쌍히 여겨라
육체는 아무것도 아니다
과학과 예술의 관계
진실함은 위대한 미덕이다
너의 생각을 다스려라
한 걸음씩 한 걸음씩
가장 큰 자산, 양심
사랑은 …
인생의 즐거움은 무한하다
부지런한 사람과 게으른 사람
불행만을 심었다
현명해지려면 겸손하라


다시
시작하기
위해

‘사랑’이라는 해결사
사람을 판단하지 말라
참된 말은 모든 사람이 헤아릴 수 있다
좋은 사람과 나쁜 사람의 차이
선한 사람은…
겉모습은 중요하지 않다
영혼은 어린아이와 같이 자란다
나에게서 시작하는 불행
많이 바라는 만큼 자유를 잃는다
오만은 어리석음과 함께 다닌다
열심히 일한 뒤에 먹는 음식
사는 가운데 누리는 기쁨
즐거움에 넘치라
지금 내 앞에 있는 사람들과 화합하라
사랑이란
나쁜 일을 하지 않기 위해 애쓰라
무엇을 할 것인가
생각이 자라서
험담도 칭찬도 하지 말라
매일 일하라
습관의 주인이 되어라
영원으로 가는 길
오만은 자신을 파멸로 이끈다
내 안에서 길 찾기
어떤 말을 만 번 이상 되풀이하면
비난이나 칭찬에는 관심을 두지 말라
사랑을 키우고 세상에 퍼뜨려라
그 무엇보다 중요한 ‘즐거운 놀이’
가장 해로운 것은 허영심
생각하는 방식을 바꾸라
비밀 하나
진실한 후회
언젠가 죽음이 찾아오면
나는 기도한다
내면의 목소리를 들으라
아이의 눈높이에서
거친 세상을 함께하는 동반자
선행이란 무엇인가?
튼튼한 출발
오늘 밤 죽을지도 모릅니다
사랑하고, 사랑하고, 사랑하고
나무도 그렇고 돌도 그렇다
거짓말쟁이는 진리에 약하다


내일을
살아가기
위해

항상 낮은 자리에 앉아라
욕망은 변덕쟁이다
백까지 세어라
정말로 필요한 것은 쉽게 얻을 수 있다
사랑하는 능력을 북돋우라
이미 좋은 사람이라 여겨서는 안 된다
햇빛을 찾아가는 식물처럼
아이는 잠재력대로 자란다
책 한 권 읽지 않고서도
사랑할 때 ‘나’와 ‘너’는 하나가 된다
신이 두려워서
좋은 책, 나쁜 책
이성에 따라 행동하라
누구나 살면서 죄를 짓고 참회하고
최고의 대답
지혜로운 사람은 단순한 언어로 표현한다
고요한 나로 돌아가기
나는 ‘좋은 사람’
삶은 그 자체로 이미 좋은 것이다
행복은 육체가 아닌 정신에 있다
왜 그동안 이 행복을 내게서 빼앗았을까?
아름다운 사람들의 편에 서고 싶다
스스로 자기 몸을 들어올리지 못하는 것처럼
단순한 본질과 단순한 지혜
어려움에 처했을 때는 더욱 사랑하라
사람은 행복해야 한다
그대가 인생을 사는 데에
삶의 비밀을 알고 있는 사람
진정으로 부유해지려면
물질에서 영혼으로 시선을 돌려라
말은 힘이 세다
학문은 우리를 잘못된 길로 인도하기도 한다
세상 사람들이 어떻게 사는지 보라
등짐을 지고 걷는 일이 쉬운가요?
왜 부자가 되려 하는가?
하루하루가 버겁다
참다운 행복이란 무엇인가?
사고하는 방식에 따라 모든 것들이 설명된다
참으로 이상한 일이다
우리는 거짓보다 진실을 좋아한다
그 사람 앞에서 비난하라
친구들과의 화합 속에서
세상에 대해 묻는 아이들에게
행복 속에 살라

Author
톨스토이,이경아
러시아의 소설가이자 시인이자 사상가. 도스토옙스키와 함께 19세기 러시아 문학을 대표하는 대문호로 손꼽힌다. 1828년 9월 9일, 러시아 남부의 야스나야 폴랴나에서 톨스토이 백작 집안의 넷째 아들로 태어났다. 2살과 9살 때 각각 모친과 부친을 여의고, 이후 고모를 후견인으로 성장했다. 어린 시절에는 집에서 교육을 받았고, 16세가 되던 1844년에 까잔 대학교 동양어대학 아랍·터키어과에 입학하였으나 사교계를 출입하며 방탕한 생활을 일삼다 곧 자퇴해 1847년 고향으로 돌아갔다. 진보적인 지주로서 새로운 농업 경영과 농노 계몽을 위해 일하려 했으나 실패로 끝나고 이후 3년간 방탕하게 생활했다. 1851년 맏형이 있는 카프카스에서 군인으로 복무했다.

1852년 문학지 [동시대인]에 처녀작인 자전소설 중편 「유년 시절」를 발표하여 투르게네프로부터 문학성을 인정받기도 하였다. 1853년에는 『소년시절』을, 1856년에는 『청년시절』을 썼다. 1853년 크림전쟁이 발발하여 전쟁에 참여했다. 당시 전쟁 경험은 훗날 그의 비폭력주의에 영향을 끼쳤다. 크림 전쟁에 참전한 경험을 토대로 『세바스토폴 이야기』(1855~56)를 써서 작가로서의 명성을 확고히 했다.

이듬해 잡지 『소브레멘니크』에 익명으로 연재를 시작하면서 작가로서 첫발을 내디뎠다. 작품 집필과 함께 농업 경영에 힘을 쏟는 한편, 농민의 열악한 교육 상태에 관심을 갖게 되어 학교를 세우고 1861년 교육 잡지 [야스나야 폴랴나]를 간행했다. 1862년 결혼한 후 문학에 전념해 『전쟁과 평화』, 『안나 카레니나』 등 대작을 집필, 작가로서의 명성을 누렸다. 1859년에 고향인 야스나야 뽈랴나에 농민 학교를 세우는 등 농촌 계몽에도 지속적인 관심을 기울였으며 농민학교를 세웠다.

34세가 되던 1862년에 소피야 안드레예브나와 결혼하여 슬하에 모두 13명의 자녀를 두었다. 볼가 스텝 지역에 있는 영지를 경영하며 농민들을 위한 교육 사업을 계속해 나갔다. 1869년 5년에 걸쳐 집필한 대표작 『전쟁과 평화』를 발표하면서 세계적인 작가로서의 명성을 얻었다. 1873년에는 『안나 카레니나』의 집필을 시작해 1877년에 완성했으며, 1880년대는 톨스토이가 가장 왕성한 창작활동을 했던 시기로 알려져 있는데,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크로이체르 소나타』『이반 일리이치의 죽음』 등의 작품이 쓰인 시기도 바로 이때이다.

그러나 이 무렵 삶에 대한 회의에 시달리며 정신적 위기를 겪었다. 그리하여 1880년 이후 원시 기독교 사상에 몰두하면서 사유재산 제도와 러시아 정교에 비판을 가하고 『교의신학 비판』, 『고백』 등을 통해 ‘톨스토이즘’이라 불리는 자신의 사상을 체계화했다. 사십대 후반 정신적 위기를 겪으며 삶과 죽음 그리고 종교 문제를 천착하면서 작품세계의 분수령이 되는 『참회록』(1879)을 내놓았고, 정치, 사회, 종교, 사상적 문제들에 관해 계속해서 저술하고 활동했다.

또한 술과 담배를 끊고 손수 밭일을 하는 등 금욕적인 생활을 지향하며, 빈민 구제 활동도 했다. 1899년 종교적인 전향 이후의 대표작 『부활』을 완성했고, 중편 『이반 일리치의 죽음』(1886)과 『크로이처 소나타』(1889)를 통해 깊은 문학적 성취를 보여주었으며, 말년까지도 『예술이란 무엇인가』(1898)와 『부활』(1899) 등을 발표하며 세계적인 작가로서의 면모를 과시했다. 수익은 당국의 탄압을 받던 두호보르 교도를 캐나다로 이주시키는 데 쓰였다. 그 자신은 백작의 지위를 가진 귀족이었으나, 『바보 이반과 그의 두 형제 이야기』,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사람에게 땅이 많이 필요한가?』, 『세 가지 질문』 등의 집필을 통해 러시아 귀족들이 너무 많은 재산을 갖고 있기 때문에 대다수의 민중들이 가난하게 살고 있음을 비판하는 문학 활동을 하여, 러시아 귀족들의 압력으로 『참회록』과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가?』의 출판 금지를 당했다.

하지만 독자들은 필사본이나 등사본으로 책을 만들어서 몰래 읽었고, 유럽, 미국, 아시아에 있는 출판사들이 그의 작품을 출판하여 외국에서는 그의 작품이 유명한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극단적인 도덕가가 되어 1880년 이후에 낸 일련의 저술에서 국가와 교회를 부정하고, 육체의 나약함과 사유재산을 비난하는 의견을 발표했다. 저작물에서 개인의 이득을 취하는 것이 부도덕하다는 생각으로 자신의 저작권을 포기하는 선언을 했고(1891), 1899년 종교적인 전향 이후의 대표작 『부활』을 완성했다. 이 작품은 러시아에서 출간되자마자 독일, 영국, 프랑스 등에서도 번역되었으며, 출판으로 인한 수익은 당국의 탄압을 받던 두호보르 교도를 캐나다로 이주시키는 데 쓰였다.

1901년 『부활』에 러시아 정교를 모독하는 표현이 들어 있다는 이유로 종무원(宗務院)으로부터 파문을 당했다. 노년에 접어들어서도 왕성한 집필 활동을 통해 『이반 일리이치의 죽음』(1886), 『크로이처 소나타』(1889), 『예술이란 무엇인가』(1897), 『부활』(1899) 등을 계속해서 발표했다. 사유재산과 저작권 포기 문제로 시작된 아내와의 불화 등으로 고민하던 중 1910년 집을 떠나 폐렴을 앓다가 현재 톨스토이 역이 되어 있는 아스타포보 역장의 관사에서 82세의 나이로 영면했다. 임종 때 아내를 보기를 거부한 톨스토이의 마지막 말은 “진리를…… 나는 영원히 사랑한다…… 왜 사람들은……”이었다.

귀족의 아들이었으나 왜곡된 사상과 이질적인 현실에 회의를 느껴 실천하는 지식인의 삶을 추구했다. 그는 고귀한 인생 성찰을 통해 러시아 문학과 정치, 종교관에 놀라운 영향을 끼쳤고, 인간 내면과 삶의 참 진리를 담은 수많은 걸작을 남겨 지금까지도 러시아를 넘어 세계적인 대문호로 존경받고 있다. 인간과 진리를 사랑했던 대문호 톨스토이. 그는 세계 문학의 역사를 바꾼 걸작들을 남긴 소설가이자 인도 마하트마 간디의 비폭력 사상에까지 영향을 준 ‘무소유, 무저항’의 철학을 남긴 사상가였다. 톨스토이의 작품만이 지닌 문체와 서사적 힘은 지금 보아도 여전하다. 특히 소설 속 아름다운 풍경 묘사와 이야기의 서사성, 섬세한 인물 심리 묘사 등이 돋보이며, 오늘날까지도 19세기 러시아 문학을 대표하는 세계적 문호로 인정받고 있다.
러시아의 소설가이자 시인이자 사상가. 도스토옙스키와 함께 19세기 러시아 문학을 대표하는 대문호로 손꼽힌다. 1828년 9월 9일, 러시아 남부의 야스나야 폴랴나에서 톨스토이 백작 집안의 넷째 아들로 태어났다. 2살과 9살 때 각각 모친과 부친을 여의고, 이후 고모를 후견인으로 성장했다. 어린 시절에는 집에서 교육을 받았고, 16세가 되던 1844년에 까잔 대학교 동양어대학 아랍·터키어과에 입학하였으나 사교계를 출입하며 방탕한 생활을 일삼다 곧 자퇴해 1847년 고향으로 돌아갔다. 진보적인 지주로서 새로운 농업 경영과 농노 계몽을 위해 일하려 했으나 실패로 끝나고 이후 3년간 방탕하게 생활했다. 1851년 맏형이 있는 카프카스에서 군인으로 복무했다.

1852년 문학지 [동시대인]에 처녀작인 자전소설 중편 「유년 시절」를 발표하여 투르게네프로부터 문학성을 인정받기도 하였다. 1853년에는 『소년시절』을, 1856년에는 『청년시절』을 썼다. 1853년 크림전쟁이 발발하여 전쟁에 참여했다. 당시 전쟁 경험은 훗날 그의 비폭력주의에 영향을 끼쳤다. 크림 전쟁에 참전한 경험을 토대로 『세바스토폴 이야기』(1855~56)를 써서 작가로서의 명성을 확고히 했다.

이듬해 잡지 『소브레멘니크』에 익명으로 연재를 시작하면서 작가로서 첫발을 내디뎠다. 작품 집필과 함께 농업 경영에 힘을 쏟는 한편, 농민의 열악한 교육 상태에 관심을 갖게 되어 학교를 세우고 1861년 교육 잡지 [야스나야 폴랴나]를 간행했다. 1862년 결혼한 후 문학에 전념해 『전쟁과 평화』, 『안나 카레니나』 등 대작을 집필, 작가로서의 명성을 누렸다. 1859년에 고향인 야스나야 뽈랴나에 농민 학교를 세우는 등 농촌 계몽에도 지속적인 관심을 기울였으며 농민학교를 세웠다.

34세가 되던 1862년에 소피야 안드레예브나와 결혼하여 슬하에 모두 13명의 자녀를 두었다. 볼가 스텝 지역에 있는 영지를 경영하며 농민들을 위한 교육 사업을 계속해 나갔다. 1869년 5년에 걸쳐 집필한 대표작 『전쟁과 평화』를 발표하면서 세계적인 작가로서의 명성을 얻었다. 1873년에는 『안나 카레니나』의 집필을 시작해 1877년에 완성했으며, 1880년대는 톨스토이가 가장 왕성한 창작활동을 했던 시기로 알려져 있는데,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크로이체르 소나타』『이반 일리이치의 죽음』 등의 작품이 쓰인 시기도 바로 이때이다.

그러나 이 무렵 삶에 대한 회의에 시달리며 정신적 위기를 겪었다. 그리하여 1880년 이후 원시 기독교 사상에 몰두하면서 사유재산 제도와 러시아 정교에 비판을 가하고 『교의신학 비판』, 『고백』 등을 통해 ‘톨스토이즘’이라 불리는 자신의 사상을 체계화했다. 사십대 후반 정신적 위기를 겪으며 삶과 죽음 그리고 종교 문제를 천착하면서 작품세계의 분수령이 되는 『참회록』(1879)을 내놓았고, 정치, 사회, 종교, 사상적 문제들에 관해 계속해서 저술하고 활동했다.

또한 술과 담배를 끊고 손수 밭일을 하는 등 금욕적인 생활을 지향하며, 빈민 구제 활동도 했다. 1899년 종교적인 전향 이후의 대표작 『부활』을 완성했고, 중편 『이반 일리치의 죽음』(1886)과 『크로이처 소나타』(1889)를 통해 깊은 문학적 성취를 보여주었으며, 말년까지도 『예술이란 무엇인가』(1898)와 『부활』(1899) 등을 발표하며 세계적인 작가로서의 면모를 과시했다. 수익은 당국의 탄압을 받던 두호보르 교도를 캐나다로 이주시키는 데 쓰였다. 그 자신은 백작의 지위를 가진 귀족이었으나, 『바보 이반과 그의 두 형제 이야기』,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사람에게 땅이 많이 필요한가?』, 『세 가지 질문』 등의 집필을 통해 러시아 귀족들이 너무 많은 재산을 갖고 있기 때문에 대다수의 민중들이 가난하게 살고 있음을 비판하는 문학 활동을 하여, 러시아 귀족들의 압력으로 『참회록』과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가?』의 출판 금지를 당했다.

하지만 독자들은 필사본이나 등사본으로 책을 만들어서 몰래 읽었고, 유럽, 미국, 아시아에 있는 출판사들이 그의 작품을 출판하여 외국에서는 그의 작품이 유명한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극단적인 도덕가가 되어 1880년 이후에 낸 일련의 저술에서 국가와 교회를 부정하고, 육체의 나약함과 사유재산을 비난하는 의견을 발표했다. 저작물에서 개인의 이득을 취하는 것이 부도덕하다는 생각으로 자신의 저작권을 포기하는 선언을 했고(1891), 1899년 종교적인 전향 이후의 대표작 『부활』을 완성했다. 이 작품은 러시아에서 출간되자마자 독일, 영국, 프랑스 등에서도 번역되었으며, 출판으로 인한 수익은 당국의 탄압을 받던 두호보르 교도를 캐나다로 이주시키는 데 쓰였다.

1901년 『부활』에 러시아 정교를 모독하는 표현이 들어 있다는 이유로 종무원(宗務院)으로부터 파문을 당했다. 노년에 접어들어서도 왕성한 집필 활동을 통해 『이반 일리이치의 죽음』(1886), 『크로이처 소나타』(1889), 『예술이란 무엇인가』(1897), 『부활』(1899) 등을 계속해서 발표했다. 사유재산과 저작권 포기 문제로 시작된 아내와의 불화 등으로 고민하던 중 1910년 집을 떠나 폐렴을 앓다가 현재 톨스토이 역이 되어 있는 아스타포보 역장의 관사에서 82세의 나이로 영면했다. 임종 때 아내를 보기를 거부한 톨스토이의 마지막 말은 “진리를…… 나는 영원히 사랑한다…… 왜 사람들은……”이었다.

귀족의 아들이었으나 왜곡된 사상과 이질적인 현실에 회의를 느껴 실천하는 지식인의 삶을 추구했다. 그는 고귀한 인생 성찰을 통해 러시아 문학과 정치, 종교관에 놀라운 영향을 끼쳤고, 인간 내면과 삶의 참 진리를 담은 수많은 걸작을 남겨 지금까지도 러시아를 넘어 세계적인 대문호로 존경받고 있다. 인간과 진리를 사랑했던 대문호 톨스토이. 그는 세계 문학의 역사를 바꾼 걸작들을 남긴 소설가이자 인도 마하트마 간디의 비폭력 사상에까지 영향을 준 ‘무소유, 무저항’의 철학을 남긴 사상가였다. 톨스토이의 작품만이 지닌 문체와 서사적 힘은 지금 보아도 여전하다. 특히 소설 속 아름다운 풍경 묘사와 이야기의 서사성, 섬세한 인물 심리 묘사 등이 돋보이며, 오늘날까지도 19세기 러시아 문학을 대표하는 세계적 문호로 인정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