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98년에 출판된 이 작품은 ''실용적 관점에서의 인간학''과 함께 칸트의 생전에 그 스스로 출간한 마지막 저술이다. 이 책의 제목 ''학부들의 논쟁''이 시사하는 것은 대학에 설립된 학부들의 학문과 정부와 사회에 미치는 그 학문들의 영향과 권한에 대한 논쟁이다.
본래 이 작품은 칸트가 순수한 종교론과 경험적 계시 종교론의 충돌로서의 신학부와의 논쟁만을 기획하였던 것이지만, 그 당시의 ‘영혼의 장소’에 대한 학문적 물음에 대한 판단가능성과 관련하여 해부학적'심리학적 분과인 의학부와 심리학적'형이상학적 분과인 철학부 사이의 충돌의 문제와 나아가 ''속설에 대하여''에서 다루었던 이론과 실천의 관계에서의 철학부와 법학부의 논쟁, 즉 순수한 법론과 경험적 정치의 충돌에 대한 문제로까지 확대 구성하게 된 것이다. 이 세 부분은 학문의 선험적 원리와 경험적 원리 간의 충돌을 다룬다는 점에서 하나의 체계 안에 놓일 수 있다.
Contents
일러두기
헌사
머리말
제1편 신학부와 철학부의 논쟁
들어가는 말
학부들 일반의 분류
Ⅰ. 학부들의 관계에 관하여
제1절 상위 학부들의 개념과 분류
A. 신학부의 고유성
B. 법학부의 고유성
C. 의학부의 고유성
제2절 하위 학부의 개념과 분류
제3절 하위 학부와 상위 학부들의 위법적인 논쟁에 관하여
제4절 하위 학부와 상위 학부들의 합법적인 논쟁에 관하여
결론
Ⅱ. 부록: 신학부와 철학부 사이의 논쟁 사례를 통한 학부들의 논쟁의 해명
Ⅰ. 논쟁의 재료
Ⅱ. 논쟁의 조정을 위한 성서해석의 철학적 원칙들
Ⅲ. 성서해석의 원칙들과 관련한 반론들과 답변
-일반적 주해. 교파들에 관하여
-평화.협정과 학부들의 논쟁의 조정
-보론: 이 성스러운 책의 실천적 이용과 추정적인 그 지속의 시간에 대한 성서적.역사적 물음들에 대하여
-보론: 종교에서의 순수 신비론에 관하여
제2편 법학부와 철학부의 논쟁
다시 제기된 물음: 인간종은 더 나은 상태로
지속적으로 진보하고 있는가?
1. 여기서 알고자 하는 것은 무엇인가?
2. 어떻게 그것을 알 수 있는가?
3. 미래에 대해 미리 알고자 하는 것에 관한 개념의 구분
a. 인간의 역사의 폭력주의적 표상방식에 관하여
b. 인간의 역사의 행복주의적 표상방식에 대하여
c. 인간의 역사의 사전규정을 위한 인간종의 압데리티즘의 가설에 관하여
4. 진보의 과제는 직접적으로 경험을 통해 해결될 수 없다
5. 그렇지만 점치는 인간종의 역사는 어떤 한 경험에 연결되어 있을 수밖에 없다
6. 인간종의 이러한 도덕적 경향을 증명하는 우리 시대의 한 사건에 관하여
7. 점치는 인류의 역사
8. 최선의 세계로의 진보를 겨냥한 준칙들의 그 공중성과 관련한 난점에 관하여
9. 더 나은 상태로의 진보는 인간종에게 어떤 수확을 가져올 것인가?
10. 더 나은 상태로의 진보는 오로지 어떤 질서 속에서 기대될 수 있는가?
맺음말
제3편 의학부와 철학부의 논쟁
순전히 결단을 통해 마음의 병적인 감정들을 제어하는 마음의 권능에 관하여
궁정고문이자 교수 후펠란트 씨에 대한 답서
양생법의 원칙들
1. 질병불안증에 관하여
2. 수면에 관하여
3. 먹고 마시는 것에 관하여
4. 부적절한 사유의 시간으로 인한 병적인 감정에 관하여
5. 호흡에서 결단을 통한 병적인 발작들의 개선과 방지에 관하여
6. 다문 입술로 호흡하는 습관의 귀결에 관하여
맺음말
후기
옮긴이 후기
마이너 판 편집자 미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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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thor
임마누엘 칸트,오진석
철학자 칸트는 63세에 이르러 집을 소유할 수 있었다. 그때는 이미 결혼 적령기를 한참이나 지난 나이였다. 쉰일곱 살에 첫 번째 위대한 저작 <순수이성비판1781>을 출간했다. 십 년을 넘게 시간강사 생활을 이어가다 마흔여섯 살이 돼서야 자기 고향에 있는 쾨니히스베르크 대학의 철학과 교수가 될 수 있었다. 세상에 자신을 알아주는 이가 드물고 남들보다 성과가 없는 고단한 인생이라면 뒤늦게 빛을 본 칸트의 인생을 떠올려 봄직하다. 평범한 서민의 아들이었으며 젊어서 두각을 나타낸 인물도 아니었고 부와 명예를 위해 활발하게 활동한 사람도 아니었다. 그러나 칸트는 늦은 나이에 빛을 내기 시작한 천재였다. 인류 스스로 과감하게 생각하라는 메시지를 던진 계몽주의 시대를 대표하는 철학자였다. 또한 그 자신이 인류가 현대의 정신세계로 진입할 수 있는 커다란 출입문이었다. <도덕 형이상학의 기초 1785>, <실천이성비판1788>, <판단력 비판 1790>, <영원한 평화를 위하여1795>, <도덕 형이상학1797> 등을 썼다.
철학자 칸트는 63세에 이르러 집을 소유할 수 있었다. 그때는 이미 결혼 적령기를 한참이나 지난 나이였다. 쉰일곱 살에 첫 번째 위대한 저작 <순수이성비판1781>을 출간했다. 십 년을 넘게 시간강사 생활을 이어가다 마흔여섯 살이 돼서야 자기 고향에 있는 쾨니히스베르크 대학의 철학과 교수가 될 수 있었다. 세상에 자신을 알아주는 이가 드물고 남들보다 성과가 없는 고단한 인생이라면 뒤늦게 빛을 본 칸트의 인생을 떠올려 봄직하다. 평범한 서민의 아들이었으며 젊어서 두각을 나타낸 인물도 아니었고 부와 명예를 위해 활발하게 활동한 사람도 아니었다. 그러나 칸트는 늦은 나이에 빛을 내기 시작한 천재였다. 인류 스스로 과감하게 생각하라는 메시지를 던진 계몽주의 시대를 대표하는 철학자였다. 또한 그 자신이 인류가 현대의 정신세계로 진입할 수 있는 커다란 출입문이었다. <도덕 형이상학의 기초 1785>, <실천이성비판1788>, <판단력 비판 1790>, <영원한 평화를 위하여1795>, <도덕 형이상학1797> 등을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