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리아 전기

$12.96
SKU
9788991167575
+ Wish
[Free shipping over $100]

Standard Shipping estimated by Mon 06/3 - Fri 06/7 (주문일로부 10-14 영업일)

Express Shipping estimated by Wed 05/29 - Fri 05/31 (주문일로부 7-9 영업일)

* 안내되는 배송 완료 예상일은 유통사/배송사의 상황에 따라 예고 없이 변동될 수 있습니다.
Publication Date 2006/02/05
Pages/Weight/Size 152*223*20mm
ISBN 9788991167575
Categories 역사
Description
갈리아 지역에 대한 카이사르의 정복 사업을 담고 있는 [갈리아 전기]를 소개하는 책. 로마군의 갈리아 원정의 기록인 [갈리아 전기]는 카이사르가 직접 체험하고 지휘했던 전투의 상황을 유려한 필체로 생생하게 그려낸 것이다. 카이사르가 조국을 침략하던 갈리아에 맞서 결국 조국의 영광까지 이룩한 과정을 객관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이 책은 단순한 카이사르 개인의 기록이 아닌, 그 시대의 로마와 갈리아의 운명을 결정지은 8년이라는 시간 동안에 벌어진 사건들과 그 의미에 대해 쉽게 깨달을 수 있도록 안내한다.
Contents
이 책을 읽는 분에게

제1권 (B.C. 58년)
1. 헬베티 족과의 전쟁
2. 게르마니 인과의 전쟁

제2권 (B.C. 57년)
1. 벨가이 인과의 전쟁
2. 해변에 살던 여러 부족의 복속

제3권 (B.C. 57년~56년)
1. 알페스 산지에 살던 여러 부족의 토벌
2. 해변에 살던 여러 부족과의 전쟁
3. 아퀴타니 인과의 전쟁
4. 북쪽에 위치한 여러 부족의 토벌

제4권 (B.C. 55년)
1. 게르마니 인과의 전쟁
2. 브리타니 인과의 전쟁
3. 북쪽에 위치한 여러 부족의 토벌

제5권 (B.C. 54년)
1. 브리타니 인과의 전쟁
2. 북쪽에 위치한 여러 부족의 모반

제6권 (B.C. 53년)
1. 북쪽에 위치한 여러 부족의 토벌
2. 갈리아의 사정
3. 게르마니아의 사정
4. 에부로네스 족의 반란

제7권 (B.C. 52년)
1. 갈리 인 전체와의 전쟁

제8권 (B.C. 51년)
아울루스 히르티우스의 서문
아울루스 히르티우스의 기록

편집자의 말 - 위기를 극복하면 위대해진다

카이사르 연보
카이사르 시대의 로마군대의 모습
로마군단(Rome Legion)의 편성 및 전술
로마군단(Rome Legion)의 전투대형
레누스(라인) 강에 건설된 다리
부족명 색인
인명 색인
지명 색인
Author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박광순
고대 로마 공화정 말기의 군인·정치가. BC 100년 7월 13일에 태어났다. 7월을 가리키는 영어의 July는 카이사르의 이름에서 유래되었다. 민중파인 마리우스와 인척 관계로 원로원파인 술라가 권력을 잡고 있을 때는 민중파인 아내와의 이혼 명령을 거부하고 여러 곳을 떠돌며 숨어 지냈다. BC 78년 술라가 죽은 뒤 로마로 귀환, 정치생활을 시작하였으며 BC 69년에는 재무관, BC 65년 안찰관(按察官)을 거쳐 BC 63년 종교상 최고직인 종신 대신관이 되었다. BC 60년에는 폼페이우스 및 크라수스와 동맹을 맺고 제1차 삼두정치를 시작하였다. BC 58년∼BC 50년, 속주 갈리아의 장관으로서 갈리아 전쟁을 수행, 브리튼과 게르만 족의 영지까지 아우르는 광대한 영토를 대부분 평정하였다.

BC 53년 삼두체제의 한 중심인 크라수스가 동방원정에서 전사함으로써 원로원 보수파와 갈등을 빚기 시작했으며 BC 51년 원로원이 카이사르의 로마 소환과 군대해산을 결의하자, BC 49년 1월에 “주사위는 던져졌다.”는 유명한 말과 함께 갈리아와 이탈리아 국경인 루비콘 강을 건너 로마로 진격함으로써 내전을 시작하였다. BC 45년 3월에는 폼페이우스의 아들까지 진압함으로써 마침내 5년간의 내전을 종결시켰다. BC 46년에 10년 임기의 독재관이 되었고, 곧이어 BC 44년에는 종신 독재관이 되었다. 율리우스력을 제정하고 노예에게 관직을 허용함으로써 로마 시민권을 대폭 확대하는 한편 대규모 토목사업을 벌여 로마를 정비하는 등 개혁정책을 펼쳤다. 그러나 지나친 권력의 집중을 견제하고자 했던 원로원 공화파와 공화정 지지자들에 의해 BC 44년 원로원에서 암살되었다. 그의 나이 56세 때였다.
고대 로마 공화정 말기의 군인·정치가. BC 100년 7월 13일에 태어났다. 7월을 가리키는 영어의 July는 카이사르의 이름에서 유래되었다. 민중파인 마리우스와 인척 관계로 원로원파인 술라가 권력을 잡고 있을 때는 민중파인 아내와의 이혼 명령을 거부하고 여러 곳을 떠돌며 숨어 지냈다. BC 78년 술라가 죽은 뒤 로마로 귀환, 정치생활을 시작하였으며 BC 69년에는 재무관, BC 65년 안찰관(按察官)을 거쳐 BC 63년 종교상 최고직인 종신 대신관이 되었다. BC 60년에는 폼페이우스 및 크라수스와 동맹을 맺고 제1차 삼두정치를 시작하였다. BC 58년∼BC 50년, 속주 갈리아의 장관으로서 갈리아 전쟁을 수행, 브리튼과 게르만 족의 영지까지 아우르는 광대한 영토를 대부분 평정하였다.

BC 53년 삼두체제의 한 중심인 크라수스가 동방원정에서 전사함으로써 원로원 보수파와 갈등을 빚기 시작했으며 BC 51년 원로원이 카이사르의 로마 소환과 군대해산을 결의하자, BC 49년 1월에 “주사위는 던져졌다.”는 유명한 말과 함께 갈리아와 이탈리아 국경인 루비콘 강을 건너 로마로 진격함으로써 내전을 시작하였다. BC 45년 3월에는 폼페이우스의 아들까지 진압함으로써 마침내 5년간의 내전을 종결시켰다. BC 46년에 10년 임기의 독재관이 되었고, 곧이어 BC 44년에는 종신 독재관이 되었다. 율리우스력을 제정하고 노예에게 관직을 허용함으로써 로마 시민권을 대폭 확대하는 한편 대규모 토목사업을 벌여 로마를 정비하는 등 개혁정책을 펼쳤다. 그러나 지나친 권력의 집중을 견제하고자 했던 원로원 공화파와 공화정 지지자들에 의해 BC 44년 원로원에서 암살되었다. 그의 나이 56세 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