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자의 유머

임어당 산문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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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7889899389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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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blication Date 2010/02/15
Pages/Weight/Size 150*215*30mm
ISBN 9788989938996
Categories 인문 > 동양철학
Description
19세기 말에 태어나 중국 대륙이 서구 열강과 일제의 침략으로 신음하던 1920년대에 「논어」라는 잡지를 주도적으로 창간하여 서구의 사조를 중국에 소개하는 데 앞장섰으며, 유머 문학을 널리 알리고자 부단히 노력한 인물이었던 임어당이 발견한 공자의 '유머'를 엮었다. 우리에겐 덧없이 고매한 사상가의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 공자에게서 유머를 발견한다는 것은 언뜻 어울리지 않을 것 처럼 느껴지는 것이 현실이다. 하지만 임어당은 이 두가지를 절묘하게 연결함으로써 유머를 매개로 인간 공자를 탐구해 나간다.

그동안 중국과 우리나라에서 보두 공자는 숭배의 대상이었다. 후대 유학자들이 만들어 놓은 그의 모습은 무결점인 인간으로 거의 신격화 되어 있다. 또한 성리학이 지배계급의 사상으로 자리잡으면서 우리나라에서는 그를 '성인'으로 받들어 미화시키기까지 하였다. 하지만 저자 임어당은 이러한 공자의 모습을 뒤집는다. 공자는 인간미가 매우 풍부한 사람이었으며 아주 자연스럽고 유머러스하며 행동 하나하나가 인간 본연의 모습에 매우 충실했던 인물로 임어당은 평하고 있다.

이 책은 임어당의 산문중에서 '공자'와 '유머'관련 부분을 뽑아 출간한 것으로 임어당이 역설한 공자의 인간미가 그대로 뭍어난다. 임어당은 공자의 대표저서인 『논어』를 여러차례, 여러 사례들을 분석함으로써 유머속에서도 그 이치를 잃지 않은 도학자 '공자'를 소개하며 독자들에게 새로운 시각을 안겨주고 있다.
Contents
Part. 1
I. 유머(幽?)을 제창한 초기 문장 두 편
(1). 산문 번역과 아울러 유머를 제창함
(2). 유머 잡담
2. 유머?아이러니?골계?풍자?외설

Part. 2
3. 공자의 유머
4. 공자를 생각하며
5. 다시 공자의 정(情)을 말한다
6. 사디즘과 공자 숭배
7. 공자가 南子를 만났을 때
8. 공자의 일생
9. 공자가 살던 시절

Part. 3
10. 유머 감각
11. 유머론
12. 풍자에서 유머로 _노신
13. 유머에서 성실로 _노신

Part. 4
14. 임어당의 문학 생애
15. 임어당의 주요 저작 목록
16. 임어당의 생애 및 작품 연보

_옮긴이의 말
_옮긴이의 주
Author
임어당,김영수
1895~1976의 인물로 소설가, 수필가, 언어학자였다. 복건성 출생. 기독교 집안에서 태어나 이상주의자이며 낙천주의자였던 아버지 영향을 많이 받고 자랐다. 영어에 관심이 많아 상해 성요한대학에서 언어학을 공부했다. 북경 청화학교 영어교사로 3년을 마치고 미국 하버드대학 비교문화연구소에서 석사학위를 받았으나 지원금이 끊기는 바람에 프랑스로 건너가 중국인 이주노동자들에게 글을 가르쳤다. 그 후 독일 예나대학과 라이프치히대학에서 언어학을 전공하고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북경대학 교수로 초빙되어 문학비평과 음운학을 가르치면서 왕성한 집필활동을 시작했다.

1924년에 노신(魯迅)을 만나 그에게 많은 감화를 받는다. 군벌통치의 폐해를 고발하는 노신의 사상에 호응하면서 둘은 모든 군벌의 지명수배자가 되어 북경을 떠나 복건성 하문대학으로 자리를 옮겼다. 노신과 교류한 이 시기는 임어당의 문학 생애에 있어서 가장 진취적인 시기였다. 1930년대부터 중국어 외에도 영어로 글을 쓰고 발표했다. 1936년 뉴욕으로 갔고, 외국 독자들에게 중국을 소개하는 《생활의 예술》(우리에게는 《생활의 발견》으로 잘 알려져 있다)이 그 다음해에 미국, 영국, 캐나다에서 출간되었다. 이후에도 대외에 중국을 알리는 작업을 계속하여 중국 고전을 영어로 번역했다. 1948년 유네스코 예술부장, 1954년 싱가포르 난양대학 총장을 지냈다. 1965년 이후 대만에 정착하였고 1968년, 1970년 서울에서 열린 국제대학총장협회 회의와 제37차 국제펜클럽대회에 참가하여 강연을 하기도 하였다. 1976년 82세의 나이로 홍콩에서 생을 마쳤다. 작품으로는《폭풍 속의 나뭇잎》,《붉은 대문》등이 있다.
1895~1976의 인물로 소설가, 수필가, 언어학자였다. 복건성 출생. 기독교 집안에서 태어나 이상주의자이며 낙천주의자였던 아버지 영향을 많이 받고 자랐다. 영어에 관심이 많아 상해 성요한대학에서 언어학을 공부했다. 북경 청화학교 영어교사로 3년을 마치고 미국 하버드대학 비교문화연구소에서 석사학위를 받았으나 지원금이 끊기는 바람에 프랑스로 건너가 중국인 이주노동자들에게 글을 가르쳤다. 그 후 독일 예나대학과 라이프치히대학에서 언어학을 전공하고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북경대학 교수로 초빙되어 문학비평과 음운학을 가르치면서 왕성한 집필활동을 시작했다.

1924년에 노신(魯迅)을 만나 그에게 많은 감화를 받는다. 군벌통치의 폐해를 고발하는 노신의 사상에 호응하면서 둘은 모든 군벌의 지명수배자가 되어 북경을 떠나 복건성 하문대학으로 자리를 옮겼다. 노신과 교류한 이 시기는 임어당의 문학 생애에 있어서 가장 진취적인 시기였다. 1930년대부터 중국어 외에도 영어로 글을 쓰고 발표했다. 1936년 뉴욕으로 갔고, 외국 독자들에게 중국을 소개하는 《생활의 예술》(우리에게는 《생활의 발견》으로 잘 알려져 있다)이 그 다음해에 미국, 영국, 캐나다에서 출간되었다. 이후에도 대외에 중국을 알리는 작업을 계속하여 중국 고전을 영어로 번역했다. 1948년 유네스코 예술부장, 1954년 싱가포르 난양대학 총장을 지냈다. 1965년 이후 대만에 정착하였고 1968년, 1970년 서울에서 열린 국제대학총장협회 회의와 제37차 국제펜클럽대회에 참가하여 강연을 하기도 하였다. 1976년 82세의 나이로 홍콩에서 생을 마쳤다. 작품으로는《폭풍 속의 나뭇잎》,《붉은 대문》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