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주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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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blication Date 2009/03/22
Pages/Weight/Size 140*205*20mm
ISBN 9788989354994
Categories 사회 정치 > 정치/외교
Description
근대 정치학의 초석 - 군주론

목적만 정당하다면 수단은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비윤리적인 정치적 사고를 제창한 것으로 인식되어 오랫동안 비난의 표적이 되어온 군주론을 새롭게 읽고 있는 책이다. 근대 정치학의 초석으로 재평가 받고 있는 이 책은 정치와 종교의 분리와 당대의 권력 현실을 체계적이고 객관적으로 분석해낸 것이 특징이다.

이 책은 특유의 딱딱한 문장을 쉬운 우리말로 번역하여 독자가 편안하게 읽을 수 있도록 하였으며, 한국 외대 한성철 이탈리아어과 교수가 감수를 맡아 내용의 정확성을 기했다. 또한 이 책의 주요 인물, 사건 현장, 지도 등의 그림을 컬러 화보로 수록하여, 당시의 현장에 대한 독자의 이해도를 높이고 있다.
Contents
옮긴이의 말
니콜로 마키아벨리가 로렌초 데 메디치 전하께 올리는 글

1장. 군주국의 종류의 성립과정
2장. 세습 군주국
3장. 복합 군주국
4장.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정복했던 다리우스 왕국은 왜 대왕이 죽은 후에도 반란을 일으키지 않았는가
5장. 정복 이전에 나름의 고유한 법에 따라 통치된 도시나 군주국을 다스리는 방법
6장. 군주 본인의 무력과 역량으로 획득한 신생 군주국
7장. 타인의 무력과 행운으로 획득한 신생 군주국
8장. 사악한 방법을 동원하여 군주가 된 인물들
9장. 시민형 군주국
10장. 군주국의 국력 평가 방법
11장. 교회형 군주국
12장. 군대의 다양한 종류와 용병
13장. 원군, 혼성군, 자국군에 관하여
14장. 군주의 군사 경영
15장. 군주가 칭송과 비난을 받는 이유
16장. 관대함과 인색함
17장. 잔인함과 자비로움, 사랑받는 것과 두려움의 대상이 되는 것 가운데 어느 쪽이 더 나은가
18장. 군주는 어디까지 약속을 지켜야 하는가
19장. 경멸과 미움을 피하는 방법에 관하여
20장. 군주가 성벽을 쌓는 따위의 방어책은 과연 이로운가, 해로운가
21장. 명성을 얻기 위해 군주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22장. 군주의 측근들
23장. 간신을 피하는 방법
24장. 이탈리아의 군주들은 왜 나라를 잃게 되었는가
25장. 인간사에 미치는 운명의 힘과 운명에 대처하는 방법
26장. 야만족의 속박에서 이탈리아를 해방시키기 위한 권고

『군주론』 해설
부록: 관련 인물 및 가문 찾아보기
니콜로 마키아벨리 연보와 시대적 배경
Author
마키아벨리,변용란,한성철
르네상스 시대 피렌체 공화국의 외교관이자 탁월한 정치이론가. 이탈리아(피렌체)의 관료이자 외교관이자 군사 전략가였으나, 말년의 저술로 정치사상가의 반열에 오른 마키아벨리는 피렌체에서 몰락한 귀족의 아들로 태어났다. 어린 시절의 기록은 많지 않은데, 변변치 않은 교육 환경에서 홀로 역사와 정치에 관한 공부를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청년 시절에는 말직으로 근무하다가 서른 살이 되어서야 80인회의 사무국의 서기에 임명되었고, 능력을 인정받았는지 곧 10인군사위원회의 사무국장과 서기를 맡았다.

1492년 피렌체가 ‘위대한 로렌초(로렌초 일 마니피코)’의 사망으로 통치력 부재 상황을 맞았을 때, 마키아벨리는 공화국의 외교관으로서 국운이 풍전등화인 피렌체를 살려내려고 강대국 사이를 필사적으로 오갔고, 국제 정치의 민낯을 낱낱이 목격하며 ‘강한 군대, 강한 군주’의 필요성을 절감했다. 교황청에 사절로 파견갔다가 만난 발렌티노 공작(체사레 보르자)에게 이탈리아 반도를 통일해줄 강력한 신생군주의 역할을 기대했지만 체사레는 맥없이 병사해버렸다. 마키아벨리는 시민군 양성을 추진하는 등 나름의 노력을 기울였지만 메디치 가문이 군주로 돌아오자 공화국의 일꾼이었던 죄로 감옥에 갇혔다. 이후 특별사면을 받고 나와서 새 군주 로렌초 데 메디치에게 ‘필요한 경우에는 비도덕적인 수단도 행사해서 평화를 지키는 강력한 지도자가 되어라’는 조언을 담은 『군주론』을 썼다.

1506년에 피렌체 시민군의 조직을 계획하여 이듬해 9인위원회의 서기장이 되어 피렌체의 정복 전쟁에서 군대를 양성하는 책임을 맡았다. 1512년에 공직을 떠난 그는 산 카스치아노 근처의 저택에서 집필하며 루첼라이 가문의 소유인 오르티 오리첼라리 정원에서 여러 문인을 만났다. 이때 그는 메디치가의 요청을 받아 주로 통치론에 관한 글을 써 권력자들에게 헌정했다. 그러나 그는 불우한 말년을 보내다 1527년에 사망했다.

대표 저서로는 『군주론』을 포함하여 『카스트루치오 카스트라카니의 생애』, 『결혼한 악마 벨파고르』, 『리비우스 역사 논고』, 『만드라골라』, 『우리나라의 언어에 관한 연구 또는 대화』, 『이탈리아 10년사: 1494~1504』, 『전술론』, 『카피톨리』, 『클리치아』, 『트리시노』, 『프랑스 사정기事情記』, 『피렌체 정부 개혁론』, 『피렌체사』, 『황금 나귀』, 『후회에 대한 권고』 등이 있다.
르네상스 시대 피렌체 공화국의 외교관이자 탁월한 정치이론가. 이탈리아(피렌체)의 관료이자 외교관이자 군사 전략가였으나, 말년의 저술로 정치사상가의 반열에 오른 마키아벨리는 피렌체에서 몰락한 귀족의 아들로 태어났다. 어린 시절의 기록은 많지 않은데, 변변치 않은 교육 환경에서 홀로 역사와 정치에 관한 공부를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청년 시절에는 말직으로 근무하다가 서른 살이 되어서야 80인회의 사무국의 서기에 임명되었고, 능력을 인정받았는지 곧 10인군사위원회의 사무국장과 서기를 맡았다.

1492년 피렌체가 ‘위대한 로렌초(로렌초 일 마니피코)’의 사망으로 통치력 부재 상황을 맞았을 때, 마키아벨리는 공화국의 외교관으로서 국운이 풍전등화인 피렌체를 살려내려고 강대국 사이를 필사적으로 오갔고, 국제 정치의 민낯을 낱낱이 목격하며 ‘강한 군대, 강한 군주’의 필요성을 절감했다. 교황청에 사절로 파견갔다가 만난 발렌티노 공작(체사레 보르자)에게 이탈리아 반도를 통일해줄 강력한 신생군주의 역할을 기대했지만 체사레는 맥없이 병사해버렸다. 마키아벨리는 시민군 양성을 추진하는 등 나름의 노력을 기울였지만 메디치 가문이 군주로 돌아오자 공화국의 일꾼이었던 죄로 감옥에 갇혔다. 이후 특별사면을 받고 나와서 새 군주 로렌초 데 메디치에게 ‘필요한 경우에는 비도덕적인 수단도 행사해서 평화를 지키는 강력한 지도자가 되어라’는 조언을 담은 『군주론』을 썼다.

1506년에 피렌체 시민군의 조직을 계획하여 이듬해 9인위원회의 서기장이 되어 피렌체의 정복 전쟁에서 군대를 양성하는 책임을 맡았다. 1512년에 공직을 떠난 그는 산 카스치아노 근처의 저택에서 집필하며 루첼라이 가문의 소유인 오르티 오리첼라리 정원에서 여러 문인을 만났다. 이때 그는 메디치가의 요청을 받아 주로 통치론에 관한 글을 써 권력자들에게 헌정했다. 그러나 그는 불우한 말년을 보내다 1527년에 사망했다.

대표 저서로는 『군주론』을 포함하여 『카스트루치오 카스트라카니의 생애』, 『결혼한 악마 벨파고르』, 『리비우스 역사 논고』, 『만드라골라』, 『우리나라의 언어에 관한 연구 또는 대화』, 『이탈리아 10년사: 1494~1504』, 『전술론』, 『카피톨리』, 『클리치아』, 『트리시노』, 『프랑스 사정기事情記』, 『피렌체 정부 개혁론』, 『피렌체사』, 『황금 나귀』, 『후회에 대한 권고』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