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걸음 앞으로 두 걸음 뒤로. 우리 당내의 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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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blication Date 2016/02/01
Pages/Weight/Size 140*208*20mm
ISBN 9788985022804
Categories 사회 정치 > 정치/외교
Description
? 「러시아사회민주주의노동자당 제2차 대회 평가」가 당대회 평가를 위한 대략적인 초안이라면 『한 걸음 앞으로 두 걸음 뒤로』는 당대회에 대한 세밀한 분석의 결과다. 창당 이후 이름만 있을 뿐 전혀 활동하지 못한 상황을 종료하고 당의 강령과 규약을 확정한 것은 한 걸음 앞으로 나간 것이지만, 당대회에서 드러난 여러 사건들을 통해 조직 문제에서의 기회주의 사상이 당내에 퍼져 있다는 점은 운동의 후퇴라는 것이다. 레닌은 이 책에서 1904년 주네브에서 제2차 당대회 의사록을 인용하며 당시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Contents
서문 9
A. 대회 준비?14
B. 대회에서 분파가 형성된 것이 지니는 의의?16
C. 대회의 시작. 조직위원회 사건?21
D. 『남부 노동자』 그룹의 해산?34
E. 언어 평등권 사건?38
F. 농업 강령?48
G. 당 규약. 마르또프 동지의 초안?59
H. 『불꽃』파 내부 분열 이전에 있었던 중앙 집중주의에 대한 토론?72
I. 규약 제1조?77
J. 기회주의라는 허위 비난의 무고한 피해자들?108
K. 규약에 관한 계속된 토론. 평의회 구성?123
L. 규약에 관한 토론의 종결. 중앙기관들의 호선. 『노동자의 대의』 대의원들의 퇴장?131
M. 선거. 대회의 종결?150
N. 대회에서 벌어진 투쟁의 전체 그림. 당의 혁명 진영과 기회주의 진영?188
O. 대회 이후. 두 가지 투쟁 방식?205
P. 작은 불쾌함이 큰 만족을 막아서는 안 된다?232
Q. 새 『불꽃』. 조직 문제에서의 기회주의?247
R. 변증법에 대한 몇 마디. 두 변혁?290
부록 구쎄프 동지와 데이치 동지 사건?298

후주?311
인물 해설?320
간행물 해설?331
해제?통합을 이루려다 더 큰 분열로 끝난 제2차 당대회 ― 볼셰비끼와 멘셰비끼의 출현 / 김태호?333
Author
레닌,최호정
본명 블라디미르 일리치 울리야노프. 인류 최초의 성공한 노동자계급 혁명인 러시아 혁명을 지도하여 소련의 초대 국가원수가 되었다. 마르크스 이후 가장 위대한 혁명사상가이자 역사상 가장 뛰어난 혁명지도자로 인정받고 있다.
1870년 볼가 강변의 심비르스크에서 교육자의 아들로 태어났다. 나로드니키 운동에 참여했던 맏형 알렉산드르가 차르 암살 혐의에 연루되어 1887년 처형당한 것을 계기로, 반차르 운동과 마르크스주의에 관심을 갖게 된다. 같은 해 가을 카잔 대학교 법학부에 입학했으나 불법집회에 참석했다가 제적당하고, 그후 추방된 혁명가들과 사귀면서 마르크스주의 사상서를 탐독했다. 1891년 최고 점수로 변호사 자격증을 취득했으며, 1893년까지 변호사로 일했다.
이후 혁명운동에 투신하여 1895년 노동계급해방투쟁동맹을 조직했으며, 체포와 유형의 세월을 거친 뒤 1900년 국외로 망명, 독일 뮌헨에서 플레하노프, 마르토프 등과 함께 《이스크라Iskra》를 창간했다. 러시아 정부의 탄압 때문에 런던에서 열린 1903년 러시아 사회민주당 대회에서 당원 자격 문제를 놓고 플레하노프, 마르토프, 트로츠키와 맞서 직업적 혁명가주의를 관철시킴으로써 볼셰비키(다수파)가 되었다.
1905년 러시아 혁명이 일어나자 귀국했으나 혁명의 실패로 1907년 다시 망명하여 주로 스위스에 머물면서 연구와 저술에 전념하다가, 1917년 2월 혁명 직후 독일의 봉인열차를 타고 귀국했다. 같은 해 10월 무장봉기로 부르주아 임시정부를 전복하고 프롤레타리아 혁명정권을 수립한 다음, 1919년 제3인터내셔널인 공산주의자 인터내셔널(약칭 코민테른)을 결성했다. 1924년 1월 21일 저녁 고리키에서 뇌동맥경화증으로 사망했다.
마르크스의 과학적 사회주의 사상을 발전시켜 레닌주의를 확립했으며, 세계를 해석하는 틀을 만든 마르크스를 뛰어넘어 세계를 변혁하는 실험에 최초로 성공했던 인물이다. 제국주의와 프롤레타리아 혁명에 관한 이론을 정립하고, 세계 각국의 혁명운동과 사회주의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본명 블라디미르 일리치 울리야노프. 인류 최초의 성공한 노동자계급 혁명인 러시아 혁명을 지도하여 소련의 초대 국가원수가 되었다. 마르크스 이후 가장 위대한 혁명사상가이자 역사상 가장 뛰어난 혁명지도자로 인정받고 있다.
1870년 볼가 강변의 심비르스크에서 교육자의 아들로 태어났다. 나로드니키 운동에 참여했던 맏형 알렉산드르가 차르 암살 혐의에 연루되어 1887년 처형당한 것을 계기로, 반차르 운동과 마르크스주의에 관심을 갖게 된다. 같은 해 가을 카잔 대학교 법학부에 입학했으나 불법집회에 참석했다가 제적당하고, 그후 추방된 혁명가들과 사귀면서 마르크스주의 사상서를 탐독했다. 1891년 최고 점수로 변호사 자격증을 취득했으며, 1893년까지 변호사로 일했다.
이후 혁명운동에 투신하여 1895년 노동계급해방투쟁동맹을 조직했으며, 체포와 유형의 세월을 거친 뒤 1900년 국외로 망명, 독일 뮌헨에서 플레하노프, 마르토프 등과 함께 《이스크라Iskra》를 창간했다. 러시아 정부의 탄압 때문에 런던에서 열린 1903년 러시아 사회민주당 대회에서 당원 자격 문제를 놓고 플레하노프, 마르토프, 트로츠키와 맞서 직업적 혁명가주의를 관철시킴으로써 볼셰비키(다수파)가 되었다.
1905년 러시아 혁명이 일어나자 귀국했으나 혁명의 실패로 1907년 다시 망명하여 주로 스위스에 머물면서 연구와 저술에 전념하다가, 1917년 2월 혁명 직후 독일의 봉인열차를 타고 귀국했다. 같은 해 10월 무장봉기로 부르주아 임시정부를 전복하고 프롤레타리아 혁명정권을 수립한 다음, 1919년 제3인터내셔널인 공산주의자 인터내셔널(약칭 코민테른)을 결성했다. 1924년 1월 21일 저녁 고리키에서 뇌동맥경화증으로 사망했다.
마르크스의 과학적 사회주의 사상을 발전시켜 레닌주의를 확립했으며, 세계를 해석하는 틀을 만든 마르크스를 뛰어넘어 세계를 변혁하는 실험에 최초로 성공했던 인물이다. 제국주의와 프롤레타리아 혁명에 관한 이론을 정립하고, 세계 각국의 혁명운동과 사회주의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