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가톨릭대학교 인문사회연구소가 재해사의 기초자료들을 축적하여 재해는 물론 생태환경에 관한 연구 지평을 확대해 보려는 목표 아래, 동아시아(한·중) 재해 기초자료 DB 구축과 관련한 11편의 글을 엮어 출간한 것이다. 현대 문명의 발달에 따라 인간은 자연재해로부터 자유로워졌는가? 현대는 기후 위기, 대기와 수질의 오염, 코비드 19의 팬데믹 사태 등을 겪으면서 환경 문제와 재해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인간과 자연의 관계에 대한 성찰이 요구되고 있다. 자연환경 상의 위기는 대응을 더 미룰 수 없는 전 지구적 문제가 되었으며, 재해가 일상적인 문제로 되었다. 자연재해가 인간이 통제할 수 없는 천재지변이기 때문에 불운 내지 숙명론적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인식은 극복되고, 재해 예방과 대책은 사회와 국가의 기본 책무라고 인정된다. 현재 자연재해대책법에서 국가는 “자연 재난으로부터 국민의 생명·신체 및 재산과 주요 기간시설을 보호하기 위하여 자연재해의 예방 및 대비에 관한 종합계획을 수립하여 시행할 책무를 지며, 그 시행을 위한 최대한의 재정적·기술적 지원을 하여야 한다.”고 규정하였다.
그런데 한국의 근현대 역사학에서는 인간이 주체가 된 역사를 강조한 나머지 자연환경과 재해는 인간이 어쩔 수 없는 불가항력적 요인이라 하여 역사 해석에서 도외시한 경향이 있었다. 그런 요인을 강조하는 것은 비역사적 태도라고 간주될 정도였다. 그에 따라 정치사상으로서 천인감응론, 정책으로서 구휼과 권농 등을 고찰하면서도 자연환경과 인간의 상호 작용의 측면에 대해서는 별로 주의를 기울이지 않고 재해의 정치적 함의에 초점을 맞추어 연구하였다. 또한 인간이 자연을 정복해온 일원적 발전과정으로서 역사를 설명해왔다. 자연을 대상으로 의식적 노동을 통하여 유용한 물질적 재화를 생산하는 역량이 발전해온 과정으로 역사를 이해하는 경제사에서 특히 그런 점이 강하다.
물론 그런 연구 경향은 과거 식민주의 역사학의 줄기였던 지리결정론과 정체성론 등을 비판하는 의의가 있다. 그렇지만 이제 물질적 풍요와 편리함의 이면에 환경 문제와 재해에 일상적으로 직면하면서, 자연환경의 변수를 고려하지 않은 역사 해석은 설득력을 얻기 어려워졌다. 환경 문제가 근대의 과학기술 발전과 산업화 이후에 격화되어 온 것은 틀림없지만, 인간이 농경, 목축 등의 경제 행위를 하면서 벌목과 개간은 물론 도시화에 따른 각종 오염 등으로 자연을 변형시키고 훼손해왔다. 그런 가운데 각 시기마다 자연환경 문제를 이해한 내용과 수준은 다르더라도 그에 대한 인식과 문제 제기는 늘 있었다. 자연환경과 재해, 그에 대한 인식과 대응 등을 개발과 피해라는 시각을 넘어서서 심도 있게 고찰할 필요가 있다. 기왕의 협소한 역사인식을 벗어나 인간·사회·자연을 총체적으로 고려하는 연구 시야와 방법론이 요구된다.
이 책의 필자들이 연구한 전통사회 재해 DB 구축은 공간적으로 한반도와 중국, 시기적으로는 고대~19세기까지를 대상으로 한다. 재해는 일부 지역에 한정되기도 하지만, 한반도를 비롯한 동아시아 전반에 걸쳐 발생했을 가능성도 있어서 동아시아 전체를 대상으로 하는 DB 구축이 필요하다. 전통시대의 한국과 중국은 문화적 동질성과 이질성을 비교하기에 적합하다. 재해에 대한 이해와 대응은 그 사회의 풍토와 세계관·문화인식 등이 총체적으로 결합되어 있다. 양국은 유교와 한자를 배경으로 하는 동아시아 문화권의 영향으로 재해를 정사(正史) 「오행지(五行志)」에 분류·정리했는데, 이는 재해의 인식과 분류에서 한·중 양국이 유사한 체계를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 책은 우선 한국과 중국 전통사회의 재이 기록의 비교 연구를 시도한 위에 한·중 재이 용어를 비교해 보고, 각 용어들의 적합성과 표준화를 검증해 보았다. 또 전통사회 국가제의 중에서 기우제를 시대적인 상황에 따라 어떻게 기록하고 변화했는지를 살펴보고, 조선 숙종대 『승정원일기』·『조선왕조실록』의 재해 기록을 비교하여 그 특징을 찾아보았다. 이러한 따라서 향후 본 연구팀의 재해 연구 전망은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이러한 연구 바탕 위에 필자들은 동아시아 재해DB의 동질성과 이질성을 추적해 나가며, 다양한 인접 학문과의 학제 간 교류 및 공동연구의 활성화를 시도하고자 한다. 재해 자료의 종합 정리와 용어의 표준화는 재해 관련 모든 학문 분야에 도움을 줄 수 있다. 다양한 학문 분야에서 재해 자료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전통사회의 기록과 그 확장성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재해 자료는 발생과 피해 외에도 인구와 경작지 감소, 농업생산력 저하 나아가 전염병까지 그 정치·사회적 맥락이 연결된다. 따라서 재해는 정치적·사회경제적 문제로부터 자연과학과 의학 분야까지 연결되는 연구 주제이다.
재해 관련 연구는 천문학·기상학·지질학·생태학 등 자연과학의 영역에 걸쳐 있는 만큼, 학제 간 교류를 통해 새로운 연구 방향을 제시할 수 있다. 또한 오늘날 우리 사회에 기후와 환경의 변화에 대한 전통적 이해를 제공함으로써 신진 연구자뿐 아니라 대중적 관심도 환기할 수 있을 것이다.
Contents
발간사|인간 · 사회 · 자연환경을 총체적으로 사유하는 역사학
총론 · 재해 사료의 DB 구축과 재해 연구의 진전을 위하여
제1장 동아시아(한 · 중) 전통사회 재해 DB 구축과 의의|신안식
1. 머리말
2. 재해 연구사의 이해
3. 재해 DB의 필요성
4. 재해의 연관성
5. 맺음말
제2장 고려시대 재이(災異) 연구의 현황과 과제|채웅석
1. 머리말
2. 재이 기록의 사료적 성격과 한계
3. 정치사상과 재이설
4. 재이와 정치권력, 정치세력
5. 중앙집권체제와 재이 대책
6. 자연환경의 변화
7. 역병과 구료(救療)
8. 전망과 제언
제1부 재해 기록의 사료적 성격
제1장 11~12세기 한 · 중 재해 기록과 오행지(五行志)의 자료적 성격|이승민
1. 머리말
2. 『고려사(高麗史)』와 『송사(宋史)』 오행지의 의미와 한계
3. 재이 기록에 대한 보완 자료
4. 맺음말
제2장 『고려사』 오행지(五行志)의 체제와 내용|이정호
1. 머리말
2. 『고려사』 오행지의 구성과 내용
3. 『고려사』 오행지의 사료적 가치와 한계
4. 『고려사』 오행지를 통해본 자연재해의 발생 추세
5. 맺음말
제3장 고려시대 일관(日官) 재이(災異) 점사(占辭)의 자료적 특징과 기능|채웅석
1. 머리말
2. 재이 점사의 사료적 검토와 전거 추정
3. 점사의 정치적 활용과 재이 대책의 다원성
4. 맺음말
제4장 조선 숙종대 『승정원일기』와 『숙종실록』의 재이(災異) 기록 비교-‘일식’과 ‘지진’을 중심으로-|김창회
1. 머리말
2. DB의 색인어와 재이 기록 추출
3. 숙종대 『승정원일기』와 『숙종실록』의 재이 기록과 비교
4. 맺음말
제2부 역사 연구와 재해 사료 DB의 활용
제1장 고려중기 자연재해의 발생과 생활환경|이정호
1. 머리말
2. 자연재해의 발생상황과 대응양상
3. 산림 훼손과 자연재해, 전염병
4. 개경 내 생활환경과 도시문제의 심화
5. 맺음말
제2장 한 · 중 재해 DB를 통해 본 12세기 고려사회의 재해와 그 영향|신안식
1. 머리말
2. 12세기 재해의 범위
3. 12세기 재해의 특징
4. 12세기 재해의 영향
5. 맺음말
제3장 한 · 중 재해 DB를 통해 본 고려시대의 ‘역병(疫病)’과 자연재해|이승민
1. 머리말
2. 오행지(五行志)의 역병 인식과 역병 자료의 성격
3. 고려 역병 기록의 유형과 성격
4. 고려 역병 발생과 한 · 중 자연재해의 상관관계
5. 맺음말
제4장 한재와 기우제 관련 연관색인어로 본 고려~조선초기 사상사적 변화|최봉준
1. 머리말
2. 한재 관련 연관색인어의 경향성과 변화
3. 기우제 관련 연관색인어의 경향성과 변화
4. 맺음말
제5장 기우제 관련 색인어를 통해 본 조선초기 용신(龍神) 신앙과 기우제의 변화|최봉준
1. 머리말
2. 고려시대의 용신신앙과 기우제
3. 조선초기 기우제의 변화와 송의 기우제
4. 맺음말
Author
채웅석
서울대학교 국사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고, 현재 가톨릭대학교 국사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고려시대의 정치사와 사회사 등을 연구하고 있다. 주요 저서로 『고려시대의 국가와 지방사회』(서울대학교출판부, 2000), 『고려사 형법지 역주』(신서원, 2009), 『고려의 다양한 삶의 양식과 통합 조절』(편저, 혜안, 2019), 『고려의 중앙과 지방의 네트워크』(편저, 혜안, 2019), 『고려의 국제적 개방성과 자기인식의 토대』(편저, 혜안, 2019) 등이 있다.
서울대학교 국사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고, 현재 가톨릭대학교 국사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고려시대의 정치사와 사회사 등을 연구하고 있다. 주요 저서로 『고려시대의 국가와 지방사회』(서울대학교출판부, 2000), 『고려사 형법지 역주』(신서원, 2009), 『고려의 다양한 삶의 양식과 통합 조절』(편저, 혜안, 2019), 『고려의 중앙과 지방의 네트워크』(편저, 혜안, 2019), 『고려의 국제적 개방성과 자기인식의 토대』(편저, 혜안, 2019)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