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택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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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blication Date 2010/06/15
Pages/Weight/Size 160*230*30mm
ISBN 9788984334038
Categories 소설/시/희곡 > 시/희곡
Description
우리 조상들이 중국 땅에 이주해온 이후, 오랜 역사를 통해 탁월한 저력으로 독자적인 문화를 창출해냈고 또한 많은 문화유산을 물려주기에 이르렀다. 그 가운데 우리 조상들의 알찬 삶의 지혜와 다양한 경험들이 축적되어 있다. 바로 이 때문에 문화유산 중 큰 비중을 차지하는 구비문학과 기록문학이 소중하며, 다시 읽어야 할 보전으로 남게 되었다.

본 대계는 중국땅에 남긴 문학자료들을 집대성하여 후세인들로 하여금 문화민족으로서의 자긍심을 갖게 하고 애국애족의 정신을 계승 발양하며 문학, 언어, 역사, 민속, 언론, 사회 등 여러 분야를 망라한 학계인사들에게 21세기 중국 조선민족문화의 새로운 비약을 위한 계통적인 연구자료를 제공하는데 그 목적과 의의가 있다.

『김택영』은 경기도 개성 출신으로 구한말은 대표하는 시인 가운데 한사람이었던 滄江 金澤榮의 작품을 모아 놓은 책으로 창강은 한국 한시사의 대미를 장식한 인물로 시인일 뿐만 아니라 사학자, 애국계몽사상가, 독립운동가로 활동했다. 42살 때 과거시험에 합격하여 관직에 나아갔지만 일본의 탄압으로 중국으로 망명하였다. 중국에서 문학창작활동과 함계 한문학에 대한 정리, 평가 그리고 역사저술을 하였으며 중국 지식인들과 깊은 교류를 하였다.
Contents
간행사
일러두기
김택영 한시에 대하여 (곽미선)

1905년
6일에 한양으로부터 가족을 이끌고 인천으로 출발하였다. 장차 청나라 상해로 떠나면서 시로 이무재(범중)와 이별한 세 수를 짓다
9일에 배가 떠날 제 2수를 짓노라
상해에 이르러
저녁에 작은 배를 타고 소주로 향하며
고소의 역사를 회상하며
상해에서 장색암 수찬을 만나 주노라
10월 3일 밤에 상해 소동문에서부터 배를 타고 양자강으로 들어가다
4일에 통주 대생방적공장에 이르러 장퇴옹 관찰 숙엄에게 주다
김평계가 써준 시에 ‘노신은 타인의 아내가 되지 않겠으니 처자식 데리고 구주에 내려가네’라는 구절이 있는데 느낌이 있어 감사를 드리다
왕소병, 제진장 두 분에게
퇴옹이 음식물 여덟가지를 보내오고 아울러 딸아이의 여학생 옷 한 벌을 새로 지어 주었다. 이를 지어 사례하다
우리나라 10월의 일을 추억하며

1906년
달밤에 강가를 거닐며 강역원을 생각하노라
왕소병과 함께 규성루에서 노닐며
오생의 방문을 감사하며 (오생은 곧 을사년에 통주에 이를 때 함께 배에 묵었던 분이다)

1907년
정월에 넷째 아들을 낳으니 이름을 광속이라 하였다. 기쁨을 표시하여 아내에게 보여주었다
곡원선생을 기리며
서담려의 부채에 쓰노라
황상께서 선양을 받아들였다는 소식을 듣고 느낌이 있어 읊노라
퇴옹의 병이 완쾌된 것을 축하하여
색옹의 시집에 쓰노라
주진기를 방문하였으나 만나지 못하여 2수를 남기다
내가 사십세 전에 백천 황의산인 안성문이 나를 위하여 운수를 점쳐주었다. 그 후 2,30년 사이에 점친 것이 모두 들어맞았는데 만년에 매우 어지럽다라고 말한 것은 더욱 오늘날의 경우에 딱 맞았다. 그러나 안성문은 이미 죽은지 오래되었다. 느낌이 있어 이 시를 지어 겸하여 애도를 표하노라

1908년
낭산에서 노닐며
색암 서부인 만사
퇴옹에게 서련을 부탁한지 오래되어도 얻지 못하자 시를 지어 독촉하노라
이사마에게 드리노라
양화원의 밤 연회에서 기생 소추의 부채에 제하노라
멀리서 나의 종형인 주사의 회갑을 축하하노라
색옹에게 4수를 부치노라
금릉 2수
양주를 바라보며
초산에서

1909년
기도 엄복에게
화답시를 부치다
내가 통주에 몇 년 살았으나 노쇠한 원인으로 말이 통하지 않았으며 더욱이 민간의 꺼리는 일에 어두웠다. 일찍이 한 노인과 필담을 하다가 그가 꺼리는 바를 범하였다. 노인은 노하여 절교하였는데 노인이 죽자 그의 아들이 만사를 청하였기에 이를 지어 응하였다
2월 22일 귀국할 행장을 하고 다음날 천생항 돈선에 머물렀다. 부수자 진사가 장미술 4병을 가져다 주었다. 장난삼아 장구를 지어 감사드리다
서호
환국초에 이원승이 나를 위하여 안심전에게 귀래도를 그리도록 부탁하였다. 이어 나에게 그 일을 읊도록 권하고 권석운에게 그림 말미에 쓰라고 청하였다
허거 윤공을 위하여 공손하게 임금의 글씨 벽수거사라는 정자 현판 뒤에 쓰다
6월 5일 새벽에 몰래 등주 상인 기난정을 따라 인천으로 나갈 때에 머리를 깍아 중국 사람처럼 변장하고 석양에 기난정 및 여러 중국인 상인들과 함께 화륜선에 올라 연태로 향하면서 짓노라
연대에 이르러 다시 본장을 짓다
바다에서 색옹을 그리며
주진기가 사는 초석산방에서 밤에 마시며
의병장 안중근이 나라의 원수를 갚았다는 말을 듣고
엄기도에게 부치노라
기도 엄복에게 화답하며 보낸 시
정소감에게 보내며
소호 이효부가 분묘를 쓸고자 소흥으로 갔다가 돌아와서 말하기를 “눈속에서 계산을 지났는데 바라봄이 매우 기뻐서 6수를 읊어 보내노라”고 하였다
왕성순의 편지를 얻고 기뻐서 읊노라
김윤행에게 부치며
무재 송약문에게 드리노라
박무원에게
정규원에게
승지 정무정에게 구언체를 써서 부치다
비서 서상훈에게

1910년
정월에 아내가 아이를 위하여 명을 빌고자 퇴옹의 부인 양씨에게 양자로 들일 것을 청하자 퇴옹이 듣고 허락하였다. 예에 따라 예절를 갖추고 ‘광조’라는 이름 지으니, 그가 조국을 광복하기를 바라는 뜻에서였다. 시를 지어 기록하노라
황매천에게 부치며
황원(매천의 동생)이 준 시에 화답하노라
금릉의 손무재 보정이 제남에 도강하러 가는 것을 보내며
어제밤에 퇴옹의 집에서 색옹과 함께 만나 밥을 먹었다. 색옹이 음식 세 가지를 가리키며 시를 짓기를 약속하였다. 아침에 일어나 그가 칠언절구 세 수를 쓴 것을 보았는데 어찌 그리 빠른가. 부끄러워서 급히 화답하도다
이건방에게
이우당의 장인에게 화답하노라
윤현태가 안창호, 이종호와 함께 방문하러 왔다. 이에 그들과 함께 낭산의 절을 노닐고 하루밤을 묵었다. 윤현태와 그의 동생 윤현진은 상해에 살고 있다
갈수곡이 무주로 돌아가는 것을 보내며
장봉석이 스스로 지은 만시에 화운하기를 부탁한지 수년인데 지금 비로소 응하노라
퇴옹이 부채와 금니를 주면서 근래 지은 시를 쓰게 하였으나 나는 글씨가 서투르고 또 부채에 글을 쓰기가 어려워 이 시를 지어 이효부에게 대신 써주어 갖고 가기를 부탁하였다
양주의 육생 경건은 시재가 있으나 가난함으로써 통주에 이름이 났는데 아직도 시를 읊기를 그만두지 않았다. 근래에 나를 보러 와서 월병 여덟 개를 폐백으로 삼았다. 그리하여 월병으로 사언시를 지어서 주었다
뜰에서 읊노라
황매천이 나라 위해 순국하였다는 말을 듣고 짓노라
퇴옹의 예순 생일에 장수를 비는 시
환갑날 아침에
해풍부원군에게 보내는 편지
오익정에게

1911년
주진기가 함께 낭산으로 놀러 가자고 약속하였으나 내가 걸음걸이가 좋지 않아 응하지 못하였다
도경산이 무진으로 돌아가는 것을 보내는 여섯 수
박백당을 추모하며
서순지를 추도하며
명슬헌에서 즉흥시를 짓노라
이회관을 그리며
판서 남하산을 그리며
중국의 의병 이야기에 감동한 다섯 수
섭석향에게 화답하노라
막내동생 성천이 8월 7일에 손자를 봤다는 말을 듣고 기뻐서 부른 노래
퇴옹이 음식을 보내준 것에 감사하여 3수를 짓노라

1912년
김윤행이 내 글을 간행함에 여러 군자들이 곁에서 도왔다. 그리하여 이들을 생각하는 열한수를 지어 두루 사례하다
팔촌동생 현감 인여에게
손의경
김후경
조순팔
박무원
최용구에게
김윤행
한성조에게
왕원초에게
공성학에게
심우경에게 드리며
노인 오온휘가 서국을 방문하고 말하기를 장차 천태산을 노닌다고 하기에 이를 지어 주었다
달을 대하여 왕원초를 생각하며 전에 써준 시에 차운하다
탄식하는 시를 이문선에게 부치노라
심우경과 대작하며 겸하여 도귀보를 생각하는 세 수
심우경의 원시에 붙이다
학형지에게 화답하노라
담려가 그린 연꽃그림에 제하여
탕의사가 앓는 이를 고쳐준 데 감사하여

1913년
서호연에게
퇴옹의 부름에 나아가 성남별장에서 마시고 돌아와 읊어서 보내다
오작룡에게
홍순유, 정경시, 김국순 세분을 남경에 바래며
장효약에게
효약이 상해의 신학에 들어가는 것을 보내며
손석거에 대한 만사
내가 일찍이 나의 문집 한 부를 임영청게게 주었다. 임군이 편지를 보내어 말하기를 시 두 책을 빼앗겼다고 하였다. 이에 시를 지어 부친다

1914년
학형지가 열하에서 보내온 편지를 받고
진자정에게
퇴옹 소부인의 만사
탕칩선을 위하여 명나라 유민 주순수 선생의 일을 읊노라
초석산방에서 진기와 함께 저녁밥을 먹는데 양곡손도 또한 자리에 있었다. 돌아간 후에 부치다
초석산방에서 회반한 일을 거듭 읊노라
소호에게 보내어 각인석을 구하다
멀리서 개성의 단풍누각을 그리며
8월 5일 아들딸이 회포를 적어 퇴옹에게 보내다
팔월에 황근석이 살고 있는 성남의 전당포에서 뜰의 매화가 핀 것을 보고 시를 지어 화답을 청하였다
십오일 밤에 진기가 장협정, 양곡손, 서담려 등 여러 군자를 불러 함께 달을 완상하다
담려가 납매 가지 한묶음 준 것에 감사하며

1915년
초석산방에서 주인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며
심재 조긍섭에게 화답하노라
장번시 부인이 쓴 이소경 후 세 수에 제하며
류무재에게 화답하며
효약의 북경시권에 제하노라
이명집이 편지를 보내여 교분을 맺은 것에 감사하며
10월 사위가 양주의 소륜선국으로부터 월병을 보내와 나의 생신을 축하하며 장인의 정신이 둥근 달과 같이 가득하기를 바란다고 말하였다. 이에 시를 지어 부치다
십팔 일에 도귀보의 부름에 나아가 상주에 이르러 다음날에 귀보와 함께 소동파의 고택을 관람하다
도경산과 함께 장무지의 국화모임 초대에 나아가다
장차 남통으로 돌아가 귀보에게 보내며
귀보의 답시를 부록한다
내가 상주에 있을 때에 여박산이 나를 위해 술을 마련하고 도경산, 동백장, 장통백, 이척운을 불러 기쁨을 돋구게 하였다. 그 일을 추억하여 시를 지어 감사를 드리다
상주에서 함께 노닐던 이들에게 주노라
내가 가서 도귀보, 여박산 등 여러 사람과 당형천의 고거 즉 소위 반원이라는 곳을 방문하였다. 지금의 정원 주인 전군도 역시 문사인데 마침 밖에 나가서 만나지 못하였다. 여러 사람들이 시 한수를 지어 주라고 권유하여서 짓는다
서씨의 매화객관에서 숙사 달계담에게 3수를 보내며

1916년
하무재에게 부치며
심상복에게 화답하노라
멀리서 문수봉이 새로 지은 광거당에 쓰다
허묘원에게 화답하며
류생에게 화답하며
조복제에게 보내며
승평 두 동생의 노래
늦은 여름에 수목명슬정에 제하여 쓰며 색옹의 참정을 그리워하다. 모두 7수이다
청도 예대훈이 시문을 구하기에 이 두수를 지어 주었다
강매산이 상해에서 시를 보낸데 화답하여
색옹의 석벽선인가에 화답하는 2수
색옹의 임계정사시에 화답하며
후은옹의 사수가
손취원이 나의 문집에 시를 써준 것이 훀어 그 시에 차운하여 화답하노라

1917년
색옹이 나를 초청하여 임계정사에서 마셨다. 이어서 시를 지어 그 일을 기술하였기에 화답하였다
사건암에게 화답하며
색옹이 보내온 시에 차운하며
색옹의 원운
색옹이 규성루를 크게 보수하고 중공원으로 이름을 고치고 이소호, 진시서 두 사람으로 하여금 각각 매화와 소나무를 정자의 벽에 그리게 하고 나에게 시를 구하였다
비범구가 보내온 시에 화답하며
심우경을 애도하며
전호재가 그의 부친 구고옹의 칠순을 축수한 것을 위하여
조위당의 시초에 제하노라
매화관에서 밤에 마시며 술상에서 숙사 왕학주에게 주노라
이충도에게 보내노라

1918년
장경유를 애도하며
초동산민전후에 제하며
전호재에게
박남파에게
이경재에게 화답하다
나의 장자 광렴이 이미 큰 형님에게 양자로 들어갔는데 작년에 또 작은 아들 광속을 잃었다. 그리하여 대를 이을 아들을 삼종제 사원에게 구하였더니 사원이 과연 그의 둘제 아들 환표로 허락하였다. 이에 내가 그의 이름을 광고로 고치고 자를 경자로 하였다. 대체로 우리 조상의 큰 하사를 밝게 드러내기를 바라는 것이다. 이에 사원에게 글을 부치며 그의 후의에 감사하노라
정개석에게
20일 사원이 광고를 데리고 남통에 이르러 기쁜 뜻을 광고에게 보여주었다
고앙천의 50세 생신에 회포를 읊은 시에 화답하며
족질 중길이 시를 좋아한다는 말을 듣고 나의 저서 몇종을 보내주었다
조카 광현이 와서 기뻐 읊노라
단도 오계농, 오기진 형제가 그들의 모친 임대부인에게 지어준 ‘추창과독시’ 열 수 뒤에 쓰노라
소호당집을 외손 이현재에게 보내며 회포를 적다
박석당에 대한 만사
금산생광가
절강의 장맹결에게 보내노라
최기원에게 부치며
진연상에게 주노라
제석 하루 전날 퇴옹이 보내온 음식에 감사드리며

1919년
조중근을 위하여 그 제자가 새로 지은 정산서실에 삼가 시를 짓노라
하숙형의 귀강정사에 제하노라
장순후에게 3수를 보내다
한주사가 북경으로부터 편지를 보내어 문안하기에 지난 일을 생각하며 써주다
진수정에게 화답하노라
수정을 귀사어항에 전송하며
8월 1일에 색옹이 내 나이 일흔을 맞아 성서관 만류정에 술을 준비하고 불러서 축하하니 방유일과 장경운과 관석신과 조훈각이 모두 자리하고 옹의 아들 효약도 또한 참석하였다. 옹이 두 율을 내놓고 화답하기를 부탁하니 한 좌석이 이미 돌아갔다. 그 운을 써서 화답하여 사례하다
주자적의 만사
장경운에게
정택정에게
팔괘정 속수운에 차운하다
사촌 조카 자덕에게 보내다
전호재가 귤을 보내준 것에 감사드리다
10월 15일 생일에 사위 부부가 내외 족친들과 함께 와서 나의 70 생일을 축하하였다. 글을 써서 기쁨을 표시한다
수정이 맷돼지 고기로써 축수하니 시를 지어 사례하다
이지평의 석천정에 시를 쓰며 전에 썼던 운을 사용하다
장경운을 추모하며
멀리서 비범구의 담원누각에 제하노라

1920년
상사일에 색옹이 술자리에 초대하여 만류정을 구경하게 하였다. 술을 마시고 나서 그가 세운 악공과 학사의 동자 수십명으로 하여금 노래를 부르고 시를 지어 화답하게 하였다. 돌아온 후에 그 운을 사용하여 화답한다
소감에게 보내어 문수봉과 최기원을 위하여 글을 구걸하다
왕맹육에게
손자 정기의 소식을 듣고 금주에 가서 기뻐서 시를 짓노라
석우신 소대저 두 소년이 시를 배우는 여가에 함께 서립손에게 거문고를 배웠다. 하루는 함께 거문고를 가지고 나를 찾아와 각기 한 두 곡조를 연주하였다. 이를 지어 감사드리다
사모일이 오언율시 2수로 선사하는 것에 감사하며 따라서 화답하다
유홍원을 위하여 그의 부친 소심재옹이 신축한 쌍암정 시에 화답하노라
한묵림서국의 여러 젊은 벗들에게
범구를 위하여 그의 큰아버지 덕선옹의 송하대월도에 시를 쓰노라
색옹 참정이 퇴옹의 고회를 맞아 향로들을 초청하여 남공원에서 잔치를 열고 관천령회라 이름하였다. 절구 여덟수를 지어 기록하기에 받들어 화답하다
마소촌에게
전호재가 배를 보내어 함께 정택정의 반서원을 노닐자고 하였다. 내가 병에 걸려서 응하지 못하였다. 회포를 지어 두 사람에게 보내었다
주진기를 애도하며

1921년
진보지에게
지난해에 진수정이 내 손자 정기를 보고 사랑하여 그 딸과 혼인하기를 청하거늘 내 감사히 허락하니 삼월 십삼일에 납채례를 행하였다. 전호재, 비범구 두 사람이 중매를 하였다. 이를 지어 사례하고 겸하여 수정에게도 부치다
진원기의 서원 이십영권에 제하다
진소를 보내고 나는 여고로 돌아왔다
비범구를 위하여 조공정가를 짓노라
9월에 안총장 창호가 내가 몸이 쇠약한 것을 생각하여 쇠고기를 가지고 와서 대접하려던 차에 도우 윤차장 현진이 요절했다는 비보를 듣고 윤군을 애도하여 이 시를 지어 부치노라
기러기 소리를 듣고
개성의 문필봉 노래
강에 부치노라
김원배에게 보내고 겸하여 임황식에게 주다
10월 21일에 상해로 가서 성재 이시영을 위로하니 공이 주연을 베풀었다. 그 친구 박백암, 동료 박찬익, 조완구, 신익희 및 교유하고 있는 황중현 등 여러 사람들이 모두 자리에 있었다. 이미 돌아와 감사의 시를 지어 문득 부치다
전호재가 쌀을 보낸 것에 감사를 드리다
정봉태가 금침을 준 것에 사례하다
권봉수가 사는 지촌서당에 시를 써서 보내노라
신규식의 양력 설날 문안에 사례하다
우남 이공이 졸저를 요구하는데 감사드리며
퇴옹이 새해에 물건을 보내줌에 사례하다

1922년
광현이 손생 응천 득화와 함께 오니 매우 기뻐서 시를 지어 손생에게도 아울러 주노라
광현이 그의 벗 이단우의 복거하는 훌륭함과 남의 위급함을 도와주는 아름다운 성품을 말해주었고 또 그가 나의 졸저를 감상하기 좋아한다고 말하였다. 이에 느낀바 있어 시를 지어 준다
도경산에 대한 만사

補遺
장차 정시로 나아가 임진강을 지나며 짓노라
아침에 채하동에 들어가며
심성연이 강릉으로 돌아가는 것을 보내며
오호부
Author
김동훈,허경진,허휘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