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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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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blication Date 2020/04/15
Pages/Weight/Size 130*188*20mm
ISBN 9788980974481
Categories 사회 정치 > 사회학
Description
자유를 아는 자만이 자유를 갈망할 수 있다

현대의 개개인은 예전의 어느 시대에서보다도 자유로워 보인다. 그런데 자유에 대한 사람들의 갈망은 여전히 끊이지 않고, 오히려 시대가 갈수록 더 강해져 간다. 그러나 자유를 갈망하는 사람들이라면 우선 진정한 자유를 말하기 위해 책임져야 할 것이 있다. 그것을 모른다면 우리는 아직 진정한 자유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지 않은 것이다.

밀이 이야기한 자유의 개념은 대부분의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 법으로 자리 잡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밀이 이야기한 자유의 원칙이 법에 명시된 것 이상으로, 그러니까 우리의 삶 속에서도 지켜지고 있는가? 사람들은 개성과 다양성을 피곤하게 여기며 소수의 견해를 ‘이단’ 취급해버리고는 한다. 대부분의 주제에 관한 견해는 단 몇 가지의 양상으로만 나타나고 사람들은 그중 어느 한편의 손을 들어주기를 바란다. 가령 누군가가 한 개인이나 집단을 지지한다고 하면 모든 방면에서의 그 사람이나 집단의 의견에 동조해야 하며, 속으로는 그렇지 않더라도 모든 것을 일치시키려 노력해야만 한다. 그러한 분위기가 밀이 살던 시대에도, 지금에 와서도 여전히 조성되고 있기 때문이다.

개개인의 의견은 집단의 의견에, 혹은 상식적이고 강하다고 여겨지는 개인의 의견에 흡수되고 결국 밀이 말하고자 했던 자유는 『자유론』이 저술된 지 15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 우리는 밀이 말한 자유를 제대로 이해하고 마음 깊이 받아들여야만 한다. 소수의 의견을 외면하지 말고 직시하며 그에 대해 논의해야 한다. 물론 그것을 무조건적으로 수용하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밀이 주장한 것처럼, ‘이단’이라고 불리는 것들에 대한 논의, 그 자체가 있을 때에만 우리는 진정한 자유를 말할 수 있으며, 그것을 쟁취할 수 있다.
Contents
책머리에 8

Chapter 1
서설 12

Chapter 2
사상과 언론의 자유 46

Chapter 3
행복의 한 요소로서의 개성 142

Chapter 4
개인에 대한 사회 권위의 한계 190

Chapter 5
원리의 적용 238

존 스튜어트 밀의 연보 294
Author
존 스튜어트 밀,정영하
영국의 철학자이자 경제학자인 밀은 1806년, 스코틀랜드 출신의 철학자이며 경제학자였던 제임스 밀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아주 어릴 때부터 그에게 극도로 엄격한 영재교육을 시켰다. 그 결과 밀은 3살 때부터 그리스어를 배워서 8살에 헤로도토스와 플라톤의 저작들을 원어로 읽었고, 8살부터는 라틴어를 배워서 오비디우스 등이 쓴 라틴어 고전도 읽었다. 12살부터는 스콜라 철학의 논리학을 공부했고, 아리스토텔레스의 논리학 저작들을 원어로 읽었다. 13살 때는 애덤 스미스와 데이비드 리카도의 저작을 통해 정치경제학을 공부했다. 14살 때는 프랑스에서 1년을 지내면서 몽펠리에 대학에서 화학, 논리학, 고등수학에 관한 강의를 들었다. 17세 때인 1823년에는 영국 동인도 회사에 입사하여 아버지의 조수로 일했으며, 그 후 1858년까지 재직하며 연구와 저술 활동을 병행했다.

20살 무렵 밀은 심각한 정신적 위기에 부딪힌다. 신경쇠약으로 우울증에 빠져 자살을 생각할 정도였다. 하지만 그는 시인 윌리엄 워즈워스의 작품을 읽고 다시 재기했다. 이때부터 밀의 사상은 변하기 시작했다. 그는 엄격한 공리주의적 이성 제일주의의 문제점을 깨달았고, 사색과 분석뿐만 아니라 수동적인 감수성이 능동적 능력 못지않게 중요하다는 사실을 인식하게 되었다. 이후 그는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을 비판하고, 자본주의의 모순을 바로잡기 위해 제한적인 정부 개입을 옹호하는 경제학 사상을 주장했다. 그러면서 사회주의 사상과, 자유주의 정치철학의 발전에 크게 이바지했다.

밀은 행동하는 사상가였다. 그는 사상에만 갇혀 있지 않았다. 1865년부터 1868년까지 세인트앤드루스 대학의 학장으로 재임했고, 같은 기간 동안 런던 웨스트민스터에서 하원의원으로 활동했다. 1866년, 그는 하원의원으로서 헌정사상 최초로 여성 참정권을 주장했고, 보통 선거권의 도입 같은 선거제도의 개혁을 촉구했다. 또한 노동조합과 협동농장을 중심으로 한 사회개혁과 아일랜드의 부담 경감 등도 주장했다.

주요 저서로 『논리학 체계』(1843), 『정치경제학 원리』(1848), 『자유론』(1859), 『대의정부론』(1861), 『공리주의』(1863), 『자서전』(1873) 등이 있다.
영국의 철학자이자 경제학자인 밀은 1806년, 스코틀랜드 출신의 철학자이며 경제학자였던 제임스 밀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아주 어릴 때부터 그에게 극도로 엄격한 영재교육을 시켰다. 그 결과 밀은 3살 때부터 그리스어를 배워서 8살에 헤로도토스와 플라톤의 저작들을 원어로 읽었고, 8살부터는 라틴어를 배워서 오비디우스 등이 쓴 라틴어 고전도 읽었다. 12살부터는 스콜라 철학의 논리학을 공부했고, 아리스토텔레스의 논리학 저작들을 원어로 읽었다. 13살 때는 애덤 스미스와 데이비드 리카도의 저작을 통해 정치경제학을 공부했다. 14살 때는 프랑스에서 1년을 지내면서 몽펠리에 대학에서 화학, 논리학, 고등수학에 관한 강의를 들었다. 17세 때인 1823년에는 영국 동인도 회사에 입사하여 아버지의 조수로 일했으며, 그 후 1858년까지 재직하며 연구와 저술 활동을 병행했다.

20살 무렵 밀은 심각한 정신적 위기에 부딪힌다. 신경쇠약으로 우울증에 빠져 자살을 생각할 정도였다. 하지만 그는 시인 윌리엄 워즈워스의 작품을 읽고 다시 재기했다. 이때부터 밀의 사상은 변하기 시작했다. 그는 엄격한 공리주의적 이성 제일주의의 문제점을 깨달았고, 사색과 분석뿐만 아니라 수동적인 감수성이 능동적 능력 못지않게 중요하다는 사실을 인식하게 되었다. 이후 그는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을 비판하고, 자본주의의 모순을 바로잡기 위해 제한적인 정부 개입을 옹호하는 경제학 사상을 주장했다. 그러면서 사회주의 사상과, 자유주의 정치철학의 발전에 크게 이바지했다.

밀은 행동하는 사상가였다. 그는 사상에만 갇혀 있지 않았다. 1865년부터 1868년까지 세인트앤드루스 대학의 학장으로 재임했고, 같은 기간 동안 런던 웨스트민스터에서 하원의원으로 활동했다. 1866년, 그는 하원의원으로서 헌정사상 최초로 여성 참정권을 주장했고, 보통 선거권의 도입 같은 선거제도의 개혁을 촉구했다. 또한 노동조합과 협동농장을 중심으로 한 사회개혁과 아일랜드의 부담 경감 등도 주장했다.

주요 저서로 『논리학 체계』(1843), 『정치경제학 원리』(1848), 『자유론』(1859), 『대의정부론』(1861), 『공리주의』(1863), 『자서전』(1873)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