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혜도경종요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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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blication Date 2017/10/20
Pages/Weight/Size 160*233*21mm
ISBN 9788978015929
Categories 종교 > 불교
Description
대혜도경종요大慧度經宗要
『대혜도경종요』에 대한 가장 오래된 기록은 1094년 일본의 영초永超가 여러 고승들이 저술한 논論·소疏·주註·기記 등의 목록을 편집한 『동역전등목록東域傳燈目錄』에서 찾아볼 수 있다. 그중 「홍경록弘經錄」 제1 반야부에 ‘대혜도경종요 1권(『대정장』 55권, p.1148 상)’이라 되어 있고, ‘원효찬元曉撰 의대품등依大品等’이라고 주註를 달아 놓았다. 또 같은 곳 아래에 ‘대혜도경종요大慧度經宗要 1권一卷, 원효찬元曉撰, 의고록依古錄’이라 되어 있는데, 중복하여 기술하지만 같은 저술일 것이다. 전체적인 내용의 구성과 문장의 서술 방식, 경經·논論을 인용하는 태도 등에 근거하여 판단할 때, 서사·간행·유통 등의 과정에서 어느 정도 변형이 있었겠지만, 원효가 저술했다는 것은 분명하다.

법화종요法華宗要
『법화종요』 1권은 대표적인 대승불교 경전의 하나로 꼽히는 『법화경』에 대한 원효 대사(617~686)의 저술로, 우리나라 고대 법화사상을 대표하는 중요한 저작이다. 이 저술은 원효의 『법화경』 저술 중에서 유일하게 현전하는데, 우리나라에는 일실되어 남아 있지 않고, 일본 인화사仁和寺에 전승되었다. 『법화경』은 한역경전으로 세 본만이 전하는데, 서진西晋 축법호竺法護가 역출한 『정법화경正法華經』(10권 27품)과 요진姚秦 삼장법사三藏法師 구마라집鳩摩羅什이 역출한 『묘법연화경妙法蓮華經』(7권 28품), 그리고 이 두 본을 교감 첨삭한 수隋나라 사나굴다?那?多와 달마굴다達磨?多 역출의 『첨품묘법연화경添品妙法蓮華經』(7권 27품)이 있다. 법화신행이나 학문 연구에 있어서 초기에는 『정법화경』이 사용되었으나, 『묘법연화경』이 나온 뒤로는 전통적으로 구마라집 역 『묘법연화경』이 널리 사용되었다

화엄경소花嚴經疏 제3권
『화엄경소華嚴經疏』는 신라 원효元曉(617~686)가 『화엄경』을 주석한 문헌이다. 일본의 원초圓超(?~914)가 편찬한 『화엄종장소병인명록華嚴宗章疏?因明錄』(T55, 1133a), 고려의 의천義天(1055~1101)이 1090년에 편찬한 『신편제종교장총록新編諸宗敎藏總錄』(T55, 1166b), 일본의 영초永超가 관치寬治 8년(1094)에 편찬한 『동역전등목록東域傳燈目錄』(T55, 1146b) 등에 원효의 『화엄경소』가 10권이라고 밝히고 있다. 특히 『신편제종교장총록』에는 『화엄경소』가 원래 8권이었는데 제5권을 나누고 『종요宗要』를 합해서 10권(T55, 1166b)이 되었다고 밝히고 있다. 하지만 현재 남아 있는 것은 『동문선東文選』에 전하는 서문과 일본에 필사본으로 전하는 제3권뿐이다. 관문寬文 10년(1670)에 필사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는 『화엄경소』 제3권은 『대정신수대장경』 제85권에 실려 있는데, 『한국불교전서』는 이것을 저본으로 하여 『동문선』의 서문을 함께 실었다.

십문화쟁론十門和諍論
원효 사상의 특징은 종합과 화쟁이다. 이러한 화쟁의 의미를 집중적으로 규명한 저술이 『십문화쟁론』이다. 그러나 현존 『십문화쟁론』은 단지 4면으로 이루어진 단편에 불과해 원효의 화쟁 논리를 밝히기에는 부족한 자료이다. 원효 연구자들은 『십문화쟁론』의 10문이 무엇인가를 알기 위해 많은 노력을 경주하여 왔으나, 한정된 자료 때문에 기대만큼의 성과를 얻었다고 하기는 사실상 어렵다.『십문화쟁론』 연구에 있어서 10문이란 1에서 10까지 열 개의 개별 항목이라는 주장과, ‘10’이란 ‘백가百家’라는 말처럼 복수, 즉 ‘많음’을 가리키는 일반적인 명칭이라는 견해가 서로 대립한다. 이러한 문제에 접근하기 위해서는 먼저 『십문화쟁론』의 자료적 검토와 함께 비록 단편으로 남아 있지만 그 내용에 대한 철저한 분석이 이루어져야 할 것으로 판단된다
Contents
대혜도경종요大慧度經宗要

대혜도경종요大慧度經宗要 해제......... 9

대혜도경종요大慧度經宗要......... 24

법화종요法華宗要

법화종요法華宗要 해제......... 91

법화종요法華宗要......... 106

화엄경소花嚴經疏 제3권

화엄경소華嚴經疏 해제......... 169

진역晋譯 화엄경소華嚴經疏 서序......... 177

화엄경소 제3권 花嚴經疏 卷第三......... 182

십문화쟁론十門和諍論

십문화쟁론十門和諍論 해제......... 207

십문화쟁론十門和諍論......... 224

찾아보기 / 245




Author
원효,성재헌
신라 진평왕 39년(617) 압량군 불지촌(현 경북 경산)에서 출생했다. 소년 때(16세) 출가하여 여러 스승을 찾아다니며 치열하게 수행하였고, 지음知音의 도반 의상義相(625-702)과 함께 당나라 유학을 시도하다가 깨달음 성취로 인한 자신감이 생겨 유학을 그만두었으며, 서민 대중들에게는 신뢰와 희망의 대상이었고, 권력과 제도권 승려들에게는 불편하면서도 경외의 대상이었던 인물. 왕족 과부와 결혼하여 신라 십현十賢의 한 사람이 된 설총薛聰을 낳고는 환속하여 비승비속非僧非俗인 거사居士로서 수행하기도 하였던 인물. 특정한 삶의 유형과 진영에 소속되거나 머물지 않으려고 몸부림치듯 내달렸던 인물. 신분이 미천한 대중과 어울리며 그들에게 부처 되는 길을 알리려고 춤과 노래 등 다양하고도 파격적인 실험을 하였고, 심오한 체득과 혜안을 웅혼한 필력으로 종횡무진 글에 담아내어 당대 최고 수준의 불교지성을 동아시아 전역에 흩뿌렸던 인물. 인도의 불교논리학 대가인 진나陳那(Dign?ga)의 문도가 당나라에 왔다가 입수하여 읽고는 감탄하여 산스크리트어로 번역해 인도에 보냈다는 『십문화쟁론十門和諍論』을 지은 인물. 그와의 밀접한 연관에서 한반도에서 찬술된 것으로 보이는 『금강삼매경金剛三昧經』에 관한 최초/최고의 주석인 『금강삼매경론』을 저술하여 자신의 불교 탐구와 안목을 총정리하고 있는 인물. 만년에는 토굴같이 누추한 절(穴寺)에서 수행하다가 그곳에서 삶을 마감하였던 인물. ―현존하는 원효 관련 기록에서 포착되는 단면들이다.

이칭異稱, 진찬眞撰 여부 등을 감안할 때, 대략 80여 부 200여 권이 확인되는 그의 저술의 양과 질은 당시 동아시아를 통틀어 가히 최고 수준이다. 양으로만 보아도 한반도에서 그를 능가하는 경우가 없을 뿐 아니라, 중국의 대저술가였던 천태 지의智?(538-597, 30여 부)나 화엄 법장法藏(643-712, 50여 부), 법상 규기窺基(632-682, 50여 부)도 원효에 비견되기 어렵다. 그의 80여 종 저서 중에서 완본으로 전하는 것이 13종, 잔본殘本이 8종이다. 잔본까지 합하여도 21종 저서가 현존하는 셈이다.
신라 진평왕 39년(617) 압량군 불지촌(현 경북 경산)에서 출생했다. 소년 때(16세) 출가하여 여러 스승을 찾아다니며 치열하게 수행하였고, 지음知音의 도반 의상義相(625-702)과 함께 당나라 유학을 시도하다가 깨달음 성취로 인한 자신감이 생겨 유학을 그만두었으며, 서민 대중들에게는 신뢰와 희망의 대상이었고, 권력과 제도권 승려들에게는 불편하면서도 경외의 대상이었던 인물. 왕족 과부와 결혼하여 신라 십현十賢의 한 사람이 된 설총薛聰을 낳고는 환속하여 비승비속非僧非俗인 거사居士로서 수행하기도 하였던 인물. 특정한 삶의 유형과 진영에 소속되거나 머물지 않으려고 몸부림치듯 내달렸던 인물. 신분이 미천한 대중과 어울리며 그들에게 부처 되는 길을 알리려고 춤과 노래 등 다양하고도 파격적인 실험을 하였고, 심오한 체득과 혜안을 웅혼한 필력으로 종횡무진 글에 담아내어 당대 최고 수준의 불교지성을 동아시아 전역에 흩뿌렸던 인물. 인도의 불교논리학 대가인 진나陳那(Dign?ga)의 문도가 당나라에 왔다가 입수하여 읽고는 감탄하여 산스크리트어로 번역해 인도에 보냈다는 『십문화쟁론十門和諍論』을 지은 인물. 그와의 밀접한 연관에서 한반도에서 찬술된 것으로 보이는 『금강삼매경金剛三昧經』에 관한 최초/최고의 주석인 『금강삼매경론』을 저술하여 자신의 불교 탐구와 안목을 총정리하고 있는 인물. 만년에는 토굴같이 누추한 절(穴寺)에서 수행하다가 그곳에서 삶을 마감하였던 인물. ―현존하는 원효 관련 기록에서 포착되는 단면들이다.

이칭異稱, 진찬眞撰 여부 등을 감안할 때, 대략 80여 부 200여 권이 확인되는 그의 저술의 양과 질은 당시 동아시아를 통틀어 가히 최고 수준이다. 양으로만 보아도 한반도에서 그를 능가하는 경우가 없을 뿐 아니라, 중국의 대저술가였던 천태 지의智?(538-597, 30여 부)나 화엄 법장法藏(643-712, 50여 부), 법상 규기窺基(632-682, 50여 부)도 원효에 비견되기 어렵다. 그의 80여 종 저서 중에서 완본으로 전하는 것이 13종, 잔본殘本이 8종이다. 잔본까지 합하여도 21종 저서가 현존하는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