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문서원 연구총서 42권. 리학과 심학의 논쟁은 맹자와 순자의 심론에서 그 연원을 찾을 수 있으며, 그것의 근본적인 단초는 더 거슬러 올라가면 공자의 ‘학學’과 ‘사思’의 구분에까지 소급되었음을 살펴본다. 향외적으로 ‘학’을 중시하는 공자의 정신이 객관성·합리성을 강조하는 순자와 합치하고, 향내적으로 하나로 관통하여 계통화하려는 공자의 ‘사’ 정신이 자각심의 자율성을 중시하는 맹자와 합치한다.
지금까지 리학과 심학의 논쟁은 상대방의 철학적 관점을 바로 살피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종합 가능성에 관해서도 소극적으로 진행되었다. 오히려 육구연은 주희의 학문을 의론, 시문, 지리라고 비평하였고, 주희는 육구연에 대하여 고자의 철학 혹은 선학이라고 비평하였다. 이러한 상대방에 대한 평가는 문인들에 의하여 계승되었고, 명대에 왕수인은 주희의 학문을 패도의 학문이라고 비평하였으며, 조선유학자들은 양명학에 대하여 이단사설이라는 혹독한 평가를 하였다.
비록 원대에 주륙화회론이 등장하였고, 현대에 웅십력이 나와 왕수인의 치양지와 주희의 격물치지를 종합하려는 시도를 하였지만, 그 결과는 그리 원만한 형태로 나타나지 못하였다. 이러한 배척 양상은 현대의 리학 심학 논쟁 연구에서도 공통적으로 나타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