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운의 초명은 제선(濟宣)이고 아명은 복술(福述)이며 자(字)는 성묵(性默)이다. 1859년에 이름을 제우(濟愚)로 고치고 스스로 호를 지어 수운(水雲)이라 했다. 우리나라 최초의 노비 해방자로서, 여자와 아이를 하느님으로 존중한 인권운동가로서, 봉건주의에 대한 반항자이며 침략주의에 대한 항거자로서 그리고 무엇보다 토착 민주주의의 창시자로서 우리는 수운 최제우(崔濟愚)의 역사적 위상을 늘 새롭게 확인해 보아야 한다. 수운의 역사적 의미는 이미 고정된 과거가 아니라 현재 우리가 어떻게 행동하느냐에 따라 변화하는 미래의 사건이다.
정직하고 관대한 마음과 단순하고 소박한 바탕을 지키기 위한 자기 훈련의 방법을 수운은 “시천주 조화정 영세불망 만사지(侍天主 造化定 永世不忘 萬事知)”라는 열 석자 주문으로 요약하였다. 주문이란 원래 그 한 자 한 자에 헤아릴 수 없는 뜻이 들어 있어서 그것을 외우면 일체의 장애를 제거할 수 있고 크나큰 이익을 얻을 수 있다고 하는 글이다. 『용담유사(龍潭遺詞)』는 1893(계사)년에 간행된 목판본을 대본으로 삼았고 『동경대전(東經大全)』은 1883(계미)년에 목판으로 간행된 경주본을 대본으로 삼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