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리아 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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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blication Date 2007/10/10
Pages/Weight/Size 170*235*20mm
ISBN 9788974833244
Categories 역사
Description
까다로운 인문서를 만화로 옮긴 《카툰 클래식》의 다섯 번째 책. 카이사르의 방대한 독서량과 풍부한 경험, 투철한 사상과 치열했던 삶이 고스란히 닮긴 《갈리아 전기》는 이미 그 값을 매길 수 없을 정도로 우리에게 너무나 소중한 작품이다. 카이사르의 생애와 이 책에 대한 정보는 물론 로마 군대가 왜 강한지, 카이사르를 둘러싼 주요 사건과 인물들을 짚어 보며 그 시대에 대한 이해도 높였다.

광대한 지역을 로마의 발 아래 무릎 꿇린 정복자, 로마 제정의 초석을 굳힌 독재자, 카이사르가 전쟁터에서 글을 썼다. 기원전 58년부터 51년까지 지금의 서유럽에 해당하는 갈리아 지역에서 전쟁을 치르면서 쓴 책, 《갈리아 전기》. 총 8권으로 묶인 이 책은 1권부터 7권까지 카이사르가 직접 적었고, 마지막 8권은 그가 죽은 후 비서인 히르티우스가 써서 추가해, 기원전 51년 초 로마에서 출간됐다. 카이사르는 생전에 많은 글을 썼지만 지금까지 남아 있는 책은 《갈리아 전기》와 루비콘 강을 건너면서 폼페이우스와의 내전을 다룬 《내전기》 단 두 권뿐이다. 두 권 모두 라틴어로 씌었다. 특히 《갈리아 전기》는 ‘라틴 문학의 정수, 전쟁 문학의 고전’으로 이미 오래 전에 문학적 우수성을 인정받았다.
Contents
카이사르의 생애와 <갈리아 전기>
등장인물

카이사르, 전쟁터에서 글을 쓰다

갈리아 전쟁 1년째, 카이사르 42세, 기원전 58년
제1장 헬베티족과의 전쟁
제2장 아리오비스투스와의 전쟁

갈리아 전쟁 2년째, 카이사르 43세, 기원전 57년
제3장 벨가이 정복
로마 군대는 왜 강한가?

갈리아 전쟁 3년째, 카이사르 44세, 기원전 56년
제4장 베네티족과의 해전
갈리아 부족도

갈리아 전쟁 4년째, 카이사르 45세, 기원전 55년
제5장 게르만인과의 대 살육전

갈리아 전쟁 5년째, 카이사르 46세, 기원전 54년
제6장 제2차 브리타니아 원정
제7장 로마군 사상 최대의 참사

갈리아 전쟁 6년째, 카이사르 47세, 기원전 53년
제8장 트레베리족의 반란과 제2차 라인강 도하

갈리아 전쟁 7년째, 카이사르 48세, 기원전 52년
제9장 갈리아의 대반란과 하이두이족의 변절

갈리아 전쟁 8년째, 카이사르 49세, 기원전 51년
제10장 갈리아를 평정하다
카이사르를 둘러싼 주요 사건과 인물들

카이사르 연보
Author
율리우스 카이사르,기획집단 MOIM,신웅
고대 로마 공화정 말기의 군인·정치가. BC 100년 7월 13일에 태어났다. 7월을 가리키는 영어의 July는 카이사르의 이름에서 유래되었다. 민중파인 마리우스와 인척 관계로 원로원파인 술라가 권력을 잡고 있을 때는 민중파인 아내와의 이혼 명령을 거부하고 여러 곳을 떠돌며 숨어 지냈다. BC 78년 술라가 죽은 뒤 로마로 귀환, 정치생활을 시작하였으며 BC 69년에는 재무관, BC 65년 안찰관(按察官)을 거쳐 BC 63년 종교상 최고직인 종신 대신관이 되었다. BC 60년에는 폼페이우스 및 크라수스와 동맹을 맺고 제1차 삼두정치를 시작하였다. BC 58년∼BC 50년, 속주 갈리아의 장관으로서 갈리아 전쟁을 수행, 브리튼과 게르만 족의 영지까지 아우르는 광대한 영토를 대부분 평정하였다.

BC 53년 삼두체제의 한 중심인 크라수스가 동방원정에서 전사함으로써 원로원 보수파와 갈등을 빚기 시작했으며 BC 51년 원로원이 카이사르의 로마 소환과 군대해산을 결의하자, BC 49년 1월에 “주사위는 던져졌다.”는 유명한 말과 함께 갈리아와 이탈리아 국경인 루비콘 강을 건너 로마로 진격함으로써 내전을 시작하였다. BC 45년 3월에는 폼페이우스의 아들까지 진압함으로써 마침내 5년간의 내전을 종결시켰다. BC 46년에 10년 임기의 독재관이 되었고, 곧이어 BC 44년에는 종신 독재관이 되었다. 율리우스력을 제정하고 노예에게 관직을 허용함으로써 로마 시민권을 대폭 확대하는 한편 대규모 토목사업을 벌여 로마를 정비하는 등 개혁정책을 펼쳤다. 그러나 지나친 권력의 집중을 견제하고자 했던 원로원 공화파와 공화정 지지자들에 의해 BC 44년 원로원에서 암살되었다. 그의 나이 56세 때였다.
고대 로마 공화정 말기의 군인·정치가. BC 100년 7월 13일에 태어났다. 7월을 가리키는 영어의 July는 카이사르의 이름에서 유래되었다. 민중파인 마리우스와 인척 관계로 원로원파인 술라가 권력을 잡고 있을 때는 민중파인 아내와의 이혼 명령을 거부하고 여러 곳을 떠돌며 숨어 지냈다. BC 78년 술라가 죽은 뒤 로마로 귀환, 정치생활을 시작하였으며 BC 69년에는 재무관, BC 65년 안찰관(按察官)을 거쳐 BC 63년 종교상 최고직인 종신 대신관이 되었다. BC 60년에는 폼페이우스 및 크라수스와 동맹을 맺고 제1차 삼두정치를 시작하였다. BC 58년∼BC 50년, 속주 갈리아의 장관으로서 갈리아 전쟁을 수행, 브리튼과 게르만 족의 영지까지 아우르는 광대한 영토를 대부분 평정하였다.

BC 53년 삼두체제의 한 중심인 크라수스가 동방원정에서 전사함으로써 원로원 보수파와 갈등을 빚기 시작했으며 BC 51년 원로원이 카이사르의 로마 소환과 군대해산을 결의하자, BC 49년 1월에 “주사위는 던져졌다.”는 유명한 말과 함께 갈리아와 이탈리아 국경인 루비콘 강을 건너 로마로 진격함으로써 내전을 시작하였다. BC 45년 3월에는 폼페이우스의 아들까지 진압함으로써 마침내 5년간의 내전을 종결시켰다. BC 46년에 10년 임기의 독재관이 되었고, 곧이어 BC 44년에는 종신 독재관이 되었다. 율리우스력을 제정하고 노예에게 관직을 허용함으로써 로마 시민권을 대폭 확대하는 한편 대규모 토목사업을 벌여 로마를 정비하는 등 개혁정책을 펼쳤다. 그러나 지나친 권력의 집중을 견제하고자 했던 원로원 공화파와 공화정 지지자들에 의해 BC 44년 원로원에서 암살되었다. 그의 나이 56세 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