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와 자본주의는 근대 이후의 세계를 구성하는 양대 기둥이다. 그러나 두 정치·경제 체제가 지금 같은 모양새를 갖춘 건 오래지 않다. 불과 100년 전만 해도 민주주의는 ‘보통 남성’들만의 민주주의였고, 자본주의는 착취의 현장을 농장에서 공장으로 옮긴 ‘분칠한 노예제’에 불과했다. 그렇다면 계급과 성별에 관계없는 1인1표제, 다시 말해 완전한 보통선거에 기반한 대의민주주의는 어떻게 쟁취되었을까? 8시간 노동제를 비롯해 인간의 생존과 존엄을 보장하는 복지제도는 어떻게 자본주의의 일부로 편입될 수 있었을까?
『세계 진보정당 운동사』는 150년 전 독일 사회민주당을 필두로 세계 곳곳에 등장했던 좌파정당들이야말로 민주주의와 자본주의에 인간의 얼굴을 선사한 주역이었음을 증언하는 비망록이면서, 그 길에서 명멸해간 숱한 혁명가와 개혁가들의 백가쟁명을 담은 실록이다. 1990년대 좌파의 불모지 한국에서 노동자정당 운동의 전위에 서 있었고, 서른 이후의 삶을 진보정당의 이론가이자 실천가로 오롯이 채워냄으로써 ‘한국의 안토니오 그람시’ ‘이론가들의 이론가’로 호명되는 저자는, 공부와 궁리의 여정에서 만난 근대 진보정당사 150년의 풍경과 흔적들을 생생하게 복원해낸다.
이 책은 좌파의 성공과 좌절을 낯간지러운 헌사나 최루성 신파극으로 각색하지 않는다. 저자는, 진보세력이 추구한 숱한 혁명과 개혁의 좌절을 진심으로 가슴 아프게 바라본다는 점에서 갈데없는 좌파지만, 진보정당의 오류와 한계들―예컨대 좌파가 곧잘 범하는 ‘급진적 언어-보수적 (혹은 소극적) 실천’이라는 모순―을 누구보다 날카롭게 지적한다는 점에서 설핏 우파적 면모마저 드러낸다. 이런 균형 감각에 크게 힘입어, 이 책은 장대한 시공간을 종횡하면서도 진보정당과 세계의 운명을 가른 결정적 순간들을 치우침과 왜곡 없이 재현한다. 따라서 독자들은, 볼품없는 동네 선술집의 노동자 모임에서 출발한 진보정당들이, 소수파적 핸디캡을 잔뜩 지니고서도 굽힘 없는 신념과 명민한 전략으로 끝끝내 한 나라의 집권당에 도달하는 장면에서 경의와 자부심을 가져도 좋을 것이다. 반대로 혁명과 집권에 성공한 뒤 우왕좌왕하는 장면에서 애써 환멸을 품지 않아도 좋을 것이다. 반복되는 역사에서 손위 좌파정당의 실패는 늘 그다음 세상의 진일보에 질료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좌파에 대한 오랜 편견―예컨대 분열과 비관주의―을 정면으로 깨부수는 것은 물론, 한때 가장 보잘것없었던 이들이 지금 우리가 사는 세계를 기획하고 만들어낸 주인공임을 보여주는 대반전 드라마이기도 하다.
Contents
서문
-역사를 통해 만나는 진보정당운동
I 19세기 말부터 1차 세계대전 전까지
1 지금도 반복되는 한 세기 전 진보정당의 고뇌1
-최초의 진보정당 독일 사회민주당
2 지금도 반복되는 한 세기 전 진보정당의 고뇌2
-베른슈타인의 길과 룩셈부르크의 길
3 ‘혁명적 개혁주의’라는 이상 혹은 몽상?
-장 조레스와 프랑스 사회당
4 변방에서 미래를 준비하다
-1912~1914년의 러시아 사회민주노동당 다수파
II 1차 세계대전과 2차 세계대전 사이
5 역사의 ‘거름’이 되어야 할 때와 ‘추수’에 나서야 할 때
-2차 세계대전 전의 이탈리아 사회당·공산당
6 독일 노동계급은 왜 나치에게 패배했는가?
-양차 대전 사이의 독일 사회민주당·공산당
7 인민전선운동, 그 절반의 성공
-양차 대전 사이의 프랑스 사회당·공산당과 인민전선
8 미국에는 왜 사회주의정당이 없는가?
-미국 사회당의 도전과 좌절
9 ‘붉은 빈’- 원조 ‘제3의 길’
-2차 세계대전 전의 오스트리아 사회민주노동당
10 스웨덴 복지국가, 어떻게 가능했나?
-2차 세계대전 전의 스웨덴 사회민주노동당
III 2차 세계대전 이후부터 20세기 말까지
11 혁명보다 어려운 개혁
-2차 세계대전 후의 이탈리아 공산당
12 칠레의 전투는 계속된다
-칠레 사회당·공산당과 아옌데 인민연합정부
13 신자유주의의 등장에 맞선 구조개혁 좌파
-영국 노동당의 벤좌파운동
14 일본 사회당의 조용한 죽음
-일본 사회당
사회학을 공부하고 진보 정당 운동의 정책과 교육 활동에 참여해 왔습니다. 지금은 출판·연구 집단 산현재 기획 위원으로 일하면서, 더 나은 세상을 위해 이 사회가 어떻게 달라져야 하는지 연구하고 글을 씁니다. 그동안 쓴 어린이책으로 《우리가 몰랐던 현대사》가 있으며, 《세계 진보정당 운동사》, 《레프트 사이드 스토리》, 《장석준의 적록서재》 등을 쓰고 《디그로쓰》, 《코로나, 기후, 오래된 비상사태》, 《유럽민중사》, 《도서관과 작업장》 등을 우리말로 옮겼습니다.
사회학을 공부하고 진보 정당 운동의 정책과 교육 활동에 참여해 왔습니다. 지금은 출판·연구 집단 산현재 기획 위원으로 일하면서, 더 나은 세상을 위해 이 사회가 어떻게 달라져야 하는지 연구하고 글을 씁니다. 그동안 쓴 어린이책으로 《우리가 몰랐던 현대사》가 있으며, 《세계 진보정당 운동사》, 《레프트 사이드 스토리》, 《장석준의 적록서재》 등을 쓰고 《디그로쓰》, 《코로나, 기후, 오래된 비상사태》, 《유럽민중사》, 《도서관과 작업장》 등을 우리말로 옮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