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론

자유에 관한 인류 최고의 보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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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blication Date 2011/04/25
Pages/Weight/Size 152*208*20mm
ISBN 9788974745615
Categories 청소년 > 청소년 인문/사회/경제
Description
우리는 흔히 자유에 대한 억압을 생각할 때 ‘폭력과 강압을 앞세운 독재 권력’을 쉽게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사실 인류의 역사는 이런 지배자의 권력 남용에 대한 견제와 투쟁으로 이어져 왔고, 그 결과 오늘날의 자유 민주주의 체제가 성립되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자유 민주주의 사회에서 이런 독재 권력은 대다수 국민의 저항에 부딪칠 수밖에 없기 때문에 더 이상 존립하기는 어렵다. 그렇다면 대중 민주주의가 자리 잡은 오늘날, 과연 개인의 자유는 충분히 보장되고 있는 것일까? 이같이 개인의 자유에 대한 의문을 최초로 제기한 사람이 바로 이 책을 쓴 존 스튜어트 밀이다.

19세기 영국의 철학자 밀은 이 책을 통해 개인의 자유, 특히 사상과 언론의 자유가 권력이나 사회의 여론에 의해 침해되어서는 안 된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러므로 밀이 지향하고자 했던 자유 민주주의의 본질은 다른 의견, 특히 소수 의견에 대한 존중과 배려에 있던 것이다. 물론 이런 개인의 자유는 “다른 사람에게 해를 주지 않는 한”이라는 사회적 제약이 따르지만 밀이 보다 무게를 두었던 것은 사회적 공익보다는 개인의 자유였다. 또한 밀은 대중 민주주의 사회가 될수록 정치 선동이나 대중 여론 등을 통해 개인 의사에 대한 통제나 제한이 강화될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하며 우려했는데, 이 점은 대중 민주주의가 일반화된 모든 사회에서 반면교사가 될 것이다. 이처럼 민주주의와 자유의 문제를 다양한 측면에서 살펴보며 그 개념을 명확히 세우고자 했기 때문에, 「자유론」은 오늘날 대다수 국가가 지향하는 자유 민주주의 체제의 이론적 토대를 세웠다고 평가되는 그야말로‘살아 있는’고전이라고 할 수 있다.
Contents
청소년 철학창고를 펴내며
들어가는 말

제1장 서론
(1) 자유란 국가 권력에 대한 제한이다
(2) 국가 권력을 제한하는 두 가지 방법
(3) 선거에 의해 선출된 국민의 정부
(4) 사회의 지배적인 여론에 이한 전제(專制)
(5) 사회적 관습과 대중의 여론은 항상 옳은 것일까?
(6) 도덕은 선호와 혐오의 감정에 따라 결정된다
(7) 종교인들은 다른 신앙에 관용을 베푸는가?
(8) 사람들의 의견을 결정하는 일관된 규칙이나 원리는 없다
(9) 타인의 자유에 대한 정당한 간섭은 자기방어에 있다
(10) 인간의 자유에 대한 고유한 영역
(11) 증가일로에 있는, 개인에 대한 국가 권력의 간섭

제2장 사상과 언론의 자유
(1) 강제력, 그 자체는 정당화 될 수 없다
(2)‘세상’일반의 절대 무오류성에 대한 믿음
(3) 토론의 자유와 비판에 대해 열려있는 입장이 진리를 향한 길이다
(4) 오류 가능성을 지닌 인간이 진리를 발견해 가는 최선의 방법
(5) 의견에서 진실성과 유용성은 분리할 수 없다
(6) 의견의 진실성과 유용성은 모두 중요하다.
(7) 절대 무오류성의 가정이 빚어낸 역사상의 오류들
소크라테스의 사형|예수의 사형|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그리스도교 박해
(8) 내세의 신앙을 고백하지 않는 사람은 법정에서 증언할 수 없는가?
(9) 활동적인 지성인의 몰락과 여론에 영합하려는 기회주의자들의 탄생
(10) 소수 의견의 침묵은 사상의 답보로 이어진다
(11) 살아 있는 진리와 죽은 독단
(12) 진리의 발견에 관한 키케로의 교훈
(13) 보통 사람들은 지지하는 의견의 논거를 배우지 않아도 되는가?
(14) 종교적 교의의 역사적 사례
(15) 진리를 얻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토론이다
(16) 다양한 의견들의 가치
(17) 그리스도교 도덕의 문제는 무엇인가?
(18) 의견의 자유와 발표의 자유가 인류 복지에 필요한 네 가지 이유
(19) 공공 토론에서 유념해야 할 사항

제3장 복지의 한 요소로서의 개성
(1) 개인의 자유와 그 행위에 대한 제한은 어디까지인가?
(2) 개성의 중요성
(3) 개성은 인간을 가장 아름답게 만든다
(4) 개성과 자발성 부족에서 나타나는 문제와 칼뱅주의의 사례
(5) 인간이 숭고한 아름다움의 대상이 되는 이유는 개성의 발전 때문이다
(6) 현대의 대중 여론은 개성을 억압한다
(7) 여론에 대한 순종과 관습의 독재는 사회의 정체를 가져온다
(8) 개성을 찾아야할 시점은 바로 지금이다

제4장 개인에 대한 사회적 권위의 한계
(1) 개인에게만 관계된 일의 결정권은 그 자신에게 있다
(2) 개인의 자유에 대한 충분한 배려와 타인에게 해를 끼치는 행위에 대한 제재
(3) 도덕적 비난과 사회적 제재의 차이
(4) 개인적 행위에 간섭하는 공중(公衆)의 오류 가능성
개인의 자유를 침해하는 공중의 오류 사례 1 : 종교
개인의 자유를 침해하는 공중의 오류 사례 2 : 제도
개인의 자유를 침해하는 공중의 오류 사례 3 : 모르몬교

제5장 원리의 적용
(1) 두 원리는 무엇인가?
(2) 독극물의 제조와 판매에 대한 공권력의 한계는 어디까지인가?
(3) 술 판매에 관한 공권력의 한계는 무엇인가?
(4) 일반 원칙에 대한 예외
(5) 자유의 원리가 잘못 적용된 경우: 어린이 교육
(6) 정부의 간섭이 늘어날수록 자유에 대한 침해는 커진다
(7) 이상적인 정부에 대한 제안

『자유론』, 자유에 대한 끊임없는 질문
존 스튜어트 밀 연보
Author
존 스튜어트 밀,이진희
영국의 철학자이자 경제학자인 밀은 1806년, 스코틀랜드 출신의 철학자이며 경제학자였던 제임스 밀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아주 어릴 때부터 그에게 극도로 엄격한 영재교육을 시켰다. 그 결과 밀은 3살 때부터 그리스어를 배워서 8살에 헤로도토스와 플라톤의 저작들을 원어로 읽었고, 8살부터는 라틴어를 배워서 오비디우스 등이 쓴 라틴어 고전도 읽었다. 12살부터는 스콜라 철학의 논리학을 공부했고, 아리스토텔레스의 논리학 저작들을 원어로 읽었다. 13살 때는 애덤 스미스와 데이비드 리카도의 저작을 통해 정치경제학을 공부했다. 14살 때는 프랑스에서 1년을 지내면서 몽펠리에 대학에서 화학, 논리학, 고등수학에 관한 강의를 들었다. 17세 때인 1823년에는 영국 동인도 회사에 입사하여 아버지의 조수로 일했으며, 그 후 1858년까지 재직하며 연구와 저술 활동을 병행했다.

20살 무렵 밀은 심각한 정신적 위기에 부딪힌다. 신경쇠약으로 우울증에 빠져 자살을 생각할 정도였다. 하지만 그는 시인 윌리엄 워즈워스의 작품을 읽고 다시 재기했다. 이때부터 밀의 사상은 변하기 시작했다. 그는 엄격한 공리주의적 이성 제일주의의 문제점을 깨달았고, 사색과 분석뿐만 아니라 수동적인 감수성이 능동적 능력 못지않게 중요하다는 사실을 인식하게 되었다. 이후 그는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을 비판하고, 자본주의의 모순을 바로잡기 위해 제한적인 정부 개입을 옹호하는 경제학 사상을 주장했다. 그러면서 사회주의 사상과, 자유주의 정치철학의 발전에 크게 이바지했다.

밀은 행동하는 사상가였다. 그는 사상에만 갇혀 있지 않았다. 1865년부터 1868년까지 세인트앤드루스 대학의 학장으로 재임했고, 같은 기간 동안 런던 웨스트민스터에서 하원의원으로 활동했다. 1866년, 그는 하원의원으로서 헌정사상 최초로 여성 참정권을 주장했고, 보통 선거권의 도입 같은 선거제도의 개혁을 촉구했다. 또한 노동조합과 협동농장을 중심으로 한 사회개혁과 아일랜드의 부담 경감 등도 주장했다.

주요 저서로 『논리학 체계』(1843), 『정치경제학 원리』(1848), 『자유론』(1859), 『대의정부론』(1861), 『공리주의』(1863), 『자서전』(1873) 등이 있다.
영국의 철학자이자 경제학자인 밀은 1806년, 스코틀랜드 출신의 철학자이며 경제학자였던 제임스 밀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아주 어릴 때부터 그에게 극도로 엄격한 영재교육을 시켰다. 그 결과 밀은 3살 때부터 그리스어를 배워서 8살에 헤로도토스와 플라톤의 저작들을 원어로 읽었고, 8살부터는 라틴어를 배워서 오비디우스 등이 쓴 라틴어 고전도 읽었다. 12살부터는 스콜라 철학의 논리학을 공부했고, 아리스토텔레스의 논리학 저작들을 원어로 읽었다. 13살 때는 애덤 스미스와 데이비드 리카도의 저작을 통해 정치경제학을 공부했다. 14살 때는 프랑스에서 1년을 지내면서 몽펠리에 대학에서 화학, 논리학, 고등수학에 관한 강의를 들었다. 17세 때인 1823년에는 영국 동인도 회사에 입사하여 아버지의 조수로 일했으며, 그 후 1858년까지 재직하며 연구와 저술 활동을 병행했다.

20살 무렵 밀은 심각한 정신적 위기에 부딪힌다. 신경쇠약으로 우울증에 빠져 자살을 생각할 정도였다. 하지만 그는 시인 윌리엄 워즈워스의 작품을 읽고 다시 재기했다. 이때부터 밀의 사상은 변하기 시작했다. 그는 엄격한 공리주의적 이성 제일주의의 문제점을 깨달았고, 사색과 분석뿐만 아니라 수동적인 감수성이 능동적 능력 못지않게 중요하다는 사실을 인식하게 되었다. 이후 그는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을 비판하고, 자본주의의 모순을 바로잡기 위해 제한적인 정부 개입을 옹호하는 경제학 사상을 주장했다. 그러면서 사회주의 사상과, 자유주의 정치철학의 발전에 크게 이바지했다.

밀은 행동하는 사상가였다. 그는 사상에만 갇혀 있지 않았다. 1865년부터 1868년까지 세인트앤드루스 대학의 학장으로 재임했고, 같은 기간 동안 런던 웨스트민스터에서 하원의원으로 활동했다. 1866년, 그는 하원의원으로서 헌정사상 최초로 여성 참정권을 주장했고, 보통 선거권의 도입 같은 선거제도의 개혁을 촉구했다. 또한 노동조합과 협동농장을 중심으로 한 사회개혁과 아일랜드의 부담 경감 등도 주장했다.

주요 저서로 『논리학 체계』(1843), 『정치경제학 원리』(1848), 『자유론』(1859), 『대의정부론』(1861), 『공리주의』(1863), 『자서전』(1873)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