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요항丁耀亢(1599-1669)은 명나라 말 청나라 초 문학가이며, 자는 서생이고 호는 야학, 자양노인, 목계도인, 요양학 등으로 알려져 있다. 조부 정순과 부친 정유녕은 명나라 관리로 명문가 집안의 다섯형제 중에 막내로 태어났으며 재주가 뛰어나고 호탕한 기질을 소유하였다. 18세에 수재에 급제하고, 20세에 제생으로 승진하였으며, 명나라 말기에 동오로 유학하였다. 그 후 청나라 관리에 임명되어 공신들의 교육을 담당하였다. 그러나 그는 현실 정치에 참여하기를 꺼려 귀향하여 저술에 전념하였다. 저서로는 육방시초 시집 등 여러 작품이 있으나 명나라와 청나라의 전쟁과 청왕조의 분서금지로 저서에 자신의 이름을 표기하지 않아 300년간 세상에 알려지지 않다. 최근 발굴 고증을 통해 정요항의 저서로 밝혀져 명나라 말기와 청나라 초기의 문학사 연구의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야학노인 野?老人 정요항
정요항丁耀亢(1599-1669)은 명나라 말 청나라 초 문학가이며, 자는 서생이고 호는 야학, 자양노인, 목계도인, 요양학 등으로 알려져 있다. 조부 정순과 부친 정유녕은 명나라 관리로 명문가 집안의 다섯형제 중에 막내로 태어났으며 재주가 뛰어나고 호탕한 기질을 소유하였다. 18세에 수재에 급제하고, 20세에 제생으로 승진하였으며, 명나라 말기에 동오로 유학하였다. 그 후 청나라 관리에 임명되어 공신들의 교육을 담당하였다. 그러나 그는 현실 정치에 참여하기를 꺼려 귀향하여 저술에 전념하였다. 저서로는 육방시초 시집 등 여러 작품이 있으나 명나라와 청나라의 전쟁과 청왕조의 분서금지로 저서에 자신의 이름을 표기하지 않아 300년간 세상에 알려지지 않다. 최근 발굴 고증을 통해 정요항의 저서로 밝혀져 명나라 말기와 청나라 초기의 문학사 연구의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