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민(德岩 金東玟, 1931년생, 金海김씨 京파의 후손)은 개성(開城)에서 초등학교와 6년제 중학교를 졸업하고, 당시 군산(群山)에 있던 한국해양대학교 항해과에 입학했다. 625전쟁이 발발함에 따라 학업을 중단하고, 육군에 지원 입대하여 단기 훈련을 받은 후 소위 및 소대장으로 전쟁에 참여했다. 전쟁 후 제대가 늦어지는 탓에, 방향을 바꿔 동아대학교에서 야간 학생 신분으로 토목공학과를 졸업했다. 그 뒤로 환경공학을 전공하면서 미국 University of California, Berkeley에서 석사학위를, 네덜란드 Delft University of Technology에서 Diploma 학위를, 그리고 고려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1968년에 교수직을 시작했고, 1996년 서울시립대학교에서 정년퇴직 했다(환경공학부 명예교수). 환경공학 제1세대로서, 재직중 나라 최초의 환경공학과와 대한환경공학회를 창설했고(초대 및 제2대 회장), 국 가와 서울시의 환경기술분야 제도 마련을 도왔고, 초기의 수질오염방지 시설 설계 및 설계자문을 하는 등, 나라 안에 환경공학분야의 학문과 기술과 제도의 초석을 놓고 다지는 일을 수행했다.
그런 일과는 무관하게 소년시절부터, 습관적으로 누가 시키지도 않은 계율적 삶을 살았고, 중년기까지 무슨 짓을 하는지도 모르면서 늘 혼자 명상을 했다. 퇴직 후에는 서울의 큰 사찰 선원에 다니면서 수행을 했다.
김동민(德岩 金東玟, 1931년생, 金海김씨 京파의 후손)은 개성(開城)에서 초등학교와 6년제 중학교를 졸업하고, 당시 군산(群山)에 있던 한국해양대학교 항해과에 입학했다. 625전쟁이 발발함에 따라 학업을 중단하고, 육군에 지원 입대하여 단기 훈련을 받은 후 소위 및 소대장으로 전쟁에 참여했다. 전쟁 후 제대가 늦어지는 탓에, 방향을 바꿔 동아대학교에서 야간 학생 신분으로 토목공학과를 졸업했다. 그 뒤로 환경공학을 전공하면서 미국 University of California, Berkeley에서 석사학위를, 네덜란드 Delft University of Technology에서 Diploma 학위를, 그리고 고려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1968년에 교수직을 시작했고, 1996년 서울시립대학교에서 정년퇴직 했다(환경공학부 명예교수). 환경공학 제1세대로서, 재직중 나라 최초의 환경공학과와 대한환경공학회를 창설했고(초대 및 제2대 회장), 국 가와 서울시의 환경기술분야 제도 마련을 도왔고, 초기의 수질오염방지 시설 설계 및 설계자문을 하는 등, 나라 안에 환경공학분야의 학문과 기술과 제도의 초석을 놓고 다지는 일을 수행했다.
그런 일과는 무관하게 소년시절부터, 습관적으로 누가 시키지도 않은 계율적 삶을 살았고, 중년기까지 무슨 짓을 하는지도 모르면서 늘 혼자 명상을 했다. 퇴직 후에는 서울의 큰 사찰 선원에 다니면서 수행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