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仁)의 재발견

사랑과 협력을 이상적 가치로서 찬미할지라도 어느새 회의적 물음이 그림자처럼 따라붙는다. 과연 우리에게 사랑하고 협력할 겨를이 있는가? 경쟁이 만연한 현실을 보고서도 사랑과 협력이 추구할 만한 가치라고 말할 수 있을까? 오늘날 삼포세대에게 사랑이란 물정 모르는 감상주의자의 헛된 정열이나 여유로운 자라야 누릴 수 있는 사치 정도로 치부된다. 이기적 전략이 가득한 정글 사회에서 사랑과 협력은 얻기 어려운 고원한 이상으로 여겨진다. 사랑과 협력을 갈구하는 만큼 결실을 얻지 못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사랑과 협력에 관한 회의적 물음은 이상과 현실 간의 괴리를 웅변하는 것처럼 보인다.

철학사를 보더라도 사랑과 협력에 대한 찬미와 회의의 시선은 동전의 양면처럼 병존한다. 전통 사상에서 사랑과 협력의 가치를 아우르는 개념은 인(仁)이다. 『논어』나 『맹자』를 펼쳐보면 인은 가장 중요한 가치로서 강조된다. 공자는 군자라면 넘어지는 사이에도 반드시 인을 지켜야 한다고 말한다. 맹자가 실천 덕목으로서 제시하는 인의예지 사덕 중에서 인은 맨 앞에 있다. 인을 중시하는 공맹유학 전통은 조선시대 성리학에 이르기까지 지속된다. 이처럼 인 사상이 전개되는 동안 그에 관한 회의적 비판도 함께 성장한다. 도가·법가·묵가 등은 인 사상에 대해 현실적이지 못하다고 신랄하게 비판한다. 이들의 비판적 관점에 의하면 인 사상은 권위주의적 이데올로기이거나 현실 문제 해결에 적용할 수 없는 몽상적 낭만에 지나지 않는다. 비정한 현실을 고려한다면 사랑과 협력은 당분간 제쳐두어야 한다는 현실적 회의주의가 인 사상의 실효성에 대해 지속적으로 문제를 제기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