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대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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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788974162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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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blication Date 2018/01/15
Pages/Weight/Size 148*210*35mm
ISBN 9788974162511
Categories 소설/시/희곡 > 중국소설
Description
장편소설 『붉은 대문』은 『경화연운』, 『폭풍 속의 나뭇잎(A Leaf in the Storm)』과 더불어 린위탕의 ‘삼부작’으로 불린다. 그러나 『붉은 대문』의 인물이나 줄거리는 다른 두 소설과 별다른 관련이 없고 상대적으로 독립적이다. 이 소설은 상하이 《신공보》의 시안 주재 기자 리페이와 사범대학 여학생 두러우안의 사랑 이야기를 담고 있다. ‘날 비(飛)’를 사용하는 리페이는 이름자 그대로 역마살이 끼어서 신장 위구르 지역까지 취재를 갔다가 전쟁 때문에 위험에 빠지게 된다. 두러우안은 외유내강의 여성으로 사랑하는 리페이를 위해 모든 것을 헌신한다. 두 사람은 천신만고 끝에 마침내 행복한 가정을 이루게 된다. 이 소설은 단순한 연애 소설이 아니라 여러 가지 복선을 깔고 있으며 독자들에게 많은 사색의 공간을 남겨준다.
Contents
작가의 말

제1부 대부관저
제2부 만주 손님
제3부 산차이 별장
제4부 금지옥엽의 수난
제5부 란저우
제6부 귀환

역자의 말
Author
린위탕,윤해연,윤성룡
1895~1976의 인물로 소설가, 수필가, 언어학자였다. 복건성 출생. 기독교 집안에서 태어나 이상주의자이며 낙천주의자였던 아버지 영향을 많이 받고 자랐다. 영어에 관심이 많아 상해 성요한대학에서 언어학을 공부했다. 북경 청화학교 영어교사로 3년을 마치고 미국 하버드대학 비교문화연구소에서 석사학위를 받았으나 지원금이 끊기는 바람에 프랑스로 건너가 중국인 이주노동자들에게 글을 가르쳤다. 그 후 독일 예나대학과 라이프치히대학에서 언어학을 전공하고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북경대학 교수로 초빙되어 문학비평과 음운학을 가르치면서 왕성한 집필활동을 시작했다.

1924년에 노신(魯迅)을 만나 그에게 많은 감화를 받는다. 군벌통치의 폐해를 고발하는 노신의 사상에 호응하면서 둘은 모든 군벌의 지명수배자가 되어 북경을 떠나 복건성 하문대학으로 자리를 옮겼다. 노신과 교류한 이 시기는 임어당의 문학 생애에 있어서 가장 진취적인 시기였다. 1930년대부터 중국어 외에도 영어로 글을 쓰고 발표했다. 1936년 뉴욕으로 갔고, 외국 독자들에게 중국을 소개하는 《생활의 예술》(우리에게는 《생활의 발견》으로 잘 알려져 있다)이 그 다음해에 미국, 영국, 캐나다에서 출간되었다. 이후에도 대외에 중국을 알리는 작업을 계속하여 중국 고전을 영어로 번역했다. 1948년 유네스코 예술부장, 1954년 싱가포르 난양대학 총장을 지냈다. 1965년 이후 대만에 정착하였고 1968년, 1970년 서울에서 열린 국제대학총장협회 회의와 제37차 국제펜클럽대회에 참가하여 강연을 하기도 하였다. 1976년 82세의 나이로 홍콩에서 생을 마쳤다. 작품으로는《폭풍 속의 나뭇잎》,《붉은 대문》등이 있다.
1895~1976의 인물로 소설가, 수필가, 언어학자였다. 복건성 출생. 기독교 집안에서 태어나 이상주의자이며 낙천주의자였던 아버지 영향을 많이 받고 자랐다. 영어에 관심이 많아 상해 성요한대학에서 언어학을 공부했다. 북경 청화학교 영어교사로 3년을 마치고 미국 하버드대학 비교문화연구소에서 석사학위를 받았으나 지원금이 끊기는 바람에 프랑스로 건너가 중국인 이주노동자들에게 글을 가르쳤다. 그 후 독일 예나대학과 라이프치히대학에서 언어학을 전공하고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북경대학 교수로 초빙되어 문학비평과 음운학을 가르치면서 왕성한 집필활동을 시작했다.

1924년에 노신(魯迅)을 만나 그에게 많은 감화를 받는다. 군벌통치의 폐해를 고발하는 노신의 사상에 호응하면서 둘은 모든 군벌의 지명수배자가 되어 북경을 떠나 복건성 하문대학으로 자리를 옮겼다. 노신과 교류한 이 시기는 임어당의 문학 생애에 있어서 가장 진취적인 시기였다. 1930년대부터 중국어 외에도 영어로 글을 쓰고 발표했다. 1936년 뉴욕으로 갔고, 외국 독자들에게 중국을 소개하는 《생활의 예술》(우리에게는 《생활의 발견》으로 잘 알려져 있다)이 그 다음해에 미국, 영국, 캐나다에서 출간되었다. 이후에도 대외에 중국을 알리는 작업을 계속하여 중국 고전을 영어로 번역했다. 1948년 유네스코 예술부장, 1954년 싱가포르 난양대학 총장을 지냈다. 1965년 이후 대만에 정착하였고 1968년, 1970년 서울에서 열린 국제대학총장협회 회의와 제37차 국제펜클럽대회에 참가하여 강연을 하기도 하였다. 1976년 82세의 나이로 홍콩에서 생을 마쳤다. 작품으로는《폭풍 속의 나뭇잎》,《붉은 대문》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