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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도덕 교육강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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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788973815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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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blication Date 2010/06/14
Pages/Weight/Size 128*188*30mm
ISBN 9788973815753
Description
세 차례나 노벨 문학상 후보에 오른 미시마 유키오의 에세이집

일본 문학의 대표주자 미시마 유키오가 대중 여성주간지 《주간 명성》에 연재한 이야기를 한 권의 책으로 엮었다. 작가는 ‘남에게 폐를 끼치고 죽어라’ ‘친구를 배신하라’ ‘약자를 괴롭혀라’ ‘약속을 지키지 마라’ 등 기존의 도덕을 깡그리 무시하는 과감한 이야기를 전한다. 현대를 향한 날카로운 풍자와 예술에 대한 동경이 그의 글 속에 녹아 있다.

미시마 유키오는 우리 사회에서 '부도덕'하다고 매도되는 것들에 대한 시선에 관심을 가진다. 이를 통해 산업화 초기, 일본 사회 곳곳에 만연해 있는 부도덕성을 날카롭게 파헤치고 역(逆)으로 부도덕이라고 매도되는 것들의 진실 혹은 그 진정성을 독설적으로 풀어냈다. 그의 소설에서 나타나지 않는 기지와 역설, 웃음을 발견하는 재미도 있다. 이 책을 통해 인간의 본질을 꿰뚫는 미시마 유키오의 날카로운 통찰을 읽어낼 수 있을 것이다.
Contents
모르는 남자와도 술집에 갈 수 있다
선생을 무시하라, 속으로만
거짓말을 많이 하라
남에게 폐를 끼치고 죽어라
도둑의 효용에 대해
처녀는 도덕적인가
처녀인지 아닌지를 문제 삼지 마라
동정은 한시라도 빨리 버려라
여자한테 밥을 사게 하라
마음껏 참견하라
스캔들을 이용하라
친구를 배신하라
약자를 괴롭혀라
자만심을 가져라
유행에 미쳐라
맞선에 나가서 휘둘리지 마라
약속을 지키지 마라
“죽여버려!”라고 소리쳐라
청년이여, 나약해져라
수프는 소리 내서 먹어라
죄는 남에게 덮어씌워라
예쁜 여동생을 이용하라
여자에게 폭력을 사용하라
선생은 교실에서 협박하라
치한을 환영하라
은혜는 잊어라
남의 불행을 기뻐하라
악덕을 많이 쌓아라
싸움 자랑을 하라
공치사를 늘어놓아라
독의 즐거움
‘선수’란
0의 공포
도덕이 없는 나라
죽은 뒤에 험담하라
연예계에 대한 동경
구두쇠를 생활신조로 삼아라
미사여구를 구사하는 아가씨
비평과 욕설에 대해서
바보는 죽어야만……
고백하지 말지어다
남의 실수를 보고 웃어라
Who knows?
소설가를 존경하지 마라
오, 예스
도색의 정의
성적 노이로제
서비스 정신
자유와 공포
남에게 꼬리를 잡혀라
칼부림 삼매경에 대하여
귀신의 계절
육체의 덧없음
남을 기다리게 하라
타산지석을 버려라
최면술 유행
독을 품은 말
자식이 있음을 숨겨라
매사에 투덜거려라·
인기 있다는 것은 무엇인가
플라스틱 이빨
치매와 빨간 셔츠
가짜 시대
‘답다’와 ‘냄새가 나다’
젊음 혹은 청춘
애인을 교환하라
끝이 나쁘면 모든 게 나쁘다
Author
미시마 유키오,이수미
전후 일본문학을 대표하는 탐미주의 작가다. 미시마 유키오는 1925년 도쿄에서 고위 공무원의 아들로 태어났다. 본명은 히라오카 기미다케平岡公威이다. 1944년 가쿠슈인 고등학교를 수석으로 졸업하고, 엘리트 관료 집안에 맞는 진로를 선택하라는 아버지의 권유로 도쿄대학 법학부에 입학한다. 1941년 「꽃이 한창인 숲」을 문예지에 발표하면서 ‘미시마 유키오’라는 필명을 쓰기 시작했다. 1944년 가쿠슈인 고등부를 수석으로 졸업한 뒤 도쿄 제국대학 법학부에 입학했다. 1947년 대학 졸업 후 대장성의 관료가 되었지만 이듬해 전업 작가가 되기 위해 퇴직했다. 열세 살 때부터 필명을 만들어 왕성한 창작활동을 했던 미시마가 문단에 정식으로 데뷔한 것은 1946년에 쓴 단편 「담배」가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추천으로 『인간』지에 실리면서부터이다.

1949년 대학을 졸업한 미시마는 대장성 금융국에서 근무하지만 공무원 사회의 관료주의를 이기지 못한 채 일 년 만에 사표를 내고 전업작가의 길을 걷게 된다. 그 무렵에 쓴 장편 『가면의 고백』을 통해 일본 주요 작가의 반열에 올라서게 된다. 그는 화려한 문장과 미의식을 바탕으로 『사랑의 갈증』, 『푸른 시절』, 『금색』 등의 수작을 잇달아 발표했으며, 1957년 『금각사』가 요미우리 문학상을 수상하면서 문학의 절정기를 맞이한다. 『금각사』의 성공 이후 미시마 유키오는 수차례 노벨 문학상 후보에 오르며 국제적 작가로 자리매김했다. 1961년에는 2·26 쿠데타 사건을 소설화한 단편 「우국」을 발표했는데, 이는 자신의 종말을 예언한 작품이기도 하다.

1970년 그의 마지막 작품이며, 불후의 명작으로 꼽히는 4부작 장편소설 『풍요의 바다』 마지막 편을 출판사에 넘긴 미시마는 자신의 추종자를 데리고 1970년 11월 25일 일본 자위대 주둔지에 난입하여 자위대의 궐기를 촉구하는 연설을 한 후 대중 앞에서 할복하여 일본 국내는 물론 세계에 적지 않은 충격을 던지면서 45세의 생을 마감했다.
전후 일본문학을 대표하는 탐미주의 작가다. 미시마 유키오는 1925년 도쿄에서 고위 공무원의 아들로 태어났다. 본명은 히라오카 기미다케平岡公威이다. 1944년 가쿠슈인 고등학교를 수석으로 졸업하고, 엘리트 관료 집안에 맞는 진로를 선택하라는 아버지의 권유로 도쿄대학 법학부에 입학한다. 1941년 「꽃이 한창인 숲」을 문예지에 발표하면서 ‘미시마 유키오’라는 필명을 쓰기 시작했다. 1944년 가쿠슈인 고등부를 수석으로 졸업한 뒤 도쿄 제국대학 법학부에 입학했다. 1947년 대학 졸업 후 대장성의 관료가 되었지만 이듬해 전업 작가가 되기 위해 퇴직했다. 열세 살 때부터 필명을 만들어 왕성한 창작활동을 했던 미시마가 문단에 정식으로 데뷔한 것은 1946년에 쓴 단편 「담배」가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추천으로 『인간』지에 실리면서부터이다.

1949년 대학을 졸업한 미시마는 대장성 금융국에서 근무하지만 공무원 사회의 관료주의를 이기지 못한 채 일 년 만에 사표를 내고 전업작가의 길을 걷게 된다. 그 무렵에 쓴 장편 『가면의 고백』을 통해 일본 주요 작가의 반열에 올라서게 된다. 그는 화려한 문장과 미의식을 바탕으로 『사랑의 갈증』, 『푸른 시절』, 『금색』 등의 수작을 잇달아 발표했으며, 1957년 『금각사』가 요미우리 문학상을 수상하면서 문학의 절정기를 맞이한다. 『금각사』의 성공 이후 미시마 유키오는 수차례 노벨 문학상 후보에 오르며 국제적 작가로 자리매김했다. 1961년에는 2·26 쿠데타 사건을 소설화한 단편 「우국」을 발표했는데, 이는 자신의 종말을 예언한 작품이기도 하다.

1970년 그의 마지막 작품이며, 불후의 명작으로 꼽히는 4부작 장편소설 『풍요의 바다』 마지막 편을 출판사에 넘긴 미시마는 자신의 추종자를 데리고 1970년 11월 25일 일본 자위대 주둔지에 난입하여 자위대의 궐기를 촉구하는 연설을 한 후 대중 앞에서 할복하여 일본 국내는 물론 세계에 적지 않은 충격을 던지면서 45세의 생을 마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