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문호 도스토옙스키(1821-1881)와 톨스토이(1828-1910)가 같은 나라에서 동시대를 살았음에도 단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가? 러시아가 세계에서 가장 넓은 나라라고 해도 일류작가들이 활동하는 문단은 좁다. 동료작가들과 평론가들은 물론 출판업계의 편집장들, 또 사회 유명인사 등?두 작가 주위의 지인들은 대개 다 서로 친분이 있었다. 게다가 작가의 아내들끼리도 만난 적이 있다. 그런데 정작 도스토옙스키와 톨스토이가 대면한 적이 없음은 이채롭다.
그렇다면 작품은 어떤가? 익히 알려진 바와 같이 도스토옙스키와 톨스토이의 작품 세계는 뚜렷이 대비된다. 메레쥐콥스키가 톨스토이와 도스토옙스키를 각각 육체와 정신을 대표하는 작가로 규정했다면 조지 스타이너는 톨스토이를 호머로부터 발원한 서사시의 전통을 잇는 대하소설 작가로, 그에 반해 도스토옙스키는 극적인 드라마의 정신을 소설에서 구현한 작가로 둘을 비교했다. 또 도스토옙스키의 소설을 다성악의 원리가 배어든 대화성으로 읽어낸 바흐친을 따르자면 톨스토이는 단성악적이라고 느껴질 정도로 소설 갈피마다 작가의 의견이 강하게 엿보인다.
이와 같이 기존연구에서 규명한 차이를 바탕으로 필자는 새로운 관점에서 두 대가를 바라보고자 한다. 구체적으로, 두 문호가 작품을 통해 마주치고(즉 나폴레옹, 사랑과 죽음, 법과 정의, 형제애 등 같은 주제와 모티프를 다루지만) 또 엇갈린다는 사실을 장편소설들을 시대순으로 한 쌍씩 짝지어 살펴본다. 다시 말해 두 작가가 일견 무척 달라 보이지만 동시대를 함께 호흡하며 같은 문제를 두고 공명했으되 다른 시각으로 풀어냈음을 고찰한다. 그 결과, 한 작가의 시작이 곧 상대방의 끝에 상응함이 발견된다.
도스토옙스키의 경우 1년 정도의 응축된 시간 안에 벌어지는 한 개인의 고뇌와 부활에 집중한 『죄와 벌』에서 시작해 주인공을 다원화하고 50여 년 전 과거로까지 시간 폭을 넓힌 『카라마조프 형제들』로 작품세계를 확장해갔다면, 톨스토이는 반대로 『전쟁과 평화』라는 경이로운 역사소설로 시작해 당대를 무대로 한 『안나 카레니나』를 거치며 좁아져 가더니 마지막 장편에서는 『죄와 벌』처럼 한 남자에게 집중하고 그가 시베리아에서 부활하는 이야기로 마무리 짓는다. 이 책은 시공간의 활용 및 주인공의 특징, 또 주제를 펼치는 방식 등에서 두 대가의 장편이 서로 반대되는 궤도를 따라 진화한다는 점을 논증한다. 이 과정에서 도스토옙스키와 톨스토이의 천재성이 가장 잘 발휘된 장편들의 주요 특성이 서로의 거울에 비추어 조명됨으로써 새로운 분석과 독서가 시도될 것이다.
다시 말해 이 책은 두 문호의 주요 장편소설을 단순 비교하는 것이 아니라 특정한 관점, 즉 두 작가의 장편소설이 반대되는 궤적을 그리며 진화한다는 관점에 의거해 장편들을 시기에 따라 짝지어 비교하고, 이로써 이제까지 학계에서 행해진 적이 없는 고찰을 시도한다. 여기에 이 책의 독창성과 의의가 있다고 하겠다.
Contents
저자의 말
들어가며
제1부 작가를 찾아서 : 첫 대작을 쓰기까지
제1장 | 도스토옙스키 | 모스크바 유년기: 1821-1837
제2장 | 도스토옙스키 | 페테르부르크 청년기: 1838-1849
제3장 | 도스토옙스키 | 시베리아에서 보낸 30대: 1850-1859
제4장 | 도스토옙스키 | 다시 페테르부르크로, 바닥: 1860-1865
제5장 | 톨스토이 | 프롤로그: 혁명 사이의 삶
제6장 | 톨스토이 | 야스나야 폴랴나에서의 유년기: 상실의 시대
제7장 | 톨스토이 | 야스나야 폴랴나 밖으로: 카잔과 캅카스, 유럽
제8장 | 톨스토이 | 다시 야스나야 폴랴나로: 결혼과 가정의 행복
제2부 『전쟁과 평화』 vs 『죄와 벌』 : 나폴레옹과 영웅주의
제1장 | 1866년 『러시아 통보』: 동시에 연재된 두 걸작
제2장 | 시공간의 미학: 도스토옙스키의 수축과 톨스토이의 팽창
제3장 | 도스토옙스키의 단독 주인공, 톨스토이의 집단 주인공
제4장 | 도스토옙스키의 나폴레옹: 우상과 초인론
제5장 | 톨스토이의 나폴레옹: 영웅주의 부수기
제3부 『백치』 vs 『안나 카레니나』 : 주홍 글씨
제1장 | 19세기 러시아, 여성 문제
제2장 | 도스토옙스키의 주홍 글씨: 나스타샤의 복수
제3장 | 톨스토이의 주홍 글씨: 안나의 죄와 벌
제4장 | 도스토옙스키의 아름다움과 톨스토이의 선
제5장 | 두 우주의 접근: 시공간과 주인공
제4부 『카라마조프 형제들』 vs 『부활』 : 뒤바뀐 시작과 끝
제1장 | 역사적 맥락: 1864년 사법 개혁과 소설
제2장 | 법과 정의: 인간의 오심을 넘어
제3장 | 뒤바뀐 시간의 미학: 도스토옙스키의 팽창과 톨스토이의 수축
제4장 | 시베리아: 톨스토이의 마지막 장편과 도스토옙스키의 첫 대작
제5장 | 뒤바뀐 주인공 체제:
도스토옙스키의 마지막 장편과 톨스토이의 첫 대작, 그리고 형제애
마치며
참고문헌
연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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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thor
윤새라
울산과학기술원(UNIST) 기초과정부 교수. 고려대학교 노어노문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인디애나주립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도스토옙스키와 톨스토이를 비롯해 19세기 러시아 문학을 주로 연구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는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와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가 있고, 관련 논문으로 「존재의 의미: 『안나 카레니나』 8부 재조명」, 「법과 정의: 『카라마조프 형제들』과 『부활』 비교 연구」, “Smerdiakov’s Fathers in The Brothers Karamazov” 등이 있다.
울산과학기술원(UNIST) 기초과정부 교수. 고려대학교 노어노문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인디애나주립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도스토옙스키와 톨스토이를 비롯해 19세기 러시아 문학을 주로 연구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는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와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가 있고, 관련 논문으로 「존재의 의미: 『안나 카레니나』 8부 재조명」, 「법과 정의: 『카라마조프 형제들』과 『부활』 비교 연구」, “Smerdiakov’s Fathers in The Brothers Karamazov”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