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의 가극화, 가극의 정치화』은 일본의 근대 국민국가 출범과 함께 탄생한 소녀 및 소녀 규범, 그리고 소녀가극에서 논의를 시작한다. 소녀는 일본의 근대화 과정에서 만들어진 개념이며, 소녀가극은 이 시기에 개념화된 ‘소녀’들을 배우로 훈련시켜 조직된 특수한 공연예술이기 때문이다. 근대 일본의 공교육 제도로부터 탄생한 ‘소녀’는 그러나 가부장제의 현모양처 규범에 얽매인 존재였다. 10대 초반의 소녀들을 중심으로 조직된 다카라즈카 소녀가극 또한 이러한 소녀 규범과 무관하지 않다. 소녀배우의 신체는 제국주의 규범을 확산하기 위한 물적 토대로서 기능하게 되며, 이러한 일련의 과정 속에서 소녀라는 일본 근대의 산물은 가정 · 학교 · 국가라는 3중의 제도적 규범에 묶인 존재로서 재규정되었다.
여기서 ‘소녀라는 문제적 장소’는 본격적인 논의를 위한 가장 기본적인 전제다. 일본의 근대가 발명해 낸 소녀 이미지는 그 시작부터 천황중심주의와 가부장제라는 틀 속에서 규정된 규범화되고 타자화된 것으로 전체주의적 이데올로기에 쉽게 노출될 수밖에 없다는 의미에서 취약성을 가지고 있다. 나아가 오늘날 한국과 일본을 비롯한 동아시아 대중문화 전반에 널리 퍼져 있는 소녀 이미지의 기원이기도 하다. 이미지의 취약성은 다카라즈카 음악학교가 요구한 규범인 ‘맑게, 바르게, 아름답게’로부터 오늘날의 각종 소녀들을 수식하는 클리셰인 ‘귀엽고 순수한’에 이르기까지 시공을 초월해 적용 가능한 개념이다.
이 책을 관통하는 핵심적인 문제의식, 예컨대 소녀 이미지는 왜 취약한 것일 수밖에 없는가, 소녀는 왜 ‘문제적인 장소’일 수밖에 없는가에 관한 의문은 소녀 이미지와 정치가 복잡하게 얽혀 있는 지점을 풀어 나가기 위한 단초이며 민족주의, 국가주의, 자본주의 등의 이즘(-ism)과 소녀의 이미지가 결합하는 사례들을 통시적 · 공시적으로 연구함으로써 그 모습이 드러날 것이다.
Contents
책을 펴내며
서론
1. 문제 제기 및 선행연구 검토/ 2. 연구의 내용 및 방법
제1부 논의의 전제: 소녀가극의 쟁점에 관한 검토
제1장 근대 국민국가와 소녀의 존재론
1. 소녀 개념의 정의 및 소녀 연구의 계보/ 2. 근대 국민국가와 소녀 규범
제2장 소녀가극의 양식화 및 대중화
1. 오락물로서의 상업적 음악극/ 2. 가부키의 극복과 신국민극 담론
제3장 소녀가극의 초국가적 확산의 토대
1. 소녀가극과 식민지 대중문화/ 2. 소녀라는 문제적 장소
제2부 제국 통합의 이념적 재현: 언어적 텍스트 층위의 분석
제4장 일·독·이 추축국 시리즈: 삼국동맹 강화의 서사
1. 《이탈리아의 미소イタリヤの微笑》: 제국 역사의 신화적 재구성/ 2. 《새로운 깃발新しき旗》: 호명된 국민들의 노래
제5장 대동아공영권 시리즈: 대동아 신질서 확립의 서사
1. 《몽골モンゴル》: 여행에 내재된 식민주의적 욕망/ 2. 《북경北京》: 동양의 구원자로서의 일본/ 3. 《동으로의 귀환東へ歸る》: 동양 기표의 이중성
제6장 오족협화와 왕도낙토의 서사
1. 《만주에서 북지로?州より北支へ》: 내지 연장과 민족 화합의 꿈/ 2. 《동아의 아이들東?の子供達》: 기억과 망각의 이중주
제3부 제국 통합의 감각적 재현: 비언어적 텍스트 층위의 분석
제7장 공통감각으로서의 동양
1. 동양에 관한 시선의 정치학/ 2. 배타적 대항 담론으로서의 동양/ 3. 동양적인 것의 발명 및 재현
제8장 규율화되는 신체와 정서
1. 근대 일본의 규율권력과 소녀가극/ 2. 춤추는 신체, 노래하는 신체, 행진하는 신체/ 3. ‘명랑한’ 제국 공동체
제9장 판타스마고리아 기법의 전유
1. 통합과 몰입의 기법으로서의 환영/ 2. 아도르노의 바그너 음악극 비판/ 3. 다카라즈카 소녀가극과 판타스마고리아
제4부 ‘국민’의 연극에서 ‘제국’의 연극으로
제10장 소녀 규범의 경계 확장: 만선순연과 《미와 힘美と力》의 경우
제11장 제의적 장소로서의 소녀가극
제12장 제국 통합의 연극적 계기: 가상의 제국과 감각적 동화
결론
참고문헌
Author
배묘정
서강대학교 트랜스내셔널인문학연구소 HK+연구교수. 서울대학교에서 음악학과 공연예술학을 전공했으며, 저서로는 『정치의 가극화, 가극의 정치화: 소녀가극이 재현한 제국 통합의 이데올로기』(2019), 『글로벌 시대의 동아시아 현대음악』(2015, 공역), 『오페라 속의 미학 1』(2017, 공저), 『베토벤의 위대한 유산』(2020, 공저) 등이 있다. 다양한 학문적 배경을 토대로 문화예술 전반을 경유하는 기억의 문제에 관심을 두고 있으며, 최근에는 동아시아의 사운드 메모리(sound memory)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서강대학교 트랜스내셔널인문학연구소 HK+연구교수. 서울대학교에서 음악학과 공연예술학을 전공했으며, 저서로는 『정치의 가극화, 가극의 정치화: 소녀가극이 재현한 제국 통합의 이데올로기』(2019), 『글로벌 시대의 동아시아 현대음악』(2015, 공역), 『오페라 속의 미학 1』(2017, 공저), 『베토벤의 위대한 유산』(2020, 공저) 등이 있다. 다양한 학문적 배경을 토대로 문화예술 전반을 경유하는 기억의 문제에 관심을 두고 있으며, 최근에는 동아시아의 사운드 메모리(sound memory)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