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와 유토피아

에덴의 기억이나 예감이 없다면 숨을 쉬는 것도 형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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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blication Date 2022/09/29
Pages/Weight/Size 140*194*14mm
ISBN 9788969940292
Categories 인문 > 인문/교양
Description
외로운 이방인, 자칭 원시인이었던 에밀 시오랑이 폭력적인 언어로 풀어쓴 문명 비평

“마르크스주의의 명분이든 동방정교의 명분이든 러시아는 가톨릭교회의 권위와 명성을 무너트릴 운명을 타고났다. 러시아인들이 가톨릭의 목표를 용납하려면 자신들의 사명과 계획을 상당 부 분 포기해야 하기 때문이다. 황제 치하의 러시아인들은 가톨릭이 그리스도를 반대하는 도구라고 규정하고 ‘저주’의 기도를 했다. 지금은 가톨릭을 반동의 앞잡이 사탄으로 생각하고 옛날의 저주보다 더 강도 높은 욕설을 퍼붓고 있다. 곧 모든 무게와 힘으로 가톨릭을 침몰시킬 것이다. 금세기 깜짝 사건의 하나로 베드로 성자의 마지막 후계자 교황이 사라지는 것도 불가능하지 않을 것이다.” 「러시아와 자유의 바이러스」

나치 독일의 멸망으로 루마니아가 소련의 위성국으로 사회주의국가가 되어버리자, 파리에서 무국적자로 머물러야 했던 에밀 시오랑은 루마니아어와 이별하고 프랑스어로 글을 쓰기로 결정한다. 《역사와 유토피아》는 1960년에 출간된 그의 네 번째 프랑스어 작품으로 상까지 수상하며 독자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긴다. 첫 에세이 「두 유형의 사회에 대하여』는 루마니아 철학자 콘스탄틴 노이카(Constantin Noica)에게 보낸 편지로, 자본주의 사회와 공산주의 사회를 비교하는 것으로 시작하여 권력과 역사의 흐름에 대한 성찰로 이어진다. 시오랑에 따르면 역사는 정해진 어떤 방향이나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나아가는 것, 그저 그뿐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항상 무리 중 가장 강한 자가 권력을 잡는다는 것. 「러시아와 자유의 바이러스』에서 그는 러시아, 러시아의 역사, 발전, 그리고 그가 “자유의 미덕”이라고 부르는 것에 대해 타협하지 않는 시선을 보여준다. 「폭군의 학교에서』는 스탈린과 히틀러의 어두운 그림자 속에서 그는 보기 드문 명쾌함과 설득력 있는 논리로 폭군과 폭정에 대해 말한다. 그리고 「원한의 오디세이아』에서는 ‘이웃을 미워하는’, 즉각적이고 돌이킬 수 없는 복수를 하려는 우리 모두의 뿌리 깊은 꿈을 조사한다. 마지막 「황금기』에서는 수많은 시인과 사상가의 유토피아인 성경의 에덴동산인 “황금기”의 개념을 분석한다. 논쟁의 여지가 있는 글들이지만 그럼에도 아이러니와 독설과 풍부한 지식과 ‘무해’한 사상을 구사한 그의 문명 비평을 독자들에게 권한다.
Contents
옮긴이의 말 6

두 유형의 사회에 대하여 11
러시아와 자유의 바이러스 43
폭군들의 학교에서 73
원한의 오디세이아 107
유토피아의 메커니즘 145
황금기 177
Author
에밀 시오랑,김정숙
1911년 루마니아에서 태어난 에밀 시오랑은 1937년에 프랑스 파리로 이주해 세상을 떠날 때까지 그곳에 살며 글을 썼다. 그래서 우리에게 그의 이름은 ‘치오란’이 아니라 ‘시오랑’으로 더 익숙하게 알려졌다.
1928년부터 1932년까지 루마니아 부쿠레슈티 대학교에서 철학을 공부하고 ‘베르그송’에 대한 논문으로 학사 과정을 마쳤다. 1933년에 독일 훔볼트 재단의 장학금을 받아 베를린 대학교에서 수학했지만 체계로서의 철학에서 멀어져 철학적 에세이, 개인 사상가로서의 글쓰기에 경도된다. 1934년 첫 책 『절망의 정점에서(Pe culmile disper?rii)』를 출간했고, 1936년에는 루마니아로 돌아가 잠시 고등학교 철학 교사로 학생들을 가르치기도 했다. 1937년에 프랑스 문화원 장학생으로 선발되어 파리로 가 소르본 대학교 철학과에 등록했지만 수업과 논문 쓰기를 접어두고 자전거를 타고 프랑스 방방곡곡을 돌아다녔다.
모국어로 쓴 책 『사유의 석양(Amurgul gandurilor)』(1940년)을 출간하고 난 다음 1947년 이후에는 루마니아어와 결별하고 프랑스어로 글을 쓰기 시작했다. 1949년 프랑스어로 쓴 첫 책 『해체의 개설(Precis de decomposition)』이 출간되었고, 비평가들의 호평을 받았다. 이후 『고통의 삼단논법(Syllogismes de l’amertume)』(1952), 『존재의 유혹(La tentation d’exister)』(1956), 『역사와 유토피아(Histoire et utopie)』(1960), 『고백과 저주(Aveux et anathemes)』(1987) 등의 책을 출간하며, 고독과 처절하게 맞선 글쓰기, 절제된 아포리즘적 절규로 많은 독자에게 큰 울림을 주었다.
여러 차례 문학상 수상자로 지명되었지만 수상을 모두 거부했고, 단 한 차례 1950년 리바롤(Rivarol)상을 받았는데, 생계가 어려웠기에 그 상이 아니었다면 노숙자가 되었을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1995년 6월 20일, 파리에서 숨을 거두어 몽파르나스 묘지에 안장되었다.
1911년 루마니아에서 태어난 에밀 시오랑은 1937년에 프랑스 파리로 이주해 세상을 떠날 때까지 그곳에 살며 글을 썼다. 그래서 우리에게 그의 이름은 ‘치오란’이 아니라 ‘시오랑’으로 더 익숙하게 알려졌다.
1928년부터 1932년까지 루마니아 부쿠레슈티 대학교에서 철학을 공부하고 ‘베르그송’에 대한 논문으로 학사 과정을 마쳤다. 1933년에 독일 훔볼트 재단의 장학금을 받아 베를린 대학교에서 수학했지만 체계로서의 철학에서 멀어져 철학적 에세이, 개인 사상가로서의 글쓰기에 경도된다. 1934년 첫 책 『절망의 정점에서(Pe culmile disper?rii)』를 출간했고, 1936년에는 루마니아로 돌아가 잠시 고등학교 철학 교사로 학생들을 가르치기도 했다. 1937년에 프랑스 문화원 장학생으로 선발되어 파리로 가 소르본 대학교 철학과에 등록했지만 수업과 논문 쓰기를 접어두고 자전거를 타고 프랑스 방방곡곡을 돌아다녔다.
모국어로 쓴 책 『사유의 석양(Amurgul gandurilor)』(1940년)을 출간하고 난 다음 1947년 이후에는 루마니아어와 결별하고 프랑스어로 글을 쓰기 시작했다. 1949년 프랑스어로 쓴 첫 책 『해체의 개설(Precis de decomposition)』이 출간되었고, 비평가들의 호평을 받았다. 이후 『고통의 삼단논법(Syllogismes de l’amertume)』(1952), 『존재의 유혹(La tentation d’exister)』(1956), 『역사와 유토피아(Histoire et utopie)』(1960), 『고백과 저주(Aveux et anathemes)』(1987) 등의 책을 출간하며, 고독과 처절하게 맞선 글쓰기, 절제된 아포리즘적 절규로 많은 독자에게 큰 울림을 주었다.
여러 차례 문학상 수상자로 지명되었지만 수상을 모두 거부했고, 단 한 차례 1950년 리바롤(Rivarol)상을 받았는데, 생계가 어려웠기에 그 상이 아니었다면 노숙자가 되었을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1995년 6월 20일, 파리에서 숨을 거두어 몽파르나스 묘지에 안장되었다.